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유난히 맑고 포근한 어느 날, 볕이 따숩게 내리쬐는 한낮의 봄. 남자와 여자가 카페에 들어섰다. 카페의 한 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유리창은 사람보다 키가 컸다. 갈색 블라인드가 큰 창을 대부분 가리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봄날의 햇살은 가려지지 않은 창문의 틈으로 스며들어와 바닥에 내려앉았다. 아이보리색 무광 재질의 타일이 깔린 바닥임에도 불구하고 봄날의 볕은 그 빛을 불규칙한 타일 표면에서 반사시켜 은은하게 번지며 카페 전체를 비추었다. 낮은 조도의 천장 조명은 그 역할이 불투명했다. 볕이 기울어질 저녁나절이 되어야 의미를 가질법했다. 짙은 고동색의 낮은 테이블 한쪽 모서리에 비치는 햇빛이 다소 현대적이면서도 차분한 카페 분위기에 포근함을 더했다. 두 사람은 테이블 모서리에 햇빛이 살짝 내려앉아 포근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이 어려있다. 아마도 두 사람은 상대의 눈빛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 또한 소중한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눈 맞춤과 미소는 카페에 포근히 내려앉은 햇살에 사랑의 향기를 더한다. 이윽고 두 사람 주위에서 반사되어 은은하게 퍼지던 햇빛처럼 사랑의 향기도 온기를 더하며 주위로 은은히 퍼진다. 내민 손을 마주 잡으면 온화하게 순환하던 공기가 살짝 소용돌이친다. 아무도 느낄 수 없는 흐름이 아우라처럼 두 사람에게서 흘러나온다. 손과 손톱을 살며시 매만지며 행복을 느낀다.
"우리 정말 잘 맞는 것 같아."
"응, 그런데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자기랑 잘 맞는다고 하던데?"
"..."
"내가 잘 맞춰주는 성격이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 하지만 모두가 나랑 잘 맞지는 않았어. 내가 맞춰주면서 잘 지내왔던 관계도 있었으니까."
"그래, 그럼 나도 맞춰주고 있는 거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기를 만나면서 누군가에게 맞춘다는 느낌이 없어. 나라는 사람이 온전히 나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어."
꽃봉오리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면 한가득 머금고 있는 향기가 살며시 느껴진다. 풍선처럼 부불어 오른 꽃봉오리가 갈라지며 돌돌 말린 꽃잎이 자태를 드러낸다. 꽃잎 사이로 향기가 새어 나와 바람결에 은은하게 퍼진다. 세상을 향해 모습을 드러낸 꽃잎은 참으로 곱고 화려하다. 바라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화려한 모습과 들숨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매혹적인 향기는 아찔하다. 가까운 곳의 농도 짙은 꽃향기는 무척 매혹적이다. 그러나 먼 곳에서부터 바람결로 전해지는 은은한 향기는 비록 농도는 옅지만 더 넓게 세상을 채우며 아련하다. 두 사람의 사랑이 짙은 향기를 뿜어내며 주위로 퍼진다. 그리고 카페 구석구석 넓게 퍼진 사랑의 향기는 따뜻하고 아늑한 기운을 사람들에게 불어넣는다.
이제 두 사람은 사랑의 바다에서 한 손을 마주 잡고 다른 손으로 지도를 펼친다. 그들이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찾아볼 지도에 아무것도 나와있지 않아 무척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이미 지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예상했겠지. 이제 그 지도를 자신들이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 맞추며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아무도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두 사람이 함께 마주하고 부딪히고 넘어야 할 난관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겠다는 막연한 불안과, 난관들을 함께 손잡고 넘어보겠다는 기대, 여정의 과정에서 굳건하고 대체불가능한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할 뿐이다.
두 사람은 마주 잡은 손을 잠시 놓고 잔을 들어 자신들이 주문한 음료를 한 모금 들이킨다. 시답잖은 일상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 앞에 놓인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더 깊어지는 사랑의 시간을 켜켜이 쌓는다. 오늘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다음 주도, 다음 달도, 내년도... 그렇게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