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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Nov 18. 2023

단편소설 <차마기행>

숨쉬듯 쓴 단편소설 #8

최근 '숨쉬듯'이라는 글쓰기 모임에서 편한 마음으로, 숨 쉬듯 글을 쓰고 있다. 모임은 구성원 모두가 한 달에 한 번 하나의 소재에 대해 글을 쓰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달의 소재는 버릇이었다. 이번에 중국 리장의 차마고도 트래킹을 다녀왔는데,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앞으로 여행을 돌아볼 때 이 글을 보면 될 것 같다.



차마기행(茶馬紀行)


“대자연을 보러 가겠어.”

기획자 이씨(이하 이씨라 하겠습니다)가 친구들에게 버릇처럼 하던 말이었습니다.


이씨는 모든 것이 빨리빨리 진행되는 대한민국, 그 안에서도 첨단을 달리는 IT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숨 가쁘게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나날에 회의감을 가졌습니다.


“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가?”


주위의 모두가 달리기에 뭣도 모르고 따라 달려온 지난 세월. 이씨는 스스로에게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는가. 그가 내린 결론은 일단 숨 막히는 도시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대자연에 가야겠다고 버릇처럼 말하게 된 이유입니다.


인터넷에서 여러 대자연 리스트를 둘러보던 중 이씨는 리장이라는 중국 여행지를 발견했습니다. 리장에는 세계 3대 트래킹 코스 중 하나인 차마고도가 있었습니다.


먼 과거부터 중국 윈난의 상인들이 차와 말을 거래하기 위해 오갔던 무역로. 그 길을 이제는 백패커들이 걷고 있었습니다.


차마고도를 발견하고 이씨는 단박에 이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영화나 책에서 트래킹을 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그는 차마고도를 걸으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며칠 뒤 이씨는 리장으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였습니다. 직항이 없어 광저우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하는 여정이었지만 괜찮았습니다. 고된 차마고도 트래킹을 앞둔 그에게 비행기 환승은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회사에 5일 휴가를 내고 리장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광저우 -> 리장 비행기 


예전엔 비행기를 타는 게 설렜다면 이제는 고역이었습니다. 앉은자리에서 여러 번 뒤척이며 도착 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시간이 더디게 가서 이씨는 최근 회의감에 빠진 이유를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선 이씨는 회사에서 추구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회사 일에 애정이 없어 시키는 일만 했습니다. 한 선배는 이씨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전형적인 MZ세대라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씨는 회사에서 딱 평균 정도의 평가 등급을 받아 왔습니다. 동기들에 비해 낮은 평가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회사에서의 모습은 진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는 자신의 개인 작업에는 진심이었습니다.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만들고 싶은 앱을 만드는 것에는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는 그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이씨는 그렇게 회사 일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는 이중생활을 지속했습니다. 회사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만큼 개인 작업에 몰두하여 늦은 시간까지 깨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모습을 3인칭 시점으로 보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본인의 모습이 타임랩스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게 맞는 건가?”


그는 문득 이전에 한 책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현대인은 자아실현을 위해 끝없이 자신을 착취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착취한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 기념비적인 걸 남길 만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간 이씨는 마음속에 가득한 회의감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금과 달리 사는 법을 몰랐습니다.


이번엔 다르길 바랐습니다. 이씨는 회의감을 풀 실마리를 찾길 바라며 리장 산이(三义) 공항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트래킹  번째 


고대하던 트래킹의 날. 이씨는 과거 호랑이가 건너 다녔다는 호도협이라는 협곡을 보고 1박 2일간의 트래킹을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씨는 오늘을 위해 준비한 호카 오네오네 신발을 신은 뒤 아크테릭스 가방을 들쳐 매고 아침 6시에 숙소를 나섰습니다. 좋은 장비를 차니 발걸음이 더 가벼웠습니다.


푸른 여명이 거리에 깔려 있었고 폐에 가득 채우고 싶은 상쾌한 공기가 그를 맞이하였습니다. 11월은 리장의 건기로 일교차가 심하지만 어느 때보다 하늘이 맑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기대되는 마음을 안고 숙소를 통해 예약한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차량 가격은 300위안, 우리나라 돈으로 5만 원이 넘었지만 이씨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바 외국인이 차마고도 트래킹에 나서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번거로운 일은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시내에서 한 시간가량 이동한 후 이씨는 호도협에 내렸습니다. 입장권을 사야 하는 곳이기에 기사는 주차장에서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이씨가 계곡 아래로 내려가니 장엄한 협곡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해발 5,000m를 가볍게 넘는 하바설산과 옥룡설산 사이로 흐르는 계곡. 호도협의 장엄함에 이씨의 입에서 “미쳤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계곡은 호랑이가 건너 다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맹렬했습니다. 급류가 집채 만한 바위에 부딪혀 만든 거대한 물보라에 무지개가 필 정도였습니다.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계곡에 삼켜질 것 같았습니다. 이씨는 그렇게 20분 정도 계곡을 바라보다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주차장엔 기사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직 기사에겐 이씨를 트래킹 시작 지점까지 태워 주어야 할 임무가 남아 있었는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이씨는 입장권을 살 때 기사에게 돈을 다 줬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여행 시작부터 불쾌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씨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런 사기 같은 건 호도협의 장관을 본 사람에겐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차피 트래킹을 하기로 한 것 시작 지점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지도 앱을 보니 걸어가지 못할 거리도 아니었습니다.


이씨는 주차장을 벗어나 공도를 걸었습니다. 군대 시절의 행군이 떠오를 정도로 제대로 된 길을 걷는 게 아니었습니다. 공도 우측에는 깎아내리는 듯한 암석 절벽이 솟아 있었고 낙석주의라는 말이 표지판에 쓰여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런 위험은 이씨에게 어떠한 경각심도 주지 못했습니다. 마침 공도 왼편에 위치한 옥룡설산 위로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옥룡설산에서 내리쬐는 햇빛의 가호가 있다면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돌도 튕겨져 나갈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걷기를 한 시간 그는 트래킹의 본격적인 시작 지점인 나시객잔에 도착했습니다. 이씨는 이곳에서 여행객들이 밥을 챙겨 먹고 길을 나선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보았고 그들의 유구한 전통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돼지고기 볶음밥과 차를 주문하였습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자연광 덕분에 요리왕비룡의 음식처럼 윤기가 흐르고 풍미가 가득해 보였습니다. 이씨는 음식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객잔을 둘러보며 잠시 쉬었습니다.


10분 정도가 지나고 어느덧 해가 중천에 뜨자 이씨는 외투를 벗어 가방에 넣은 뒤 길을 나섰습니다.


‘지금까지는 사전 연습이었지.’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생각에 설렜습니다. 길에 오른 뒤부터 보이는 무성한 초록의 숲과 뒤편에 중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옥룡설산. 이런 곳에 살면 시력이 좋아지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씨는 50m마다 한 번씩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풍경에 심취하여 트래킹을 이어갔는데 이상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손이 저리고 허벅지가 터질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씨는 가방 끈을 너무 강하게 조였나 생각하며 풀어 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이씨는 숨을 헐떡였고 더이상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땅바닥만 쳐다보고 걸었으며 이제는 50m에 한 번씩 자리에 앉아 쉬었습니다. 그는 고산지대의 위력을 실감하였습니다.


특히 28번 굽이친 길을 따라 올라야 하는 28밴드가 고역이었습니다. 이씨는 코스 이름 그대로의 욕을 하며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28밴드의 중반쯤에 도달했을 때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사경을 헤맸습니다.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그늘진 바위에 앉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5분 정도 흘렀을 때 산 아래쪽에서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딸랑, 딸랑, 딸랑. 이씨가 눈을 떠 길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한 무리의 행렬이 짐을 실은 말을 이끌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가 선두에 있는 남자가 이씨 앞에 섰습니다. 말이 가까이 오자 말똥 냄새가 났습니다.


“당신은 순례자인가요?”

해진 옷을 겹겹이 입은 남자가 이씨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대략 60대 정도로 보였습니다.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 지내서인지 그의 피부는 까무잡잡했고 주름이 얼굴 이곳저곳에 깊게 파여 있었습니다.

“아뇨. 저는 여행객입니다.”

이씨가 말했습니다.

“꽤나 지쳐 보입니다. 괜찮습니까?”

“생각보다 힘든 길이네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찹니다. 이런 길을 말과 함께 잘도 오르시는군요.”

“저희 마방(马方)에겐 이 길이 곧 삶이기에 그렇습니다. 노새가 하나 남습니다. 기력이 없다면 타시지요.”

남자가 바로 뒤의 말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씨는 잠시 고민하다 이것도 다 경험이지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가방을 메었습니다.

“그렇다면 감사히 타겠습니다.”

“노새 왼편 등자에 발을 올리고 힘을 주어 오른 다리를 반대편으로 넘겨 앉으면 됩니다. 좁은 산길이니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남자가 말하자 뒤편에 서 있던 키 작고 건장한 사내가 말 오른편에서 이씨를 도왔습니다. 이씨는 혹시 이러고 나중에 돈 받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며 눈치를 봤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 것조차 미안해질 정도로 남자의 눈빛은 맑았습니다. 남자의 눈동자에는 파란 윈난의 하늘이 담겨 있었습니다.

“말은 처음 타 봅니다. 말에 올라오니 시야가 다르네요.”

“말이 아니고 노새입니다. 말과 당나귀를 교배하여 만든 종이지요. 말이 다니기엔 이 산길은 너무 비좁습니다.”

남자가 신호를 주자 선두의 노새가 출발했고 이씨가 탄 노새도 뒤따랐습니다. 노새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이씨의 엉덩이가 들썩거렸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여하튼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닙니다. 우리에겐 순례자를 돕는 전통이 있습니다.”

“아.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는 순례자가 아니고 여행객입니다.”

“예로부터 이 길에 발을 들인 자는 결국엔 순례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여행객이지만 차마고도를 걷다 보면 언젠가 순례자가 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렇군요. 저는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순간이 아직 안 온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과거부터 이 길을 다니는 순례자들이 있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차마고도를 지나 티베트 라사까지 순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순례자를 만나면 저도 가진 것을 베풀겠습니다. 근데 신세를 졌는데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이준우라고 합니다.”

이씨가 남자를 보고 또박또박 이름을 말했습니다.

“저는 잠버노버라고 합니다. 저희 부족의 마코토이기도 하죠. 이름을 외우기 어려울 테니 마코토라 부르셔도 됩니다.”

“마코토. 족장과 같은 걸까요?”

“맞습니다. 차마고도를 오가는 마방 무리를 이끕니다.”

“선두의 노새에 종이 달려 있는 건 마코토의 증표인가요?”

이씨는 노새의 목에 걸린 종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종은 노새가 발을 디딜 때마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선두의 노새에 종을 다는 건 차마고도를 처음 개척한 상인이 시작한 일입니다. 차마고도라는 험로를 지나기 위해선 선두 노새의 목에 종을 달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뒤 따르는 노새들은 종소리를 들으며 방향을 잡습니다.”

“이 많은 인원과 노새를 이끌고 차마고도를 오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임은 분명합니다. 여정 중 마방이나 노새가 다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만 이 땅에 뿌리내린 자라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이 어떤 것을 줄지는 인간이 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좋은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저희는 이 대지에서 난 약재와 차 그리고 버섯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이 땅에서 얻고 있죠.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는 순례자들 덕분입니다.”

“순례자들이 마방을 위해 기도하는가 보군요.”

“그들은 모든 존재를 위해 기도합니다. 먹고살기 바쁜 우리를 대신해 온 마음을 다해 안전과 평안을 빌어 줍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순례자를 보았을 때 돕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순례자가 아니지만 마방의 평온을 기원하겠습니다.”

이씨의 말에 마코토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희 또한 당신의 무사한 여행을 기원하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28밴드의 종점이 이씨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종점에는 나시족이 운영하는 간이 쉼터가 있었습니다.

“이제 좀 괜찮아져서 저 앞에서부터는 걸어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간이 쉼터에 도착하자 이씨는 노새에서 내렸습니다.

“이야기 나눠서 즐거웠습니다.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코토.”

“짧은 시간이었지만 반가웠습니다. 一路平安(가시는 길 평안하길 빕니다).”


마코토는 인사를 하고는 마방의 무리를 이끌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씨는 마방의 마지막 행렬이 지나간 뒤 10분 정도 간이 쉼터에 앉아 휴식을 취했습니다. 나시족 할머니가 판매하는 통통한 바나나 하나를 먹어치우고 그는 다시 출발하였습니다.


28밴드를 지나니 길이 평탄해졌습니다. 걷기 수월해진 덕에 이씨는 다시 전처럼 풍경에 심취하였습니다. 고도가 전보다 높아져 길 아래로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침에 구경한 호도협, 점심을 먹은 객잔까지. 그가 지나온 길이 다 보였습니다.


또 걷다 보니 전망이 탁 트인 암석 위에 이르렀는데 전방에 옥룡설산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협곡 아래의 호도협부터 만년설의 정상까지. 옥룡설산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눈으로 뒤덮인 산의 정상을 바라봤습니다.


그때 이씨에겐 한 가지 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옥룡설산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거대한 존재를 1대1로 대면하니 그는 스스로가 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체감하였습니다. 이름에 옛 고(古)자가 들어가는 차마고도보다도 한참은 오래되었을 산. 그 존재에 비한다면 그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코토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씨는 그 말을 읊조렸습니다.


“이 길에 발을 들인 자는 결국 순례자가 된다.”


그는 이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그날 저녁에 묵을 객잔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트래킹  번째 


트래킹 첫 번째 날 밤 이씨는 객잔에 들어와 침대에 쓰러져 그대로 기절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9시가 되어서 눈이 떠졌고 바로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바깥에 나오니 아직 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숙소 주인의 말로는 옥룡설산이 너무 커서 이곳은 10시가 되어야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였습니다. 이씨는 다시금 산의 크기를 체감하였습니다.


이씨는 오늘의 트래킹 코스를 살펴보았습니다. 어제 걸은 길에 비해 수월한 길이었습니다. 오늘은 편안한 마음으로 경치를 구경하며 걸으면 되겠다 생각하였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오니 어느덧 해가 옥룡설산 위로 떠올랐습니다. 기온도 어느 정도 올라 이씨는 짐을 챙겨 트래킹을 시작하였습니다.


평탄한 흙길을 걸으며 이씨는 경치를 구경하였습니다. 길 왼편에는 암석 절벽이 위로 솟아 있었고 오른편은 급경사의 내리막이었습니다. 길 주위 지형이 험해서인지 나무보다는 갖가지 종류의 풀이 많이 보였습니다.


길의 오른편으로는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 길을 걷는 내내 호도협과 옥룡설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 그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도 좋았습니다.


이씨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었습니다. 어제 트래킹을 시작하고 그는 자신이 도시에서 안고 온 고민거리를 까마득히 잊었습니다. 몸이 힘들어서인 이유도 있겠지만 대자연을 보니 그런 것들이 다 사소해 보였습니다. 옥룡설산 앞에 선 그는 한낱 미물에 불과하였습니다.


만약 옥룡설산 같은 대자연 곁에서 산다면 어떨까. 이씨는 도시엔 인간에게 겸허함을 갖게 하는 존재가 없는 게 문제라 생각했습니다. 겸허함이 없기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착취하며 자아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미물이로소이다.”


이씨는 혼자 읊조리며 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나아가던 중 이씨는 길 왼쪽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두 노인을 봤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장작불이 있었고 그 위로 낡은 양은 냄비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식사를 준비하는 것 같았습니다. 길 위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보니 이곳의 주민 같지는 않았습니다.


두 노인은 첫날 마주친 마코토처럼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바짝 말랐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 정도가 더 심해 보였습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간단한 거동도 그들에겐 힘겨워 보였습니다. 그들 뒤로는 나무 수레가 두 량 있었는데 짐이 적잖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씨는 그들을 유심히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는 민망하여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서둘러 그들을 지나쳐 걸어갔습니다.


5분 정도 후 길 앞쪽에서 짝. 짝. 짝.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씨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세 사람이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걷다가 포복하길 반복하며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포복하기 전에 반드시 세 번 합장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무면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마치 윷놀이할 때 윷가락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같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손에 나무판자 같은 것을 끼우고 있었습니다.


이내 그들은 이씨의 코앞까지 왔는데 그들의 행색이 남루하면서도 신기했습니다. 그들 모두 어두운 갈색 빛의 앞치마를 하고 있었는데 여러 번 덧댄 것처럼 부분 부분 색과 해진 정도가 달랐습니다.


이씨는 그들을 살짝살짝 봤고 잠시 눈이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마코토가 말한 순례자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볼까 고민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세 남자가 이씨를 지나쳤습니다. 이씨는 그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아쉬운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그러다 더 이상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문득 순례자를 보면 베풀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씨는 순례자들을 따라갔습니다. 다행히 그들의 속도가 빠르지 않아 금방 따라잡았습니다. 그들은 이씨가 지나친 두 노인과 함께 장작불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씨가 나타나자 두 노인과 순례자들이 앉은자리에서 그를 올려다봤습니다. 이씨는 인사를 하며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냈습니다. 그가 28밴드를 오르며 쉼터에서 산 스니커즈였습니다.


“이거 드시겠어요?”


길 위에서 만난 이방인이 뜬금없이 초콜릿을 건넸지만 그들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젊어 보이는 남자가 일어나 초콜릿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순례자이실까요? 이 길을 다니는 순례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씨가 물었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순례자들입니다.”

젊은 남자가 말했습니다.

“오체투지요? 그게 뭐죠?”

“음. 오체투지는..”

젊은 남자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괜찮으시면 이야기도 나눌 겸 잠시 앉아서 쉬다 가시지요.”

뒤에 앉아 있던 나이가 가장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저희도 마침 쉬려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기 제 옆에 앉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노인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납작한 바위를 두들기며 말했습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이씨는 노인 오른편 자리에 가서 앉아 가방을 내려놓았습니다.

“오체투지를 모르는 걸 보니 다른 지역에서 오셨나 보군요.”

노인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차마고도를 걸으러 온 이준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상게라고 하고 저희는 까링스에서 출발하여 라사까지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입니다. 오체투지(五體投地)는 교만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세로 절을 올리는 것으로, 몸과 마음을 부처님께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걷고 절을 하길 반복하신 거군요. 근데 나무판자 같은 걸 손에 끼고 합장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것 또한 오체투지에 포함된 의식 중 하나입니다. 절을 하기 전에 총 세 번의 합장을 합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 그리고 말을 부처께 바친다는 뜻입니다.”

“그냥 걷기도 쉽지 않은 길을 그 모든 것을 반복하며 순례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루에 10km 정도를 갈 수 있습니다. 까링스에서 라사까지 2,100km 정도가 되니 6개월이 넘는 시간을 가야 합니다.”

이씨는 상게의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의 반응을 보고 순례자들은 웃었습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하시는 건가요?”

상게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기에 순례를 돕는 사람도 따릅니다. 저희 중엔 저와 여기 로상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순례에 필요한 물건을 실은 수레를 끌고 순례자들을 위해 식사와 잠자리를 준비합니다.”

상게가 자신의 왼쪽에 앉은 또 다른 노인의 무릎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습니다. 두 노인 뒤로 짐을 잔뜩 실은 수레가 이씨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레를 끄는 것도 고행일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나이에 무리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순례길에 나서는 건 저희에겐 평생의 꿈같은 일입니다. 설령 순례 중에 쓰러져 죽더라도 영광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씨는 노인의 말을 듣고 순례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고된 수행을 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겉모습에 드러났습니다. 뜨거운 태양에 검게 그을린 피부, 수차례 절 하느라 생겨난 이마의 혹, 잔뜩 해진 옷과 앞치마. 이씨는 그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힘든 일인데 평생의 꿈과 같은 일인 이유가 있을까요?”

이씨가 순례자 중 한 명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이씨를 한 번 쳐다보곤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게 쉽지 않은데 삶을 낭비하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고 하셨습니다. 청정한 마음은 왜곡된 감정과 욕망으로 탁해지는데 오체투지를 거쳐 번뇌에서 벗어나면 스스로를 다시 정화할 수 있습니다.”

“청정한 마음이란 무엇인가요.”

이씨가 물었습니다.

“자비로움, 즉 이기적이지 않고 보살피는 마음입니다. 순례를 마치면 마치 얼룩진 거울을 닦은 것처럼 제 마음의 본래 모습을 보게 될 거라 믿습니다.”

순례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자의 염화미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미소는 다른 순례자의 얼굴에도 피어 있었습니다. 거듭된 고행으로 깊게 파인 주름에 미소가 녹아 있어 그들은 지쳐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듯 말듯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씨의 아리송한 표정을 보고 대화를 나누던 순례자가 말을 이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본디 말이란 것은 불완전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깨달음을 말로써 온전히 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죠. 즉 말에 앞서는 것에 대해선 스스로 깨우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니 길을 더 걸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길을 걷는 순례자로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순례자가 손에서 염주를 굴리며 말했습니다.

“가르침과 기도 감사합니다. 저는 그럼 다시 길을 떠나 보겠습니다.”

이씨는 순례자들과 상게 그리고 로상에게 묵례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상게는 이씨를 보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귀의(歸依)의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慢走(살펴가세요).”


다시 여정을 시작한 이씨는 순례자들과의 대화를 곱씹으며 걸었습니다. 특히 상게가 마지막 인사에서 말한 귀의라는 단어가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그는 핸드폰으로 귀의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이씨의 눈에 들어온 단어는 몰아(没我)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잊고 있는 상태. 그는 그동안 스스로가 몰아의 반대편에 있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아에 집착했고 믿고 의지할 것은 자신뿐이라 여겨 왔습니다.


‘청명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 이기적이지 않고 보살피는 마음.’


스스로를 돌아보니 이씨에겐 너무 멀리 있는 마음 같았습니다. 순례자들처럼 오체투지를 하지 않는 이상 그런 마음에 이를 수 있을까. 순간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단 며칠 간의 여행으로 깨달음을 얻길 바란 것부터 욕심일 수도 있었습니다.


비록 깨달음은 요원하였지만 이씨의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그는 적어도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두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차마고도에 오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그는 지금의 경험과 감각을 최대한 기억해 두기 위해 그가 보고 듣고 만지고 맡은 것들을 음미하며 남은 길을 걸었습니다.



숙소 체크아웃 전


이틀 간의 트래킹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이씨는 기절하듯 잠들어 다음 날 체크아웃하기 1시간 전에 일어났습니다. 이씨는 조식을 챙겨 먹기 위해 숙소 거실로 갔습니다.


숙소 거실 식탁 앞에 앉아 있으니 붉은색의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사장님이 아침을 가져왔습니다. 중국 배우 양자경을 닮은 사장님은 조식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불교 교리에 따르는 숙소라 채식 식단이었습니다. 윈난의 버섯을 활용한 반찬, 윈난식 쌀국수 미시엔 등이 나왔고 이씨는 모든 그릇을 깨끗이 비웠습니다.


식사를 끝내자 사장님이 차를 권했습니다. 윈난의 보이차가 유명하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이씨는 곧바로 좋다고 하였습니다.


사장님은 이씨의 맞은편에 앉아 차를 내려 주었습니다. 거실 뒤편의 창에서 햇빛이 쏟아져 차 내리는 모습이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차를 다 내리고 찻잔을 머리 위로 받들어 올릴 땐 숨을 죽이고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내어진 차를 한 모금 마시니 몸과 마음 또한 경건해졌습니다.


“마지막에 찻잔을 들어 올리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해 준 모든 존재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왜인지 겸허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차마고도에서 많은 걸 느끼고 오신 것 같네요.”

“가서 호도협과 옥룡설산을 접하고, 마방과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운이 좋으셨군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근데 차마고도를 걷는 자는 결국 순례자가 된다고 하던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깨닫기엔 2일은 너무 짧은 시간인 거겠죠.”

이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고민과 성찰을 계속 이어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사장님의 말에 이씨는 뜨끔했습니다.

“그렇네요. 왜 굳이 차마고도 위에서만 해야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순례자들이 라사에 도착해도 그들의 수련이 끝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라사에 도착하고 나서가 진정한 시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차마고도는 수련이 시작되는 길일 뿐 끝나는 지점은 아니라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불교에 화두(話頭) 수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두는 이야기의 앞머리라는 것으로, 수련자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물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것이지요. 언어적으로 형용하기 어려운 물음이지만 우리의 마음속엔 분명히 존재하는 물음. 수행자는 이 화두라는 것을 붙잡고 긴 시간에 걸쳐 참구합니다.”

사장님의 말을 듣고 이씨는 그가 차마고도를 걷게 된 이유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삶의 이유, 동기를 찾기 위해 차마고도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사장님은 이씨의 잔에 차를 더 따르며 말을 이었습니다.

“차마고도를 걷는 자는 결국 순례자가 된다. 이 말은 곧 차마고도를 걷는 자에겐 화두가 던져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분명 그 화두라는 것이 던져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가 된 것이 아닐까요.”

사장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사장님의 말을 듣고 이씨는 한 가지 결심을 하였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차마고도에서 받은 화두를 잊지 않겠다고. 그는 맹세의 의식을 하는 마음으로 잔을 들어 차를 마셨습니다.

“차 잘 마셨습니다.”

“언제 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再见(또 뵙겠습니다).”

이씨는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 숙소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중국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옥룡설산 정상 여행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옥룡설산 정상


옥룡설산 케이블카에서 내려 이씨는 정상이 보이는 전망대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올랐습니다. 올라야 하는 거리는 얼마 안 되었지만 해발 4,600m를 넘는 고산이었기에 자주 쉬어야 했습니다. 숨이 헐떡거릴 때마다 이씨는 산소통을 입에 대고 가쁘게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마침내 해발 4,680m의 정상에 발을 디디고 옥룡설산의 주봉을 올려다보았을 때 이씨는 신성함을 느꼈습니다. 마치 신전에 발을 들인 것 같았습니다. 그는 살면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스스로가 작게 느껴졌습니다.


이씨는 옥룡설산을 마주 보고 서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차마고도에서 만난 마코토, 상게, 로상 그리고 순례자 그리고 숙소 사장님을 떠올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또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기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론 자신의 청명한 마음을 위해 빌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부처님께 귀의하며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살게 해 주소서).”


아주 오랜만에 하는 기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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