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행복을 위한 제언
눈은 어두운 밤하늘을 점점이 수놓는다. 눈이 내리는 겨울날은 높은 습도 때문에 기온이 낮지 않다. 영점 근처의 온도가 겨울치고는 제법 따뜻하다고 할 수 있으나 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반갑지 않은 손님도 함께 찾아오기 마련이다. 눈송이가 하늘에서 사뿐하게 내려오는 포근한 밤이었으면 좋으련만 심술궂은 바람은 그런 포근한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듯싶다. 눈발이 날린다.
현실이 어떻던지 간에 나는 머리와 어깨에 눈송이가 살포시 내려앉는 감상적인 풍경의 눈 내리는 밤을 맞이하고 싶다. 높은 건물로 둘러싸인 도심의 삭막함 속이 아니라 들판이나 숲 속과 같은 자연 속에서 맞이하면 좋겠다. 눈앞에 잠시 떠올랐던 자연 속 눈 내리는 풍경이 한순간에 밀려나며 나는 현실로 돌아와 가로등이 켜진 도심의 산책로 위를 어지럽게 쏟아지는 눈을 본다. 눈은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떨어지는가 싶더니 변덕스러운 바람에 따라 자유롭게 방향을 바꾸며 이리저리 흔들린다. 영점의 기온이 무색하게도 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가며 체감온도는 훨씬 낮다.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은 두 손을 웅크려 주먹을 쥔다. 심장에서 모세혈관으로 전달된 손끝의 체온이 조금이라도 덜 빠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휘날리는 눈송이는 빗방울이 굵어지고 가늘어지듯 크고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걷는 동안 강하게 휘날리는 눈발이 바람과 함께 안구에 부딪힌다. 뜻밖의 침략자로부터 신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눈꺼풀이 자동으로 닫힌다. 최종 침략자를 막아주는 속눈썹은 바람을 타고 앞으로부터 들이닥치는 눈송이에 속수무책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눈송이가 뭉쳐서 우박과 같은 작은 알갱이가 되어 떨어진다. 무거워진 알갱이가 안구에 부딪히는 일이 없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에는 알갱이들이 노크하듯 머리를 가볍게 두드린다. 가벼운 질량으로 떨어지던 눈송이와 달리 제법 무게가 더해지면서 시각을 넘어 촉각으로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머리에 차가운 눈이 쌓여 감기에 걸릴까 외투의 모자를 당겨 머리에 씌운다. 눈이라는 다소 반가운 감성의 존재에게 매몰차게 대한 꼴이 되어버려 미안하지만 어쩔 수는 없다.
삭막한 도심 속, 변덕스럽게 이리저리 나부끼며 내리는 눈이라고 할지라도 눈이라는 존재가 갖는 특성은 변치 않는다. 비록 아름다운 대자연 속 설경의 장관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눈은 단순히 날씨와 기후로써 인식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 시절 골목에서 친구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던 기억, 눈을 뭉쳐 서로에게 집어던지며 친구들과 눈싸움을 했던 기억, 눈길에 차가 막혀 학교와 직장에 심각하게 지각을 했던 기억, 눈 때문에 비행기가 취소되어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
특히 눈이라고 하면 지나칠 정도로 감상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는데, 이를테면 사랑이나 이별과 연관되는 특별한 경험의 감정이 그것이다. 첫눈이 내리는 날 좋아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기억, 사랑하는 사람과 길을 걷다 내리는 눈을 마주친 기억, 소중한 사람을 배웅해 주며 걷는 길에서 마주한 함박눈의 기억. 우리는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을 소중한 사람과 나누고 싶다. 유독 눈이 그런 존재로서 우리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반면에 이별과 고통의 기억이 배가 되기도 한다. 실연의 아픔으로 고통스러울 때 내리는 눈, 포근하게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날카로운 언행을 주고받던 기억, 한껏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전후의 길거리를 사랑의 상처 속에서 혼자 걷던 기억.
세상을 오래 살고 경험이 늘어날수록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은 결국 행복에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이작 뉴턴의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나의 작은 깨우침에 빗대자면 나는 고작 많은 선각자들이 이미 수없이 언급했던 그들의 깨달음을 이제야 일부분 이해한 모양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책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얻은 지식에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진정한 깨달음은 세월이 흐르면서 쌓인 경험과 지식이 맞닿았을 때 찾아온다. 시와 이야기, 드라마, 심지어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랑과 관련한 내용들이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 알려주기는 하지만 결국 진정한 깨달음은 경험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다.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사랑의 깨달음을 이야기하며 존경의 시선으로 연륜의 경험이 쌓인 어른들을 바라보게 되었고 비록 나이가 어린 사람일지라도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을 쌓은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 고작 작은 깨우침 하나로 참 요란스럽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런 깨우침 하나가 기점이 되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수많은 선택지가 존재하는 삶에서 복잡한 이정표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나침반 삼아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면 온갖 유혹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사랑의 행복은 고통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아물도록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자신의 내면을 따뜻하고 아늑하며 포근하게 만든다. 또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그 속에 싹튼다. 이별과 상실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사랑해야 한다. 사랑으로 느끼는 행복은 우리 삶의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한다. 차갑고 굳게 닫힌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세상을 아름답고 인정이 넘치는 곳으로 만든다.
우리 삶의 목적지가 행복이라면 우리는 사랑을 해야만 한다. 일이나 어떤 목적이 아닌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자신을 따뜻하게 만들고 우리 주변을 포근한 소용돌이로 감싸야한다. 사랑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밝히자는 거창한 이야기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더 가깝겠지만 내가 노벨 평화상을 받을 일은 요원하니 그저 한 가지만 목표로 삼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 자신을 위해 사랑하자.
사진: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