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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 Sep 22. 2020

유후의 향기 11

由布の香り

"좋은 아침."

"어. 좋은 아침. 벌써 외출 준비한 거야?"

"응. 오늘 202호 게스트랑 자전거 타고 근처 돌아보기로 했거든."

"'킴'이랑? 오~데이트하는 거네."

"데이트는 무슨. 그냥 '킴'이 가이드해달라고 해서 가는 거지.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는데 잘됐지 뭐."

"나도 따라가고 싶은걸."

"같이 가."

"마음에 없는 말 하지 마셔."

"아닌데."

"알잖아. 나랑 토모미는 일해야 하는 거."

"혼자 휴일 즐기는 거 같아 괜히 미안한데."

"걱정 마. 일 많지도 않고 일 끝나면 우리도 데이트 갈 거니까."

"하하. 내가 따라가야겠는걸."

"저기 '킴' 내려오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빈이랑 어디 간다면서요?

"네, 자전거 타고 어디든 가보려고요."

"좋겠어요. 개인가이드도 있고."

"개인가이드는 무슨." 

"빈이 좋은 곳 많이 아니까 걱정마요. '킴'상."

"정말요? 그럴 줄 알았어요."

"잘 다녀와. 빈."

"응. 료도 즐거운 하루 보내고. 저녁에 보자고."

"저녁에 봐요."

"네. '킴'상 나중에 봐요. 데이트 잘하시고요."

"네?"

"아녜요. 료가 그냥 농담한 거예요."


 그는 내게 한쪽 눈을 찡그리며 주방으로 돌아가고 난 그녀와 유스호스텔을 나섰다. 함께 여행 중인 여자 친구와 하루를 즐기러 나서는 기분으로. 물론 여자 친구와 여행을 즐겨 본 지가 오래되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비슷한 느낌이었을 거다. 지금 이 기분과. 지난밤과는 많이 다른 풍경을 스치며 유후인역에 도착했다. 


"어떤 자전거로 할래요?"

"글쎄요. 자전거 자주 타는 편이 아니어서 뭐가 좋은 건지 모르겠네요."

"그럼 이걸로 해요."

"와, 이쁘다."

"이쁘기도 하고 전에 이거 빌려서 타 본 적 있는데 편하더라고요."

"근데 같은 자전거는 또 없나 봐요."

"네. 이 자전거는 한 대 밖에 없더라고요."

"저 혼자 좋은 거 타면 미안한데."

"괜찮아요. 다른 것도 탈만해요."


 내가 탈 자전거를 고르는 동안 그녀는 자전거에 올라 어린아이처럼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그녀보다 더 들떠 있던 내 마음을. 순간 공복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배고프지 않아요?"

"배고파요. 뭐 먹을까요 우리?"

"근처에 편의점 있으니까 먹을 거 사서 킨린 코에서 먹고 자전거 좀 타다가 배고파지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어차피 지금 시간이 일러서 아직 문 연 식당도 없고요."

"좋아요!"


 우린 지난밤 텅 비었던 유후인 시내를 달렸다. 파아란 하늘 아래 주황색 자전거의 페달을 굴리는 그녀의 모습은 뭐라 설명하기 어려웠다. 사춘기 소년이 홀로 사모하는 소녀를 몰래 바라보듯 조심스레 그녀 뒤를 따랐다. 오니기리(おにぎり 일본식 주먹밥)와 시원한 녹차를 사들고 킨린코에 다다랐다. 


"정말 좋네요."

"네. 소풍 온 기분인데요."

"어디 앉을 곳 없나?"

"있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저 쪽에 화장실 앞에 벤치?"

"아뇨. 이렇게 좋은 날씨에 화장실 앞에서 아침식사를 할 순 없죠."

"그럼 어디요?"

"따라와요. 햇살에 반짝이는 물고기들 구경하면서."

"킨린코. 정말 멋진 이름 같아요."

"왜 킨린코라 불리는지 알아요?"

"그럼요. 여행 책자에서 킨린코에 대한 글을 읽고 꼭 와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엔 생각보다 그리 크지도 않은 곳에 관광객이 몰려 있어서 조금은 실망했는데 햇살에 반짝이는 물고기들을 보고 나니 호수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이 곳 새벽 물안개가 멋지다는 얘기도 있던가요?"

"아뇨. 새벽 물안개도 멋지구나. 빈씨는 봤어요?"

"아직…"

"아직 못 봤어요, 한 달이나 있었는데? 하긴 아직 한 달이나 더 있을 거니까 기회는 많겠네요."

"글쎄요. 오히려 기회가 많아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 같아요."

"미루다 보면 지나쳐버리는 게 많긴 하죠."

"자, 거의 다 왔어요."

"여긴 신사(神社) 아녜요?"

"네. 샤갈 뮤지엄이 있는 저 건물의 반대편에 신사가 있는 게 재밌지 않아요? 이 곳에 벤치가 있어요."

"어디요? 안 보이는데."

"이 쪽이에요. 건물을 이렇게 돌아가면 호수와 맞닿은 바로 여기!"

"우와, 정말이네. 숨겨진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호수 앞에 바로 있네요. 어제는 왜 못 봤지?"

"무심코 지나쳐서 그래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저도 처음에는 벤치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더라고요. 내 눈 앞에. 그 뒤로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 곳에 와서 도시락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아, 나도 오늘만큼은 여유를 부려봐야겠어요. 경치가 너무 좋네요 여기."

"정말 아름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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