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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Jun 28. 2024

완두, 꽃도 맛도 내 취향

꽃은 균형 있고 맛은 고소하다

도시에 살면서 주말텃밭이나 집 발코니, 옥상 같은 작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을 흔히 도시농부라 한다. 나도 도시농부다. 남의 땅을 분양받아 몇 가지 농작물을 겨우 내 먹을 정도만 기르고 게으름까지 피우니 농부라는 고결한 말과는 어울리지 않고 그냥 채소를 기르고 거두는 일을 그냥저냥하는 얼치기 농사꾼이다.

     

도시농부들이 주로 심는 작물은 상추와 고추가 기본이고 들깨, 토마토, 가지, 부추, 시금치에다 가을이면 무, 배추 정도를 더하고 거기에 각자 좋아하는 작물을 추가한다. 나도 그 정도다. 올해는 완두가 추가되었다. 이웃 밭에서 자란 완두에서 떨어진 콩이 내 텃밭으로 건너와 싹을 돋우었다. 완두는 완전히 익기 전에 수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다 익은 콩이 옮겨와서 의외였고 겨울 추위를 견디고 새싹까지 피워 기특했다.

     

밟히지 않게 미리 지주대를 꽂아두고 물도 부족하지 않게 주었다. 덩굴이 오를 수 있도록 지주를 추가했더니 덩굴손을 뻗어 타고 올랐다. 덩굴식물은 제힘으로 서지 않고 덩굴손을 이용하여 다른 식물이나 물체를 기어오르거나 휘감아 올라선다. 다른 식물이 줄기를 튼튼하게 키우기 위해 쓰는 에너지를 연약하지만 줄기를 재빨리 높이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먼저 높은 곳에 올라 햇볕을 차지한다. 자기도 모르지주 역할을 한 다른 식물에게 얌체 짓이고 억울한 일이지만 이것이 덩굴식물의 생존전략이다.

     

내 텃밭에는 비록 한 그루이지만 완두는 일찌감치 키를 키우고 누구보다 앞서 꽃을 피웠다. 붉은 꽃을 기대했는데 하얀 꽃이 피었다. 이웃 밭에서도 작년처럼 완두가 무성하게 자랐는데 모두 흰 꽃이 피었다. 내가 아는 상식으론 우성인 붉은 꽃이 더 많이 피어야 하는데 말이다. 주변 밭에는 흰 꽃만 피는 형질을 가진 순종 씨앗만 심은 건지, 품종개량으로 인해 흰 꽃만 피게 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확실히 모르겠다. 궁금하다.

      

완두꽃은 멘델이 유전의 기초이론을 밝히는 실험에도 이용되었다. 멘델은 완두를 제꽃가루받이를 수차례 반복해서 유전형질이 고정된 순종을 얻었다. 이렇게 얻어진 순종 붉은 꽃 완두와 순종 흰 꽃 완두를 교배하면 다음 세대(F1)에는 붉은 꽃만 피었다. 흔히 붉은 꽃과 흰 꽃의 중간인 분홍 꽃이 나올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런 현상을 '우열의 법칙'이라 하며 이때 나타난 붉은색 형질이 우성, 나타나지 않은 흰색 형질이 열성이다. 이 F1을 교배한 그다음 세대(F2)엔 붉은 꽃과 흰 꽃이 3:1 비율로 나타나는 결과를 얻었다. 이를 '분리의 법칙'이라 한다.

    

콩과 식물 꽃은 다른 집안 식물의 꽃과 비교해 생김새가 좀 다르다. 각 꽃잎의 이름은 배(船)와 나비 날개에 비유하여, 맨 위에서 위쪽을 향해 곧추선 넓은 꽃잎은 깃발을 닮아 기꽃잎(基瓣 기판, 1장), 그 안쪽 아래에 좌우 날개 모양의 날개꽃잎(翼瓣 익판, 2장), 가장 안쪽 날개꽃잎 사이에 선박밑 중앙의 용골을 닮은 용골꽃잎(龍骨瓣 용골판, 2장)이라 한다. 콩과 식물은 대부분 이런 형상의 꽃이 피며 나비를 닮아 나비모양꽃(蝶形花 접형화)이라 한다.

      

완두꽃은 줄기 아랫부분에서 위쪽으로 올라오면서 피며, 이른 아침에 개화하기 시작하여 오후까지 피고 저녁에 꽃잎을 닫았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핀다. 어떤 꽃은 밤에도 피어 있는 경우도 관찰된다. 암술과 수술이 꽃잎에 싸여 서로 붙어 있고 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곤충에 의한 가루받이 보다 제꽃가루받이를 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상태 박사는 그의 저서 <식물의 역사>(188쪽)에서 “벌이 찾아와 꽃에 앉으면 익판을 눌러 그 무게로 인해 바로 암술이 위로 튀어 올라 벌의 몸과 다리에 실려 온 다른 꽃의 화분이 수분”(트리핑 현상 tripping)된다며 콩과식물이 꽃가루받이하는 장면을 상세히 묘사했다. 이렇게 운좋게 딴꽃가루받이를 하면 유전자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올해는 한 그루에 그쳤으나 내년에는 심으려 한다. 붉은 꽃이 피는 완두 종자도 구할 수 있다면 꽃을 마음껏 보고 싶다. 작고 엉성한 다른 종류 콩꽃보다 크고 화려한 데다 균형미도 있다. 그런 완두꽃이 예쁘다. 꽃도 좋지만 완두는 병충해가 적고 다른 콩에 비해 수확량도 많은 데다 생육기간이 짧아 텃밭에 어울리는 작물이니 심어 가꾸어 보련다.


매년 하지 무렵에 재래시장이나 농수산시장에자루로 사서 냉동해 놓고 매끼 밥에 넣어 먹는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윤기가 흐르는 밥에 완두콩이 있으면 눈맛, 맛, 콩맛으로 입맛 돌기 충분하다. 밥맛을 잃었어도 먹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


<붉은 완두꽃, 출처: 오마이뉴스> <완두꽃 부위별 명칭, 출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꽁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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