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에는 유적지에 대한 역사나 관광 정보가 별로 없다. 정보를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여행이 내 마음에 새긴 것들을 남기고 싶어 쓰기 시작한 글이기 때문이다. 이번 글도 그렇다. 타지마할이 인도의 한 왕이 죽은 왕비를 위해 지은 것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것 외엔 알려줄 만한 놀라운 역사적 정보가 이 글엔 없음을 먼저 알린다.
인도에 사는 사람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타지마할을 본 사람과 못 본 사람'
10년을 살았지만 타지마할을 못 본 사람일 뿐이었던 다섯 식구가 타지마할을 보러 가기 위해 시작한 여행. 시작과 함께 먹방 여행이 되어 모든 인도 음식을 먹고 또 먹었던 여행. 사막은 못 봤지만 자이푸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바라나시의 특별함에 빠져들고, 뱅갈루루의 편안함에 행복했던 여행... 바로 이 여행의 목적지인 '타지마할'에 도착했다.
자이푸르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해질 무렵에 아그라에 도착했다. 1월의 북인도는 해가 지면 꽤 쌀쌀해진다. 남인도는 아무리 추워도 최저기온이 15도 이하로 잘 내려가지 않는다. 반면 북인도의 1월은 꽤 추웠다. 난방장치가 없는 건물에서 10도 이하로 내려갈 때 느끼는 체감 추위는 빼 속까지 오그라 들게 한다. 오래전에 인도에서 봤던 뉴스에 의아했던 적이 있다. 북인도에 갑작스러운 한파가 닥쳐 길에서 잠을 자던 노숙인 수십 명이 동사했다는 것이었다. 그날 새벽 최저 기온이 영상 7도인가 였다. 어떻게 영하 7도도 아니고 영상 7도에 사람이 동사할 수가 있을까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북인도의 으스스한 추위를 경험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져온 모든 옷을 껴입고 호텔의 모든 이불을 겹겹이 덮고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컴컴한 이른 새벽, 곯아떨어진 아이들을 깨우고 바라나시에서 산 인도 옷을 챙겨 입혔다. 이 유명한 관광지 타지마할은 낮이 되면 몰려드는 인파로 몇 시간이고 줄을 서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새벽 6시부터 매표소가 문을 연다고 하니 5시에 가서 줄을 서기로 했다. 숙소는 타지마할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고 있었다. 타지마할을 직접 볼 기대를 가지고 걸어 들어가는데 마음이 두근거렸다.
신비스럽게 깔린 엷은 안개가 지면을 덮고 있었다. 희고 고운 실크 이불을 살짝 덮은 것과 같은 모습으로 타지마할이 부끄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타지마할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내 눈 앞에 다가왔다. 인간의 문명이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건축물이 실제인지 호텔에 걸려있던 사진인지 뇌가 착각을 일으키고 있었다. 눈에만 담기 너무나 아까워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셔터를 눌러댔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낯선 서로에게 내가 찍어줄 테니 저기에 서라면 카메라를 덥석 덥석 받아줬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 앞에 모두가 착한 사람이 돼버렸다.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다섯 식구가 함께 찍은 사진을 지인들에게 톡으로 보내며 실시간 자랑질을 시작했다. 이제 난 '본 자'가 되었다. 넌 아직 못 본 자일뿐이라며 지인들을 놀렸다. 그런데 사진을 본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야~ 이거 합성이구만, 완전 합성사진 티가 팍팍 나네!!'
내가 봐도 정말 합성사진 같았다. 직접 본 내 눈에도 이토록 비현실적으로 보이는데 사진이라고 아니할까? 이런 비현실적이며 아름다운 건축물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인간은 한 없이 악해질 수 있다. 서로를 죽이고 또 죽이고 증오한다. 그러나 태초에 신이 인간을 처음 만들 땐 자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분명 인간의 본성 어딘가엔 신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을 보며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