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n Sep 16. 2020

유후의 향기 08

由布の香り

토모미가 돌아가고 홀로 소파에 앉아 비에 젖은 유후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휴일을 위해 작은 계획이라도 세워볼까 했지만 그만둔다. 평소 같으면 육체노동에 지친 몸을 침대 위에 눕힐 시간이지만 오늘은 늦게 자더라도 내일 늦게 일어나면 그만이니까. 혼자만의 시간이 지루해질 무렵 그녀가 다른 게스트들과 함께 나이트 투어에서 돌아왔다.


"나이트 투어 잘 다녀왔어요?"

"어, 아직 여기 계시네. 내일 일 하려면 일찍 자야 하지 않아요?"

"내일 일 안 해도 돼요."

"쉬는 날이에요?"

"네."

"어디 좋은 곳이라도 가요?"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전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 어딜 가야 할지 고민이에요. 아직 많이 보지도 못했는데…"

"날씨 좋으면 자전거 빌려서 다니는 것도 좋은데."

"자전거는 어디서 빌려요?"

"유후인역에서도 빌려주고 근처에 가면 몇 곳 있어요."

"자전거 타고 어딜 가면 좋을까요?"

"음… 길 따라 그냥 달려요."

"장난하지 말고요."

"장난 아닌데."

"목적지 없이 그냥 달리기엔 전 겁이 많아요."

"그래도 좋아하게 될걸요?"

"글쎄요… 뭐할 거예요, 오늘 밤은?"

"술 한잔 하고 늦게까지 자고 싶어요."

"저도 이자카야 같은 데서 맛있는 꼬치구이랑 시원한 맥주 마시고 싶은데. 괜히 놀러 온 기분도 내고 싶고..."

"갈까요?"

"네? 문 연 곳 있어요? 여긴 5시면 상점 문 닫는다면서요."

"있을 거예요. 가보죠 뭐."

"가깝지도 않은 거린데 갔다가 없으면 어쩌려고요?"

"그럼 산책한 샘 치죠 뭐."

"너무 쉽게 얘기한다."

"어려울 필요 없잖아요."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비에 젖은 밤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어내려 갔다. 유후인 역 근처에 현지 주민들이 가는 이자카야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한 곳은 열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적어도 토요일 밤이니까. 말은 쉽게 했지만 단순한 산책 치고는 너무 먼 길이다. 게다가 가로등 하나 없는 미끄러운 밤 길이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기만 했다.


"이 쪽 길은 처음 걸어보네요."

"유후인 역 쪽으로 가는 길이라 이 길이 더 빠르거든요. 물론 토리고에 쪽 길이 훨씬 좋지만 돌아가는 거라서."

"혼자는 절대 못 가겠어요. 너무 조용하고 어두워서 겁나는데요."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 몇 번 다니다 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이젠 오히려 평화롭게 느껴져요. 그렇잖아요. 처음엔 뭐든 낯설고 겁도 나지만 곧 익숙해지는 거."

"익숙해지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걸요."


우린 어둡고 축축한 길을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어 내려왔다.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조심해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유후인 시내에 들어섰다. 아기자기한 상점들은 드문드문 박힌 가로등빛 아래 조용히 잠들어 있었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 마치 텅 빈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유후인역 앞에 다다르자 반가운 홍등이 보인다. '이자카야(居酒屋)'. 다행이다. 익숙해지려면 시간 좀 걸리는 밤길을 걸어 내려온 보람이 있어서. 그녀와 짧은 미소를 교환하고 그곳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목소리로 손님을 맞는다.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 어서오세요~)'


"어디 앉을래요?"

"바에 앉아요."

"바 자리가 좋아요?"

"네. 전 바가 좋은데, 싫어요?"

"아뇨. 저도 좋아요. 앉죠."


 우린 여러 가지 꼬치구이 재료들이 진열되어 있는 바 앞에 앉아 맥주를 먼저 주문하고 무엇을 먹을지 잠시 망설이다 모둠꼬치를 주문했다. 메뉴를 고르느라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행이다. 문 연 곳 있어서."

"제 주문이 통했네요."

"주문? 무슨 주문요?"

"영업 중인 이자카야가 꼭 있다는."

"정말요? 마술사시네."

"우리 모두가 마술사에요. 스스로 믿지 않을 뿐이지."

"믿으면 뭐든 이루어진다는 말이에요?"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죠. 간절히 원하면…"

"엉터리."

"간빠이(乾杯)!"

"간빠이(乾杯)~"

이전 07화 유후의 향기 07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