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선물, 행복
아직 여름의 열기가 가시지 않았던 9월의 저녁, 숯불로 고기를 굽는 식당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아직 더운 날,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숯불 앞에 앉아 지글지글 고기를 구우면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고 땀이 흘렀다.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콧잔등에 솟아오른 땀방울과 화끈한 숯불의 열기조차도 반가운 사람과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지 못했다. 은은한 노란빛이 살짝 감도는 민트색 셔츠와 은은한 파스텔톤의 황토색 빛깔을 띤 정장 바지를 입은 남자는 집게를 분주하게 움직이며 고기를 구웠다. 하얀색 티셔츠와 어깨끈이 얇은 검은색 점프슈트를 입은 여자는 네일아트샵에서 관리받은 손으로 수저와 물컵을 세팅하고 반찬을 먹기 좋은 위치로 옮겼다. 식당 안의 사람들이 저마다 내뱉는 낱말과 문장들이 공간을 시끄럽게 가득 채웠지만 두 사람의 테이블 가까이 다가서자 의미 없는 울림으로 변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들어진 둘만의 공간을 자신들의 말과 웃음으로 가득 채웠다.
불현듯 자꾸만 생각이 난다. 바람에 살짝 흩날리던 머리카락이,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 살짝 보인 이마가, 마주치던 눈동자에서 느껴지던 따뜻한 눈빛이, 미소 지을 때 살짝 올라가던 입꼬리가, 물건을 가볍게 집어 올리던 손모양이, 나란히 걸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미소 짓던 얼굴이, 약속 장소에서 나를 맞이하던 환한 얼굴이, 앞서 걷던 뒷모습이 생각난다. 이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조금씩 쌓인다. 고요하게 비어있던 마음에 한 장면이 입혀지고, 옆으로 위아래로 새로운 장면들이 이어진다. 형언할 수 없이 많은 장소와 기억들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럴수록 떠오르는 시간의 간격이 짧아지고 거의 매 순간을 함께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함께 있지 않아도 마음으로는 계속 함께 있게 된다. 좋은 장소를 우연히 알게 되면 함께 가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함께 먹고 싶고,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 있으면 함께 듣고 싶다.
함께 있을 때, 마음 가득히 행복이 차오른다. 함께 있지 않을 때조차도 떠오른 얼굴, 함께 한 기억들로 인해 마음이 따뜻해진다.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함께 보내지 않는 시간이 더 많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행복은 마음이 가득 차 있던 순간을 기억하는 과정일 것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삶을 꽉 채우기 위해서 결혼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사랑으로 행복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 그 마음이 결혼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물론 결혼 후에 사랑이 식거나 크고 작은 일들로 서로에게 실망하는 일이 쌓여 이별을 선택하기도 한다. 사랑이 식고 차가워진 마음으로 서로를 비난하거나 갈라선다고 해도 우리 마음에 쌓였던 기억들은 여전할 것이다.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그때의 미소를, 그때의 눈부셨던 서로의 얼굴을, 몸짓은 영원히 쌓여 있다. 가끔씩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마음의 온기 때문이다. 그 온기는 단지 사랑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했던 기억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진리는 세상 모든 것에 적용이 되듯, 사랑도 분명 끝은 있다. 그 끝이 단지 마음이 식은 상태일 수도 있고 상처받아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찬란했던 사랑의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에 상처받고 아프지만 또 다른 사랑을 찾는 이유는 남아 있는 사랑의 기억이 아름답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차갑게 식어가는 우리의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감싸 안을 사랑이 필요하다.
얼마나 크고 따뜻한 사랑의 기억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으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한 번뿐인 삶에서 사랑은 삶의 축복이다. 가슴속 무의식에 깊이 뿌리내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어주는 사랑을 우리가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 스탠드의 주황빛이 포근하게 나를 감싸는 책상 앞에 앉아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떠올린다. 가슴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