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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Jun 05. 2021

너 자신을 아는 것과 100점 맞는 것, 뭣이 중헌디?

핀란드 초등생의 자기 평가서

오늘은 아이가 손꼽아 기다리던 방학식 날이다. 성적표를 손에 받아 들고 오면 8월 중순까지 길고 긴 여름방학이다. 방학이 끝나면 아이는 3학년이 된다. 초등 저학년 때까지는 올수가 문제가 아니고 올백도 우습던 라떼 엄마라 성적표를 가져올 아이를 기다리며 아이가 학기 초에 받았던 자기 평가서를 꺼내 본다.


초등생에게 자기 평가서라니. 직장인들도 자기 평가라는 걸 하지만 그 쓰임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약간은 기계적으로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다 너무한 것 같으면 몇 항목은 깎아내리기도 하고... 뭐 그런 거?


아이가 가져온 자기 평가서는 한 장의 종이에 국어와 수학 능력, 태도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여러 문장들이 쓰여 있고, 스스로 평가에 따라 녹색, 노랑, 빨강으로 색칠을 되어 있다. 상단에는 아이의 이름과 확인한 부모의 서명이 들어간다. 나머지 세 귀퉁이엔 국어 교과서와 비슷한 그림체의 동물들이 있는 걸 보니 Otava 출판사에서 만든 평가문항들이 아닌가 싶다.


자기 평가서 문장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덧셈과 뺄셈을 능숙하게 할 줄 안다."

"곱셈의 원리를 이해한다."


"단어를 읽을 수 있다."

"(문장 또는) 문구를 읽을 수 있다."

"(짧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을 수 있다."


"단어를 쓸 수 있다."

"(문장 또는) 문구를 쓸 수 있다."

"(짧은)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글씨를 알아볼 수 있게 쓴다."

"줄에 맞춰 글씨를 쓴다." (국어 연습장과 공책에는 내가 중학교 때 쓰던 영어 공책처럼 네 줄이 그어져 있다. 상중하로 나누어져 있는 셈.)


"(발표하고 싶을 때) 손을 들고 기다린다."

"선생님 지시에 따른다."

"숙제를 한다."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친절하게 대한다."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에 얌전하게 행동한다."


언제나처럼 자신감 뿜뿜하는 아이는 거의 모든 칸을 녹색으로 칠해 놓았다. 비교적 양호한 아이지만, 이 종이를 다시 보니 아이의 숙제를 2년 간 봐온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단점들이 떠오른다.

 그간 b와 d를 헷갈리지 않기, q의 오른쪽 선을 너무 길게 머리 위로 올리지 않기, 문장 쓴 후엔 마침표를 꼭 찍기, 수학 문제를 풀 땐 문제를 먼저 잘 읽기, 예시를 잘 보기, 자꾸 빨리 풀려고 하지 말고 적어도 한 번은 다시 확인해 보기, 답을 쓸 때는 흐리게 쓰거나 대충 지우지 말고 또박또박 쓰기 등등 기본적인 사항들을 알려주려고 얼마나 애써 왔던가. 얼마 전에 가져온 기말 시험지 점수를 생각하면 오늘 받아올 성적표 내용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면서도 작년보다 조금 좋은 점수였으면 하는 것이 엄마의 바람이다.


초등학생이 5점(수우미양가의 '수'에 해당)으로 가득 찬 성적표를 받아온다고 해서 그가 완벽한 것은 아니리라. 다만 그 나이 때의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알 뿐이다. 새학년 새학기엔 아이가 아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더 많은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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