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사랑은 한 사람만을 위한 마음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갈구했던가? 되짚어보면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호감을 느꼈었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는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도 마음은 한치의 거리낌도 없었다. 호감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때, 단지 좋아하는 마음이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호감이 몸 밖으로 흘러나와 상대가 느낄 정도가 되면 축복이 되거나 상처가 되는 일로 귀결되어 버린다.
내가 마음의 거리낌이 없었던 이유는 호감을 마음속에 꽁꽁 싸매두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호감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수줍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호감을 드러냈을 때 발생하는 상처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많이 부족했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호감을 표현하고 거절당하는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다.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하는 것에 익숙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풍기는 호감의 향기는 그 누구도 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호감이 사그라들어 나조차도 그 향기를 느낄 수 없었다. 용기가 없던 사람의 사랑은 이렇게 혼자 불꽃이 일고 심지에 불이 붙었다가 결국 아무런 연료도 산소도 제공받지 못한 채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호감을 처음으로 표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단둘이 연극을 보러 가자며 내가 약속을 제안했던 것 같다. 데이트를 처음 해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연극을 보러 가자는 약속에 대해 주변의 누구에게도 얘기를 하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내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내 상황을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데이트에 관해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적당한 연극과 식사 메뉴 등을 떠올리며 모든 것을 혼자 생각하고 준비했다. 우린 만났고 연극을 봤고 적당히 맛있었던 식당에서 밥도 먹었다. 데이트가 끝나고 지하철역에서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마음속 깊숙이 숨겨 놓았던 호감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마음이 복잡해 보이던 상대는 다음날 대답해 준다는 말을 남긴 채 지하철에 몸을 실었고 나는 그날 잠을 설쳤다. 그리고 전해 들은 거절의 메시지에 가뜩이나 소심하고 용기가 없던 나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나는 마음의 문을 더 철저히 닫고 어떤 호감의 향기조차 빠져나오지 못하게 스스로 옥죄었다. 많은 호감이 마음에서 태어나 빛을 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되었다. 호감을 키워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수많은 상황을 나는 그저 흘려보냈으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쉬운 시절인 것 같다.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철벽을 쌓고 살았으니 말이다. 어쩌겠는가 작은 사건 하나가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 상황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찾아온다. 나에게만 운명이 가혹했다고 생각하며 온갖 저주의 말을 쏟아부을 수는 없지 않은가!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내게 누군가 찾아와 주어 용기를 심어주기도 했고, 자라난 용기 덕분에 누군가에게 호감을 꺼내 보여줄 수도 있게 되었다. 거절은 언제나 상처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밀봉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여러 사람과 마음을 나누면서 사랑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며 삶을 더욱 아름답게 느끼며 살 수 있었다.
호감을 여러 사람에게 품고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던 시절과 생각의 변화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여러 사람에게 호감을 품는 일이 상대를 아프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호감을 동시에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에 불편을 느꼈다. 그렇다고 호감 자체를 없앨 수는 없었다. 자연스러운 마음의 이치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 마음을 집중하고 호감은 예전처럼 마음속 깊이 넣어두는 것이었다.
세월이 더 흘러서야 사랑이라는 마음이 꼭 남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보편적인 마음임을 깨달았다. 사랑을 너무 좁고 뾰족하게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제 사랑이라고 하면 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어떤 이웃 등 여러 사람을 떠올린다. 동시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소모적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욱 크고 따뜻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사랑이 확장되고 서로 연결되어 무한한 신뢰와 온기가 넘치면 정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운 세상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무한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하더라도 대상을 한정지어야 하는 사랑이 있음을 또 생각한다. 남녀의 사랑은 서로에게 단 한 사람뿐이어야 한다. 무한한 사랑 중에서도 매우 특별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이다. 보편적인 사랑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부분에서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 명의 연인을 가져본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부서진 마음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게 만들지 않았을까?
남녀의 사랑은 특별하다. 그리고 서로에게 서로뿐이어야 한다. 호감만이 아니라면 우리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평생 이어지길 꿈꾸고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서로의 노력 없이는 차갑게 식어버리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