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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의나비 Oct 15. 2024

6. 드디어 쓰다!

어느 날, 문득 머릿속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음… 꿈에서 나타나는 여자를 찾아 헤매는 남자? 아니면 사랑을 잃고 죽음을 선택하는 슬픈 남자 이야기? 아, 데이트 어플로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이야기도 괜찮을 것 같아. 아니, 아니. 복수극 어때? 남자에게 상처받고 환생해 복수하는 여자의 복잡한 이야기? 으아아,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거지?’ 


머릿속이 마치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차고 넘치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건 완전 아이디어 폭주 상태였지만, 정리가 안 돼서 답답할 뿐이었다. 


이거 언제 다 쓸건데?


혼잣말을 하며 머리를 헝클어보았다. 

그래, 책부터 읽자. 그럼 뭔가 실마리가 보이겠지?


곧바로 인터넷 검색에 돌입했다. 

“100만 클릭을 부르는 웹소설의 법칙”, “억대 연봉 부르는 웹소설 작가 수업”, “웹소설 써서 먹고 삽니다” 와 같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많은 책들 중에 뭘 골라야 하나 싶었지만, 일단 눈에 들어온 몇 권을 정독하기로 했다.

책을 읽다 보니 조금씩 머릿속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빠르게, 캐릭터는 매력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첫 문장이 중요하다’는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좋아, 나도 할 수 있어!


책을 덮으며 혼자서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이제 진짜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슬슬 솟아오르고 있었다. 

시작이 반이니까, 남은 반도 해볼 수 있겠지?


새벽에 일어나 빈 종이에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마구 써내려갔다.

제목, 캐릭터, 로그라인, 줄거리...

자, 하나씩 해보자고.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지려는 걸 느끼며 나는 종이와 펜을 잡았다. 

먼저 제목! 

제목은 이야기를 집어삼킬 큰 틀, 독자들을 단숨에 끌어들이는 첫인상이니까. 일단 가볍게 메모장에 몇 개 적어본다.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그녀를 갖겠습니다?... 흠…


그리고, 캐릭터... 

주인공은 꿈속 여자를 찾아 헤매는 남자라... 그의 감정과 상처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거야. 

그리고... 그를 흔들어놓을 여주인공. 여소희. 어딘가 모르게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로 만들어야지. 

10년 동안 사랑했던 문재성이라는 인간한테 배신당했지. 바람이라니, 하! 그럼 당연히 복수 해야지, 자살? 아니지. 회귀해서 복수하러 돌아와야지!"

문재성은 당연히 나쁜 놈으로… 바람 피운 남자니까 매력을 덜어내고 독자들이 이 남자를 싫어하게 만들어야겠지.

내 머릿속에서 각종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소희는 한때 순진한 여자였지만, 이제는 독해진 캐릭터. 그리고 문재성, 찬란한 성공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통스럽게 후회하고 있는 남자. 

마지막으로 주형욱은 여소희의 든든한 지지대이자, 진짜 사랑을 찾는 순정파 남자.


이제는 로그라인! 

이게 문제야. 짧으면서도 강렬하게 이야기를 집어넣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꿈에서 본 그녀, 현실에서 찾으려는 남자. 그리고 그들의 얽힌 운명'... 음, 일단 적어두자. 부족하지만 나중에 다듬으면 되니까.


줄거리? 

이제 큰 흐름을 잡아야지.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던 이야기들을 줄거리로 딱 정리해 놓으면 훨씬 수월할 거야. 

소희가 남자를 피하고, 결국 자살하고, 회귀… 복수? 아니면 빙의? 어떻게 연결하지… 이야기를 하나하나 조각 맞추듯이 만들어 나가자.


이거 완전 드라마보다 더 재밌겠는데?
근데 이거 언제 다 쓰냐? 벌써부터 머리 아픈데?


적으면서도 내 속에서 두근거리는 흥분을 참을 수 없었다. 이거 잘만 쓰면 대박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오늘은 또 뭐가 떠오를지 계속 써봐야겠다.

이런 생각들과 함께, 나는 빈 종이 위에 글자들을 막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책에서 블라이스라는 독립 작가 플랫폼을 발견했다. 

대형 플랫폼보다 훨씬 자유롭고, 초보 작가들이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말에 ‘이거다!’ 싶었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걸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부담이 한결 덜어졌다. 

사실, 이거 완전 내 스타일 아닌가? 

나는 블라이스를 검색해봤다.

들어가자마자, 연재 방식과 작가들이 작품을 올리는 과정을 읽어 내려갔다. 뭔가 되게 간단해 보이는데,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스쳐갔다. 기대와 걱정이 엇갈리는 그 순간, 마치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설명 페이지를 읽으며 점점 자신감이 올라왔다. 

일단 한번 해보는 거지, 뭐!


진짜 해볼까 하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블라이스, 나한테 맞을 것 같은데? 초보 작가들이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라니, 여기서 내 첫 글을 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블라이스로 시작해보자. 첫 글을 쓸 준비만 되면 바로 올리는 거야.


[어떻게 밖으로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미정이 옆에서 계속 무슨 말로 화를 내고 있었고, 나는 그저 걸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미정이가 집에 같이 들어가겠다는 걸 말려서 돌려보내고 현관 문을 닫고 들어와 그 자리에 기대어 섰다. 현관 센서 등이 켜졌다 꺼졌다. 나는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무릎을 안고 고개를 묻어 서럽게 울었다.

내가… 아니… 네가… 네가… 우리가…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상상도 못 해본 일이 눈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다시 그려보고 싶지도 않은 장면이 자꾸만 떠올라 눈을 감았다. 지워버리고 싶어. 다 없던 일로 하고 싶어. 이럴 수는 없어. 내가…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어. 이렇게 망칠 수는 없어. 왜… 내가. 왜…

이렇게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벌써 밖이 어슴푸레 밝아져 왔다. 

아침이 된 걸까? 정신이 멍하다. 눈에 힘이 없다. 힘이 풀린다. 어깨가 꺼질 듯 내려앉는다.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 

흘러가지 않을 거 같던 하루하루가 낯설게 흘러갔다.

완전히 달라진 날들이었다. 10년을 쌓아 온 사랑이 하루 만에 사라지고 미움과 원망만이 남았다. 왜 나는 바보같이 눈치채지 못했을까? 미련하게 붙잡고 싶었을까? 정말 몰랐던 걸까?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걸까? 이제 와서 후회해도 너무 늦은 일이지만 모든 걸 되돌리고 싶었다.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물음표로 가득한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머릿 속이 다른 무엇도 들어올 틈이 없이 의문과 후회와 슬픔으로 메워져 있다. 

슬퍼도 살아야지. 살아내야지 하고 꾸역꾸역 일어나 출근을 한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하루가 버겁다. 버텨내야지. 견뎌 내야지. 늘 그랬듯 웃어야 하는데 웃어지지가 않는다.]


소희가 재성이 바람피는 장면을 목격한 그 순간을 1화로 쓰기로 결심하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자판을 두드려 내려갔다. 처음엔 긴장됐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니 손가락이 멈추질 않았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들이 빠르게 쏟아졌고, 재성과 여자가 몰래 만나는 그 은밀한 순간을 글로 써 내려가는 동안 심장이 쿵쾅거렸다.

소희의 감정이 점점 고조되면서 내가 그 장면에 몰입한 것처럼 느껴졌다. 

글 속 소희가 절망과 분노로 치닫는 모습이 마치 내 속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녀가 문을 살짝 열고 재성과 그 여자를 목격하는 순간, 나 역시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이렇게 쓰는 게 맞을까?


 잠시 고민이 스쳤지만, 일단 그건 뒤로 미뤘다. 

중요한 건 쓰는 거니까. 완벽할 필요는 없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써 내려가 보자. 

그렇게 1화를 마무리하고 나니, 묘한 성취감과 함께 다가오는 약간의 불안감. '이게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어때. 일단 썼다!

1화 저장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조금은 어색하게 웃으며 "됐다!" 하고 혼자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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