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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Mar 23. 2024

백지(白紙)

채워지길 바라는 곳

<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를 읽을 때 인상 깊었던 문장이 더 있었다.


카페가 불편한 이유로는 가게의 자의식이 잘 보인다는 점


아쿠스 다카시는 가게에 운영자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면 독서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얘기했다. 출판전야를 위해 여러 장소를 다닌 후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장소는 운영자의 취향을 전시한다. 직접 고른 가구, 장식품 혹은 운영자의 작품 등. 손님은 관람객이 되어 그의 세계를 구경한다.


이게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그런 곳은 책 읽기에 적합하지 않을 뿐. 미술관에서 보통 전시된 작품을 보지 가져온 책을 읽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글쓰기도 독서와 마찬가지다. 손님이 글쓰기에 전념하려면 출판전야는 운영자의 전시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의식을 드러내지 않고 들어내는 것. 빼기를 출판전야의 기조로 삼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이 미니멀리즘이다. 장식적인 요소는 최대한 덜고 기능적으로 필요한 물건만 출판전야에 들이기로 했다.


이러한 방향성은 책 <아무튼, 서재>에 나온 바람직한 서재의 모습과도 이어졌다.


정체와 기원을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 질서 없이 무분별하게 산재해 있는 서재는 선비의 공간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결론적으로 출판전야에선 내가 아닌 손님, 즉 몽상가가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출판전야에 와서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길 바란다.


때문에 출판전야는 백지(白紙)와 같은 장소가 되어야 한다. 손님이 와서 자신의 이야기로 채우려면 나의 이야기는 최대한 걷어내야 하는 것이다.


백지 같은 장소라 하여 철학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무인양품처럼 제품에서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게 출판전야의 철학이 된다.


나를 덜어낸 만큼 출판전야가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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