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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조 Nov 10. 2024

사랑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을 맛있게 먹고 아버지께서 주신 용돈을 감사히 받고 나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온몸이 들썩였다. 현관문 상단의 작은 유리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작은 무늬들이 새겨져 불투명했다. 투명한 햇빛이 불투명한 유리를 통과해 바닥에 그려내는 다양한 모양은 어린 나에게 매우 신기했다. 하지만 예외 없이 강렬한 태양이 조금씩 기울어 사람들을 분주하게 만들고 어스름이 점점 짙어지며 땅을 뒤덮으면 전봇대의 불빛이 주황색으로 하나 둘 켜졌다. 불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전봇대의 불빛을 바라보면 상하좌우로 빛 번짐이 발생해 우주의 반짝이는 별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내려와 강렬하게 반짝이고 있다는 황홀함. 세상을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유리창이 달린 현관문 너머에는 함께 놀고 싶은 아이들과 즐거움을 안기는 세상이 있었다. 나는 눈부신 즐거움으로 가득한 바깥세상을 사랑했다. 


골목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든 나가 뛰놀 수 있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쪼그려 앉아 재미있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쉼터였다. 먼저 나온 아이들은 동네 친구의 이름을 목청껏 외쳤다. 골목길을 감싸던 건물과 벽에 이리저리 튕기고 갈라져 에워싼 모든 곳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친구의 뜨거운 부름은 마법과도 같아서 밥을 먹다가도, 숙제를 하다가도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서 아이들을 밖으로 뛰쳐나오게 했다. 흙바닥 공터에 세워진 천막은 동네 아이들이 모여 달고나를 만들어 먹고 방방이를 즐기는 아지트였다. 또 나는 오락실을 꽤나 좋아했는데, 상상으로만 떠올렸던 세상이 오락기의 화면에 펼쳐지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공룡이 거품을 쏘며 적을 물리치거나 게임 속 세상에 퍼진 악마를 퇴치하거나 캐릭터가 사랑하는 존재를 구하는 등 화면 속의 배경이나 등장인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 등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바깥세상은 나의 호기심을 채우며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신비의 나라였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은 밖에 나가 놀 수 없었다. 비에 대한 우울한 감상은 아마도 어린 시절 마음껏 뛰놀 수 없는, 천진난만함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기도 하다. 때론 비도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방해할 순 없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바깥세상과의 단절은 아이들에겐 저주나 다름없었다.


어렸을 때에는 사랑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잘 몰랐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과 가족, 아끼는 장난감, 인형 등에서 막연한 행복을 느꼈다. 나의 성장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넓어졌고 내딛는 발걸음의 영역도 한계가 없어졌다.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할 수 있고 어디든 떠나고 싶으면 갈 수 있는 자유가 생기며 세상을 더 넓게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물건과 사람을 접하고 만나는 경험이 쌓이면서 내게 행복을 안겨주는 대상도 다양해졌다. 어떤 대상은 시시로 떠오르며 머릿속을 빈틈없이 가득 채웠고 어떤 대상은 가슴 한편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줄로만 알았더니 부지불식간 부풀어올라 저리도록 가슴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의식하지 않아도 떠올라 나의 영혼에 스며드는 존재를 향한 마음,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랑이 항상 따뜻하다거나 행복을 느끼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것, 사랑은 원치 않는 고통과 불행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을 어느 정도 이해한 후부터는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글쓰기 볼펜은 그 단단한 몸체의 디자인이나 색상이 다른 것과 달리 마음에 들었다. 책갈피의 재질과 색상, 가볍게 적힌 문구, 문구를 이루는 글씨체까지도 보기 좋았다. 좋아하는 사람의 볼에 있는 옅은 점과 미소 지을 때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입꼬리, 잠에서 덜 깬 눈빛마저도 좋았다.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았을 때의 기분 좋은 느낌, 만졌을 때의 감촉과 코를 타고 오르던 향기까지 모든 것이 나에게 행복한 감정을 안겨주었다. 특히 사물과는 다르게 나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동물이나 사람-은 더욱 특별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 일은 실로 중요하다.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이야말로 사랑의 바다에 모든 것을 쏟을 수 있는 용기를 갖춤과 동시에 깊이를 갖추어 침잠하고 오롯이 사랑 속에서 살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에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고통과 불행까지 품어 안으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추어야 한다.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깊은 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진실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사진: Unsplashfrank mck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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