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비자살적 자해
상담실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온 민수(가명 고1). 민수는 키도 크고 유머감각도 좋은 아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고 이곳 상담실이 안전한 곳인지를 확인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자기개방에 신중했던 민수가 점차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에 자연스러워지면서 민수는 학교생활도 더 가벼워지고 친구들을 상담실에 전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고등학교 1학년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민수가 꺼내기 어려웠던 이슈는 부모의 이혼이었다. 지금 자신이 가장 후회스럽게 느끼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부모님 이혼하실 때 엄마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답했다. 민수는 초등저학년 때부터 겪었던 정서적 어려움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이 부모의 이혼이었고, 지금도 어떤 밤이면 알지 모를 깊은 슬픔이 자신을 스멀스멀 덮쳐오는 것 같다고 했다. 스스로를 이혼이라는 파도의 조난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민수가 왼쪽 팔목에 팔목보호대를 하고 왔다. 운동을 좋아하는 민수여서 운동하다가 다쳤나 보다 생각하려던 찰나 자해했어요,라고 담담히 이야기했다. 민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날 때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럴 때마다 종종 자해를 해왔다고 했다. “죽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정말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잠깐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요. 그때 (자해)해요”
자해의 정서 찾기
*최근 1-2주일간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그때의 상황이나 생각은 어땠나요?
*최근 1-2주일간 느꼈던 감정들을 이전에도 자주 경험하였나요?
*주로 언제 그런 감정들을 자주 경험하나요?
*그런 감정이나 상황들을 일으키는 상황이나 요인은 무엇인가요?
자해(Self-Injury)는 자신의 몸을 일부러 해치는 모든 행동을 말한다. 여기에는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자해와 자살 의도가 없는 비자살작 자해가 모두 포함된다. 비자살적 자해는 자살하려는 의도 없이 신체를 고의로 손상시키는 행위다. 주로 감정을 조절하거나 심리적 고통을 해소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진다. 민수는 비자살적 자해(NSSI)를 시도하고 있었던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청소년이 자해를 통해 얻는 심리적 기능은 주로 내적 고통의 감소, 자기 처벌, 통제감 회복, 도움 요청 등이다. 이렇게 보면 비자살적 자해는 살기 위한 한 방법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반복되면 자살 위험으로 연결될 수 있어서 매우 큰 주의가 필요하다.
비자살적 자해를 촉발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요 요인들이 있다. 정서적으로 보면 분노와 불안, 우울이다. 통제하기 어려운 자신의 분노를 공격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이 자해다. 만성적인 우울 공허감 무기력을 해소하기 위해 시도하기도 한다. 자해의 통증으로 잠시라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경험하기 위한 것. 또 청소년기는 전두엽 발달 미성숙으로 충동 통제가 어려워 즉흥적인 자해 발생 가능성도 높다. 그밖에 외적 스트레스와 환경적 요인, 또래 및 SNS 영향, 자기 비난과 낮은 자존감, 뇌 기능 및 생물학적 요인 등이 있다.
자해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상담실을 방문하는 학생들 사이에 또 다른 유형의 자해를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간혹 있다. 패션자해는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비자살적 자해의 또 다른 양상이다. 자해의 외형(상처 붕대 칼자국)을 마치 패션 아이템처럼 노출하거나 모방하는 행위다. 실제 자해를 하지 않더라도 자해한 것처럼 보이도록 꾸미는 경우도 포함된다. 그러다 보니 실제 자해가 위험하다는 인식보다는 많이들 한다, 그럴 수 있다는 무감각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실제로 위험에 처한 청소년들이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하다.
어른들은 청소년의 패션자해에 대해 단순한 유행이 아닌 청소년들의 감정적 고통이 변형된 표현 방식으로, 정서적 문제를 건강하게 표현할 길이 없는 사회적 신호로 봐야 한다. 부모나 교사는 단순히 관심 끌려고,라고 보지 않고 정서적 고통의 표현일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학교에서는 SNS, 자해, 감정표현 등과 관련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자해를 낭만화하거나 미화해서는 안된다.
상담사는 상담을 통해 진짜 자해와 패션자해를 구분하고 동기와 정서 상태를 평가해 개별 맞춤형으로 개입해야 한다. 경진이는 상담실에 올 때마다 두꺼운 긴팔을 입고 왔는데 어느 상담시간에 온몸에 담배빵(담배 불로 지진 흉터)이 많아서 긴팔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중학생 시절에 이런저런 유형의 자해를 했었고 이제는 하지 않지만 흉터가 많이 남아있다고. 그 흉터들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고 자신도 보고 싶지 않아서 자신을 가리고 살고 있다고 했다. 경진이는 사실 겉모습은 화려한 패션자해 같았지만 자기혐오가 깊게 깔려 있었고 현재는 경진이가 자기혐오에서 자기 연민으로, 자기 연민에서 자기 수용으로 가도록 돕고 있다. 이 더운 여름 시원한 반팔을 입고 지낼 수 있기를 응원한다.
청소년의 자해는 감정을 조절하거나 고통을 표현하려는 방식인 경우가 많아서, 자해를 단순히 금지하는 것보다 자해를 대신할 수 있는 건강한 대안활동을 제시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다양한 문제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을 위한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활동들이 필요하다. 진영이는 자해 생각이 들면 바로 방안의 불을 켜고 방문을 열어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향수를 맡는다고 했다.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각을 한껏 사용한 현명한 자기 보호 방법이어서 칭찬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자해를 대체할 활동을 찾을 때도 각 개인별 선택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자해 대체할 활동 예시
-활동량이 큰 운동하기(스트레칭 달리기 등)
-따뜻한 샤워, 얼음 샤워
-신뢰하는 친구와 전화통화 및 대화
-애완동물과 시간 보내기
-매운 음식 먹기
-글쓰기(일기 쓰기)
- 그림 그리기
-ASMR 듣기
-온라인 / 오프라인 상담 참여
지하철에서도 손목보호대를 하고 있는 수많은 민수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었지만 언젠가부터 손목보호대의 의미가 눈에 들어왔다. 능력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이 정서적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에 어른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우리 주위에 있는 수많은 민수들이 영혼의 밤을 지날 때 우리 어른들은 그 밤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 영혼의 밤을 함께 지나 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자신을 덮치는 깊은 슬픔과 마주하고 상담실을 찾아온 용기, 깊은 슬픔의 언어들을 찾아오는 성실함, 자신의 정서적 어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탐색해 보는 끈기, 의지를 낼 수 없는 정서적 상태를 인정하고 병원에 도움을 요청하는 의지. 이 모든 것들이 영혼의 밤을 건널 수 있게 하는 징검다리기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수야, 부모의 이혼은 너때문이 아니란다. 아빠도 엄마도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어두운 길을 지날 때 잠시 기억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