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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 Sep 17. 2020

유후의 향기 09

由布の香り

토요일 밤, 유후인역 앞의 이자카야는 그리 붐비지 않았다. 주민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과 열심히 꼬치를 돌려가며 굽고 있는 풍채 좋은 주인장. 그리고 어느새 현지인처럼 편안하게 그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나와 그녀.


"전 이자카야에 오면 항상 바에 앉아요. 진열된 재료를 보면서 무얼 먹을까 고민도 하고 꼬치를 굽는 것도 구경하고."

"저도 그래요. 재밌잖아요."

"서울에서도 친구들과 가끔씩 이자카야에 가는데 아직까지 제 마음에 드는 곳은 찾지 못했어요."

"괜찮은 이자카야 아는데…"

"어딘데요?"

"가로수길 잘 알아요?"

"아뇨. 몇 번 안 가봤어요."

"그럼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

"이름이 뭔데요?"

"이름은 모르고 위치만 알아요."

"알려주기 싫은 거 아녜요?"

"아녜요. 그러면 언제 한 번 같이 가요."

"같이? 언제요?"

"글쎄요. 이 번 여행이 끝나면…"

"난 내일 돌아가는데.”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모둠꼬치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와~맛있겠다."

"먹죠."

"잘 먹겠습니다~"

"이타다키마쓰(いただきます)!"

"음~맛있는데요. 뭔지 알아요, 이거?"

"닭 껍질이요."

"진짜요?"

"네, 카와쿠시(皮串)라고 닭 껍질 바삭하게 구운 거예요."

"닭 껍질도 이렇게 구우니까 맛있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꼬치구이 중 하나예요. 바싹 구워서 기름기도 거의 없고 배부르지도 않아서 맥주 안주로 최고죠."

"제 남자 친구는 이런 거 안 먹어요."

"그래요? 남자 친구 생각나는구나..."

"아뇨. 그냥 남자 친구랑 이런 데 와 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만났어요?"

"어떻게 만났는지 보다 얼마나 만났는지가 궁금해요?"

"같은 회사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만난 거 아녜요?"

"내가 얘기했나?"

"오늘 낮에 그랬잖아요."

"아… 2년 됐어요."

"쉽지 않을 때네요."

"뭐가요?"

"그 정도 만났으면 그 사람이 내 사람인지 아닌지 알게 되잖아요.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고."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빈씨는 여자친구 있어요, 얼마나 됐어요?"

"2년 됐어요. 헤어진지."

"혼자구나."

"네. 지금은 없어요."

"편하겠네요."

"미나씨는 남자친구가 불편해요?"

"아뇨. 가끔 이 사람이 내 인생을 함께 할 만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 중에 가장 이해심이 많고 편한 것만은 확실해요."

"같이 여행 많이 다녀봤어요?"

"시간 맞추기 힘들어서 짧은 패키지투어 몇 번 가봤어요."

"그런 관광 말고 여행."

"관광과 여행이 다른가요?"

"음... 제 생각에는 관광은 함께하기 쉽지만 여행은 어려워요."

"그게 다예요?"

"글쎄요. 저도 설명해 보라고 하면 쉽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관광은 짧고 구체적인 목적도 있고 여행은 그 보다 길고 추상적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오늘 낮에 미나씨가 유후인 시내를 구경하며 쇼핑한 것은 여행이라기 보단 관광에 가깝고 여행은 지금 우리가 우연히 만나서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 우리 대화가 보다 추상적이고 길어져야 되겠어요"

"하하하. 그렇네요. 우린 여행 중이니까."


그녀의 재치 있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린다. ‘관광 ‘여행 얼핏 들으면 비슷한 말이지만 내겐 너무나 다른 어감으로 다가온다. ‘관광이라면 왠지 가이드의 깃발을   없이 따라다니며 듣고 보고 먹고...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하면 많은 곳을 둘러보고 일상에서 쌓아두었던 스트레스를 발산한다. 어딘지 기억도 나지 않을 증명사진은 필수다. 그들은 항상 시끄럽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는 어딜 가던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길거리를 막고 다. 정말 이해할  없는 행동으로 국적불문,  세계 단체 관광객의 특징이다. 시간이나 경제적인 여유 또는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옳지 않지만  그들을  때면 무조건 피한다. 그에 비해 여행은 혼자 혹은 소수의 사람들이   자유롭고 조용하게 떠도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특정 장소에 가서 무엇을  봐야 하는 것도 없고 빡빡한 스케줄도 없다. 즐겁기도 하지만 때로는 슬프기도 하며 주어진 자유가 벅차 힘들기도  것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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