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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Jul 11. 2024

대파꽃, 겨울을 견뎌야 핀다

바람 불고 눈 쌓인 들판에서 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집 주변이든 어느 곳이든 땅의 크기를 가리지 않고 빈터에 작물을 심었다. 요즘엔 농사짓던 땅이 분명한데 온갖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곳이 보이긴 해도 여전히 땅에서 작물을 키운다. 도시에서도 줄었다고는 하나 종종 작은 땅이라도 틈이 있으면 씨앗을 뿌려 작물을 키우기도 하고 개발 예정지나 철도 주변 부지에 경작금지를 알리는 표지판을 심심치 않게 본다.


옛날 조선 시대 선조들도 텃밭이나 빈터에 채소작물을 키우곤 했는데 땅이 좁은 한양에서는 채소밭을 만들지 못하게 했으나 막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이도 저도 없는 사람들은 자갈밭도 가리지 않았고 나무가 우거진 곳도 마다하지 않았고 불을 질러서라도 밭을 일구었다. 생존을 위해서든 싱싱한 채소를 먹으려는 마음에서든 작은 땅이라도 일구려는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도시의 비좁은 땅에 곧잘 심어 기르는 채소 중에 파가 있다. 파는 독특한 향과 맛 때문에 고라니 같은 초식동물이 먹기를 꺼리고 곤충도 많이 달려 붙지 는다. 그래도 파를 전문적으로 먹는 곤충이 있다. 파氏들이다ㅎㅎ. 그렇다고 이들이 분류학적 유연관계를 갖는 한 집안은 아니다. 파좀나방, 파굴파리, 파밤나방, 파총채벌레가 그들인데 성충이나 유충이 잎에서 즙을 빨아먹거나 잎을 뚫고 들어가 갉아먹으면 잎이 황백색으로 변하고 구멍도 생긴다. 매년 텃밭에 파를 심는데 이들 곤충 피해를 빠짐없이 겪는다. 잎에 주로 피해를 주는데 때로 흰 비늘줄기까지 피해를 주기도 한다. 장마철에 가장 심한데 이 시기가 지나면 큰 피해도 실패도 없다.


이렇게 곤충이 특정 식물만 고집하여 먹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식물은 곤충에 맞서 불쾌한 맛이나 독 같은 방어물질을 만들어 접근을 막고 곤충은 거기에 대응해 끊임없이 적응해 간다. 모든 식물의 방어물질에 적응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특정 식물에 적응하고 해당 먹이식물(기주식물 寄主植物)만 먹도록 진화했다. “약 40만 종의 초식 곤충 가운데 약 80퍼센트에 해당하는 32만 종이 ‘기주 특이성’을 띤다고 한다.”<곤충의 통찰력, 150쪽>


파는 수염뿌리, 비늘줄기, 잎으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대파는 뿌리와 잎보다는 비늘줄기를 요리에 주로 사용하고, 쪽파는 비늘줄기와 잎을 먹는다. 비늘줄기를 굵고 길고 키우려면 적절한 북 주기를 해야 한다. 북 주기는 빛을 차단하여 엽록소가 생기지 않도록 하여 연백(軟白)시키는 과정이며 하얀 비늘줄기 부분을 연백부라고도 한다. 그러나 북 주기를 성급하게 하면 성장을 저해하므로 8월까지는 얕게 하고 생육이 왕성한 9월~10월에는 높이를 올리며 단계적으로 한다.


뿌리는 수염처럼 많이 뻗어 나와 퍼진다. 외떡잎식물은 대부분 한해살이라 그해 싹 틔워 열매까지 맺어야 하므로 짧은 기간에 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뿌리를 깊이 보다 넓게 퍼지게 한다. 파는 외떡잎식물에 한두해살이다. 뿌리는 육수를 낼 때 유용한데 수염뿌리는 세로로 잘라 나누어 씻으면 흙을 씻어 내기가 수월하다. 잎은 비늘줄기보다 향과 매운맛이 강하므로 요리 끝 무렵에 넣으면 향긋한 향을 더하고 색감을 높여 식욕을 돋우는데 빠질 수 없다. 시든 잎도 뿌리와 함께 국물용으로 사용한다.


겨울을 지낸 파는 봄에 잎 사이에서 꽃줄기가 올라온다. 꽃줄기와 잎은 겉이 초록이고 속이 비어있는 점에서 같으나, 꽃줄기는 중간이 배흘림기둥처럼 더 통통하다. 하얀 공 모양의 꽃봉오리를 지탱하려는 방편으로 보인다. 꽃봉오리는 하얀 얇은 막으로 동그랗게 싸여 어린 꽃이 필 때까지 보호받는다. 이 막은 꽃턱잎이며 꽃이 피면서 벗겨진다.


꽃은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꽃처럼 보이나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작은 꽃이 모여있다. 우산살처럼 한 곳에서 여러 꽃자루가 나와 피어 우산모양꽃차례다. 꽃잎은 통꽃이고 바깥 부분이 별처럼 여섯 갈래로 나눠 퍼진다. 노란 수술 6개가 먼저 피고 1개의 암술이 뒤이어 핀다.


파꽃은 오래 자세히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지나가듯 보고 파꽃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꽃봉오리를 감싼 둥근 보자기 안에는 꽃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주 보고 있으면, 지난겨울에 바람 불고 눈 쌓인 들판에서 홀로 보았던 이야기들을 금방이라도 들려줄 듯하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지금껏 파랗게 멍이 들도록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쪼그려 앉아 파꽃을 보며 이야기를 듣다가 온몸이 저려도 전혀 내색할 수 없다.

<쪽파꽃><얇은 막을 찟고 나온 대파꽃><병충해 대파ㅠ>

  


 - 파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가포육영>


纖手森攢戢戢多  가느다란 손이 오므록이 몰려선 듯

兒童吹却當簫茄  아이들 잎을 따서 피리처럼 불어 보네

不唯酒席堪爲佐  술자리에 안주로만 좋은 것이 아니라

芼切腥羹味更嘉  고깃국 끓일 때는 더없이 맛나도다


                       <동명왕의 노래> 212쪽에서 옮겨 적음

* 가포육영(家圃六詠) : 텃밭에 심은 여섯 채소에 대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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