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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May 12. 2021

딸의 귀여움에 100유로 넘게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자는 행복하다

복순이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잘 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면 딸기맛을 먹을까 초콜릿 맛을 먹을까 수준에서 고민하나와는 달리 아이는 같은 초코맛이라도 강가에 즐비한 아이스크 키오스크 중에도 펭귄 브랜드 말고 하트가 그려진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다는 정도로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요구한다.

 나는 아이만 할 때 인기 캐릭터의 알파벳을 살짝 틀리게 쓴 시장표 신발주머니를 보고 부끄럽다고 생각했지만 안 들고 다니겠다곤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금의 내겐 아이의 옷이나 물건을 아이 없이 혼자 산다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그렇게 해서 산 물건을 아이가 좋은 기분으로 오래 사용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에는 까만 가죽 재킷을 사달라고 하더니(물론 가죽은 아니고 합성피혁의 재킷을 사주었다) 올해는 청자켓이다. 청색과 흰색의 배합과 앞주머니 무늬까지 고심해서(그래 봤자 패스트 패션이지만) 청자켓을 고르더니 잽싸게 운동화까지 추가한다. 목이 짧은 여름 양말은 3개가 2개 가격이니 당연히 추가하고, 아이의 옷을 사러 올 때나 가끔 사게 되는 내 양말도 한 세트 담는다. 이의 옷을 살 때 내가 확인하는 것은 단 두 가지, 크기가 맞는지(너무 꽉 끼지 않는지)와 세탁이 용이한지(세탁기 코스 한 번에 달아날 부속품들은 없는지) 뿐이다. 이것들 말고도 매니큐어니 뭐니 자잘한 물건들에 마음을 뺏기는 아이지만 단호히 끊기로 한다.

 쇼핑을 하고 나니 허기가 찾아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토마토 모차렐라 크로와상과 코코아 한 잔을 시켜준다. 내가 먹을 빵과 음료까지 사고 나니 지출액은 100유로를 웃돈다. 누군가에겐 얼마 안 되는 돈이겠지만 식료품 구입을 전담하지 않는 내 통장에선 일주일 넘게 그 절반도 출금되지 않을 때 많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쇼핑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서울의 동대문 시장 쇼핑센터에 가서 바지와 신발, 운동화까지 샀던 것이다. 그때까진 주로 엄마가 사주는 옷, 엄마랑 같이 대구 시내의 보세 상점 같은 데서 산 옷을 입었다. 너는 통통하니 날씬해 보이는 옷을 입어야 해, 그런 기준에 따라 골라진 옷들은 늘 어둡고 칙칙한 색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엄마가 백화점 매대에서 너무 심각하게 중년 여성 대상의 반짝이가 달린 옷을 집어 들고 내게 권하셔서 백화점 점원이 난감해하며 만류한 적도 있다. 서울로 와서 자취를 하게 되고 나서도 그런 우울한 옷들이 내 옷장을 채우고 있었기에 새로운 옷을 사게 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날 나는 오늘 아이가 산 청자켓과 같은 옅은 색 청바지와 옆으로 메는 베이지색 가방 하나를 샀다. 아이가 산 운동화와 비슷한 배색의 흰색과 하늘색이 섞인 에나멜 운동화도 샀다. 후에 그 옷들을 입고 사진 동아리 출사를 나갔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날의 단체사진 속 내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처음으로 내 취향에 맞는, 입고 싶은 옷을 입은 내가 빛나 보였기 때문인지 귀갓길엔 모르는 남자가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별로 영양가 있는 만남은 아니었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아이는 자기가 입을 옷을 직접 고르고, 우리는 그 옷은 지금 날씨엔 춥거나 덥다는 정도의 가이드라인만 준다. 아직 사춘기가 아니라서 맨살이 드러나는 옷이나 몸의 굴곡이 보이는 옷으로 다툴 일은 없고 부모의 취향으로 상하의 매칭 같은 걸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원하던 물건들을 손에 넣은 아이는 행복하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아이의 취향도 변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행복하다고 내일도 행복할 수는 없다. 작년까지 여름철엔 야구모자를 쓰더니 올해는 등산모자처럼 생긴 모자가 유행이란다. 유치원 다닐 때 좋아하던 핑크색 물건들엔 이제 손도 대지 않고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겨울엔 검정 패딩 바지를 입겠다고 한다. 좋아하던 체리 재킷에 손이 가지 않는다는 아이의 말처럼 내년에는 지금 좋아하는 무늬의 옷들이 지겹게 느껴질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수록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엄마와 쇼핑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만큼 자라기 전까지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옷가게에서 100유로 이상을 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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