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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Mar 16. 2024

사명

출판전야를 하는 이유

출판전야 이야기를 하면 다들 신기해한다. 생소해한다는 게 더 맞겠다. 혼자 쓰는 숙소라고? 작가를 위한 숙소라고?


잘 되면 좋겠다고 응원을 하면서도 걱정을 내비치는 지인들이 있었다. 돈을 벌려면 커플 손님을 받아야지. 타겟이 너무 좁은 거 같다 등.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됐지만 내 귀가 그리 두꺼운 편은 아니었다. 진심 어린 걱정을 듣다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라 더 그랬다.


다 만들었는데 내 기대와 다르면 어떡하나.

들인 돈이 얼마인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땐 적어도 난 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완성되니 흥미를 잃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출판전야는 예외가 되리라는 법은 없었다.


이런 걱정은 곧 수익화로 연결되었다. 들인 돈을 회수하려면 손님이 들어야 했다. 이는 곧 타인의 니즈도 충족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상과 현실 간의 타협점을 찾아야 할지 고민이 됐다. 꼭 혼자 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러 명이서도 방문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면 출판전야의 고객층이 넓어질 수 있었다.


문득 시인의 방이 떠올랐다. 시인의 방이 여럿이서도 갈 수 있는 곳이었다면 고독의 바통이 이어졌을까. 고독해지기 위해 꼭 혼자일 필요는 없지만 혼자면 고독해지기 좋은 건 사실이니까.


출판전야는 글 쓰는 곳이고 글쓰기는 고독을 필요로 한다. 혼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여지를 남겨 두면 그것이 출판전야의 매력을 갉아먹을 것 같았다. 출판전야는 고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되어야 했다.


결국 심지를 굳게 다잡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물론 마음만큼 마음대로 되는 게 없긴 하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가 다시 입김을 불면 흔들릴 수 있겠지.


이때 한 책이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소전서림이라는 도서관에서 서가를 둘러보던 중 한 책이 눈에 띄었다. 그 책은 큐레이션 섹션에서 표지를 드러낸 채 놓여 있었다.


<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 제목을 본 순간 손을 뻗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아쿠스 다카시가 후즈쿠에(fuzkue)라는 책 읽는 가게를 준비하고 운영하며 남긴 글. 북카페가 아닌 ‘책 읽는’ 가게의 이야기였다.


간직하고 싶은 문장이 많아 책을 구매했다. 필요할 때 찾아오는 귀인 같은 책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책이 바로 그거였다.


집에서 책을 다시 읽으며 인상 깊은 글귀에 밑줄을 그었는데 유독 힘이 실리는 문장이 있었다.


북카페가 의미하는 건 단지 책이 있는 카페이고 거기에 읽는 행위에 대한 태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북은 리딩과 전혀 상관이 없다.

책이 있는 장소와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는 전혀 다른 곳이다.


아쿠스 다카시는 책을 좋아해서 독서만을 위한 장소를 만들었다. Book보다 Read에 초점을 맞춘, 오롯이 독서인만을 위한 장소.


나 또한 글쓰기를 좋아해 작가를 위한 장소를 만들려고 하니 비슷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쿠스 다카시에게는 사명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잎을 무성히 틔우려면 그리고 그 무성한 잎을 생기 있게 유지하려면 그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장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쿠스 다카시는 영화관을 예로 들며 말했다. 영화관이 영화 문화의 근거지가 된 것처럼 자신의 책 읽는 가게도 읽기 문화에 기반이 되었으면 한다고.


책의 앞부분에서 일본 사회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설명이 나온다. 아쿠스 다카시는 읽는 문화를 지키기 위해 책 읽는 가게를 시작한 게 아닐까.


아쿠스 다카시는 '하고 싶다'를 넘어 '해야 한다'의 단계까지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그의 얘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관도 저무는 온라인의 시대, 책 읽는 가게 후즈쿠에가 잘 되지 않을 거라는 말을 수차례 들었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다. 나 하나만이라도 이 일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믿으면 된다. 종말을 앞두고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처럼. 아쿠스 다카시는 사명으로 주위의 우려를 이겨냈다.


나와 출판전야에게도 사명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주위의 우려와 마음에서 피어나는 회의를 이겨낼 수 있을 테니까.


출판전야가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도 필요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출판전야가 쓰는 문화의 밑거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글쓰기는 독서보다 상황이 안 좋을지 모른다. 자기소개서 취미란에 글쓰기를 쓰면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글쓰기는 낯선 취미다.


주입식 교육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의 생각을 쓰기보다는 남의 생각을 받아 적으라고 하는 사회다.


정답이 있는 글쓰기, 누군가는 붙고 누군가는 떨어지는 글쓰기. 즐거울 리 없다. 입시를 거친 대다수의 학생에게 글쓰기는 그렇게 기억된다.


우리와 가장 가까워야 할 창작 수단인 글쓰기조차 멀게 느껴지다니. 조지 오웰이 유토피아란 보통 사람의 생래적 창조성이 발현되는 곳이라 했는데 우리에겐 먼 나라 이야기다.


쓰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나는 출판전야를 해야 한다.


이 세상에 이야기가 하나라도 더 나오게 하자. 이것을 출판전야의 사명으로 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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