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미래보다, 준비된 오늘

당장 답이 보이지 않아도 꿋꿋이 메워간 시간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by 꿀아빠

[계획한대로 이뤄지는 일은 생각보다 없다]


"5년 후, 혹은 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취업 준비생 시절,

내가 가장 싫어했던 자기소개서 문항이다.

질문의 의도가 구체적인 나의 미래 예측이 아닌 비전과 태도를 보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매번 수 시간을 고민하며 괴로워했다.

지난 삶을 생각해 보면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간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철저하게 짜인 인생 계획보다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할 때 예기치 못한 기회가

찾아올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다.

대학원 시절, 앞날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파고들었던 이유 역시 그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건축학도에서 개발자로, 우연히 적성을 찾다]


먼저 "왜 대학원에 지원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건축을 공부하던 내가 어떻게 엔지니어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본래 언어보다 수학과 물리에 능숙한 전형적인 이과 체질이었다. 하지만 운동, 음악, 미술 등 예체능을 많이 접하게 해 주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내내 디자이너와 화가를 꿈꿨고, 한때는 플루트 전공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입시 때는 미대 진학을 반대하신 부모님과 타협하여 진학한 곳이 건축학과였다.


나름 원해서 선택한 과였지만, 5년의 공부 끝에 내린 결론은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답이 명쾌하게 떨어지는 수학을 좋아했던 나에게 건축 설계는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모호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예술적 천재성을 가진 타입은 아님을 빠르게 인정했다.


그 길로 건축 전공자를 뽑는 대기업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메이저 건설사 위주로 공략했지만 매번 결과는 최종 면접 탈락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취업 준비를 하며 처음 이름을 접했던 LG CNS에만 유일하게 최종 합격하게 된다.


당시 LG CNS는 비전공자를 선발해 개발자로 육성하는 파격적인 채용을 진행 중이었다. 마침 스마트시티 열풍으로 한 사업부에서 건축 전공자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던 때라,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합류했다. 회사 이름의 'C'가 당연히 건설(Construction)인 줄 알았을 만큼

IT 문외한이었던 내가,

개발자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후 'IT 사관학교'로 명성이 자자했던 CNS만의 독한 교육 과정이 시작되었다. 곤지암리조트에서 합숙하며 매일 코딩 테스트와 프로젝트를 치러야 했고, 성적은 즉시 팀장님께 보고되었다.


다행히 생소했던 프로그래밍은 막상 접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전형적인 이과 체질인 나의 적성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IT 기업에 입사한 만큼 프로그래밍은 숙명과도 같았기에, 나는 기꺼이 그 과정에 뛰어들었다. 즐기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임한 결과, 교육 수료 시점에는 나름의 성과까지 뒤따랐다.


[알파고의 등장과 함께 AI, 그리고 대학원에 문을 두드려 보다]


LG CNS에서 프로그래밍이라는 제2의 적성을 발견한 뒤, 엔지니어로서 꽤 순탄한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입사 5년 차가 되었을 무렵, 전 세계를 뒤흔든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열렸다.

IT 업계에 몸담으며 인공지능이라는 키워드를 익히 들어왔지만, 이 사건은 AI가 내 삶의 실질적인 화두로 들어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사내에도 AI 관련 사업부들이 신설되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수행하던 업무는 AI와 거리가 멀었지만, 건축학도에서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그때의 자신감을 무기로 무작정 조직 전배를 신청했다.

신설 조직 특유의 유연함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붙고 나니 두려움이 생겼다.

IT 업계에서 개발자로 커리어를 쌓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늘 '비전공자'라는 꼬리표가 부채감처럼 남아 있었다. 특히 AI라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로 옮겨가며, 밑천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잠재울 유일한 방법은 제대로 된 공부뿐이었다.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과정을 찾았고, KAIST 정보경영 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었다. 타 대학 컴퓨터공학과의 파트타임 석사 과정과도 고민했지만 대한민국 공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곳에서 한번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등록을 하게 된다.


장황하게 쓰긴 했지만, 이 모든 선택과 결정들은 내가 취업 당시 썼던 자기소개서 “향후 5년 계획”에는 단 하나도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계획된 미래보다, 준비된 오늘]


대학원에서 보낸 시간 역시 치밀한 계산의 결과는 아니었다. 사실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이게 과연 내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될까라는 물음표는 늘 가지고 있었지만, 당장 눈앞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저 내게 주어진 과제와 숙제들을 묵묵히 해내며 순간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인연들을 귀하게 여기며 관계의 깊이를 더하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무미건조했던 작은 노력들이 쌓여,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낚아챌 수 있는 단단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또한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던 비전공자로서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주저 없이 나아갈 수 있는 확신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러니 대학원이든 혹은 다른 어떤 새로운 기회든,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장의 선택이 인생에 곧바로 플러스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 노력은 반드시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되어 당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이미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시, 학교로 간 직장인들』 릴레이 에세이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7 IMMS 6기

전) LG CNS

전) SK 하이닉스

현) 구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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