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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조 Sep 28. 2024

사랑의 바다

사랑이 주는 따뜻함과 아늑함

행복과 불행, 그리고 그 사이의 회색지대,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은 영역 속을 우리는 살고 있다. 0과 1의 이진법으로 나타내는 모스 부호처럼 행복 아니면 불행이라는 이분법적 삶이 아니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 것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지는 않나? 하지만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하다는 말에는 쉽사리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여리디 여린 피아니시시모부터 매우 강렬한 포르티시시모까지 행복과 불행은 강도의 차이에 따라 주욱 늘어서있다. 한때 유행하였던 신조어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가져다주는 희열을 반복하면 삶이 전체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다. 또,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의 큰 행복을 위해 현재라는 터널을 고통으로 점철된 상태로 통과하고 싶지 않은 바람이기도 하다. 소확행은 헛된 희망을 바라보며 현재를 희생하지 않겠다는 저항의 의미가 담긴 말이다.


내일 만난다는 사실만 떠올려도 행복해지는 사람,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대중교통의 모든 괴로움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 집에 돌아오는 길이 멀고 힘들어도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 메시지 하나만 받아도 기쁨과 행복이 느껴지게 하는 사람. 가슴 뛰는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위와 같은 경험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도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 사이의 회색지대가 존재하기 나름이다. 영혼이 이어진 것 같이 아주 짙은 사랑부터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단계인 호감까지 사람마다 또 관계마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갖는 깊이가 다르다.


다만 행복과 다르게 사랑은 마음을 먹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태양은 빛과 열을 내뿜어 한결같이 지구를 보듬는다. 우주 안에서 자연적인 질서에 의해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일 뿐이지만, 지구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태양은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내려주는 존재와 같다. 태양이 있기에 생명이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오래도록 뜨겁게 한결같을 수 없다. 부모와 자식 간 사랑 외에는 죽을 때까지 한결같은 사랑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사랑은 함께 노력해야 사랑의 바다 한가운데로 깊이 내려앉을 수 있다. 사랑의 바다는 포근하고 아늑하며 기분 좋은 온기를 품고 있다. 우주 공간처럼 끝을 가늠해 볼 수조차 없다. 사랑의 시작은 쉽지 않았고 그 속의 우주와 같은 공간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입구도 작아 보였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마음이 열리는 순간 보이지 않던 사랑의 바다도 그 입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쩌면 가벼운 마음으로, 또 어쩌면 매우 설레는 마음으로 입구에 발을 넣어 두 사람이 함께 바다의 품에 안기는 그 경이로운 순간은 잊을 수 없다.


사랑의 바다에 빠진 순간부터 두 사람은 사랑의 넉넉함과 따뜻함, 아늑함, 기쁨과 설렘에 가슴이 벅차다. 햇살이 눈부신 날이나 구름 낀 날이나 비가 내리는 날, 매우 덥거나 손이 저릴 정도로 춥거나 폭풍이 몰아치는 날조차도 상관이 없다. 또한 지루하고 힘든 공부와 직장 생활, 고향으로부터 이역만리 동떨어진 곳에서 느끼는 그리움조차도 사랑은 모두 따뜻하게 달래고 어루만져준다. 다만 사랑이 현실을 어루만져 줄 정도가 되려면 사랑의 바다에 서로 깊이 내려앉아야 한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나의 현실은 보다 따뜻하고 아늑해진다. 책상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본 적이 있는가? 사람들과 들어간 카페에 앉아 턱을 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불현듯 아무 이야기도 귀에 들리지 않고 행복한 미소를 띤 적이 있는가? 책상 가득히 쌓인 일감을 바라보다가 혼자 피식 웃어본 적이 있는가? 평소 예민했던 상황을 부드럽게 넘어간 적이 있는가?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자신의 표정과 말투, 행동을 보고 요즘 좋은 일이 있는지 묻는가?


사랑을 해야 한다. 어떤 사랑이든 사랑은 전염되고 전염된 사랑은 모두를 따뜻하고 아늑한 사랑의 바다로 인도한다. 사랑은 가족, 친구, 이성 등 상대와 종류의 구분을 무색하게 한다.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깊이를 갖추고 그 따뜻함과 아늑함을 느껴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적어도 행복의 땅에 발 딛고 서 있는 것이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진: UnsplashMayur G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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