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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욕구, 최소한의 행위]

먹고살 밥에

by 유니크한 유니씨

<1202>

5JrMeqokPjjkq3akylKdQ-14m7U.jpg 2024 11/ am7:12




작년 봄, 비자발 퇴사했다. 하루아침에 속 쓰린 백수가 되어 실업급여를 받으며 다음을 모색해야 했다. 중3 아이는 질풍노도 한복판에서 ‘나는 사춘기다.’ 막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우리 모녀는 큰 소리 내는 빈도가 높아지는 만큼 웃음이나 대화, 함께 하는 시간은 줄었다. 내 말이 닿지 않는 아이에게 나 또한 별로 해줄 게 없었다. 다만, 아침밥을 차리며 아이와 단절되지 않기를 바랐다. 거르지 않고 되는대로 간단하게 아이 밥을 챙기면서 어쩐지, 좋은 마음이 드는 걸 느꼈다.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재미있게 보내면 좋겠다.… 한 번 깨 우면 벌떡벌떡 잘 일어나서 고마웠고, 지각하지 않고 잽싸게 등교하다니 감사했다. 휴대폰 폴더에 밥상 사진을 찍고 모으기 시작했다. 순전한 마음들이 쌓이는 것 같았다. 특별할 건 없지만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차림이 소중했다. 평범한 하루들이 그런 것처럼. 사진에 글을 쓰는 중이다. 마음으로 들여다본 아이와 나, 그리고 이제는 내가 살펴야 할 나의 엄마와의 관계들에 대해서. 기록은 어쩌면 바람이자 주문, 어떤 기운일지도 모른다. ‘글 상차림’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모색이고 다짐 같은 것, 남겨두고자 한다.


밥상은 신성하다거나 내가 이렇게 매일 아침을 차려주는 엄마라는 걸 말하려는 건 아니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한 아이이기에 누구에게나 소용될 레시피도 아니고 솔직히 못된다. 상차림은 아이와의 연결이자, (차려)주고- 받는 입장이며, (모녀)관계다. 이 관계에 대한 불안과 고민, 반복되는 기대와 실망들, 그러나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기다려야 하는 입장과 태도 같은 것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척에 계신 돌봄이 필요한 엄마의 늙음에까지, 이야기는 확장하고 연결된다.


사실 음식, 먹는 일은 살기 위한 최초의 욕구이자 최소한의 행위, 그 자체로 '삶'이고, 타인을 위해 음식을 차려낸다는 것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인정하며 쌓여가는 시간, 관계다. 한편, 음식을 위해 재료를 구입하고 사용하며 먹고 남고 버리는 일은 지구적 삶과도 연결된다. 먹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환경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위기는 먹거리부터 달라지게 한다. 기후가 위기가 된 것은 200% 인간들 때문이고 여기서 또 기후 정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매일 반복하는 일, 지극히 평범한 상차림에서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다소 거창...심히 걱정)/ 1218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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