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의 현실을 짚어보다
꿈을 꾼 것 같다. 분명 이리저리 흩어져 떠다니던 나의 정신이 머릿속 한 부분의 작은 구멍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듯싶었다. 이윽고 정신을 천천히 떠다니던 나의 의식이 그 어두운 구멍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갔다. 넓은 공간에서 천천히 흐르던 공기가 좁은 통로를 만나 유속이 빨라지듯 나의 의식도 빠르게 그 공간을 통과하며 흘렀고, 구멍을 통과한 의식이 내 머리의 어느 한 부분에 집중되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또렷하게 잠에서 깨어있다고 느꼈다.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사방은 아직 어두웠다.
이렇게 잠을 설치는 날이 종종 있다. 잠들지 못하던 몸을 어떻게든 달래서 겨우 눈을 붙였건만 깊이 잠들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잠에서 깬다. 어떤 날은 눈을 감은 채 모든 의식을 깊은 어둠에 내맡기려 하면, 관자놀이에서 뛰는 아주 작은 맥박의 꿈틀거림에 의식이 집중된다. 심지어 규칙적으로 새근거리는 호흡소리에 의식이 집중되기도 한다. 늦은 시간 마신 커피가 심장을 마구 두드려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보통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떠오르거나 마음이 괴롭거나 고민이 있을 때 쉬이 잠들지 못한다.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던 것들을 떠올려 본다. 미래에 대한 고민, 고백에 대한 거절,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나의 의지로 해결될 수 없는 상황 등 당시에 느꼈던 심적 고통이 주를 이룬다. 나의 불면이 심리적인 부분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되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단지 하루의 불면일 뿐이다. 적어도 몸의 이상으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온몸에 진통제처럼 퍼지며 지끈하던 머리의 통증이 잠시 가라앉는다. 통증이 잦아든 후 잠시 흐트러졌던 생각의 흐름을 다시 잡는다. 그래, 사랑이었다. 사랑에 관한 고통이 불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다. '나의 사랑은 보편적인가?', '나의 사랑은 특별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많은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어떤 마음의 상태를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대상을 향해 가슴 안쪽 깊숙한 곳으로부터 애틋하게 피어나는 마음? 떠올리거나 바라만 보아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마음? 머리를 쓰다듬거나 뺨을 어루만지고 싶은 충동을 주체할 수 없는 마음? 아름다운 풍경을 옆에서 함께 지켜보고 싶은 마음?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예쁜 옷을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을 향한 마음? 작은 실수나 엉뚱한 모습을 봐도 싫기는커녕 매력으로 느껴지는 마음? 필요하다는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적어도 나의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집착이나 병처럼 느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사랑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데, 사랑을 받아들이는 대상이 불안을 느끼거나 불편하거나 행복하지 않다면 잘못된 사랑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므로 사랑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온기와 편안함, 아늑함, 다정함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충분히 존중하고 배려하며, 따뜻한 마음을 충분히 전달하려고 하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다정한 표정과 행동으로 표현하면서 상대가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끼고 있는지를 살핀다. 나의 말과 행동은 사랑하는 대상이 바뀌어도 그 사람에게 행복을 선물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떠올린다. 이런 보편적인 사랑은 단순히 생각만으로 이루어지진 않고 경험과 연습도 필요하다.
내 사랑이 충분한 보편성 속에서 상대에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면 사랑의 특별함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누구나 사랑하는 상대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고 싶어 한다. 물론 외모나 재산과 같은 조건들 때문에 사랑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그런 사랑은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금세 식어버린다. 그러나 매우 다행히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내면세계에 대한 상호작용이며 특별한 사랑의 힘은 불리한 외부의 조건을 능가한다. 특별한 다정함으로 온기를 더욱 포근하게 느껴 함께 있을 때 매우 편안한 기분이 들거나,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충분히 사랑받는 느낌을 받거나, 함께 있을 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에는 자신만의 특별함이 필요하다.
사랑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깨닫고 사랑을 시작하고 이어가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라서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사랑을 주는 방법은 각자가 인생의 여정에서 깨우쳐야 한다. 받은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곱씹어 깊이 느낀 사람은 받는 사랑에서도 주는 사랑의 깨우침을 얻는다. 하지만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확인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스스로의 훌륭한 삶의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