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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미 Oct 14. 2020

회사를 그만둘게

코로나 시대에, 아내 출산 12일 전에 퇴사한 40대 중반의 남편

평균 15년 이상의 직장 생활을 해온 40대 중반의 남자에게 회사 생활은 어떤 의미일까. 첫째로 같은 일을 20대 때부터 계속하고 있다면, 지겨울 수 있다. 둘째로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는 시기다. 그런데 스스로 하고 싶은 일도 여전히 많은 나이다. 남편의 이야기다. 나보다 4살이 많은 남편은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의 첫번째 직업을 회사를 옮기면서 업무 환경과 시대의 흐름에 맞게 조금씩 커리어를 발전시켰을 뿐, 직업 자체를 바꿔본 적은 없다. 그리고 작년부터 남편은 크게는 이 두 가지 이유로 직장 생활에 대한 다른 생각을 차차 하기 시작했다.


내 경우엔, 34세에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부장 직함을 달았을 때 회사에서 내가 몇 년을 더 일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36세에 12년 동안 유지해온 직장인 타이틀을 벗어던졌다. 고민이 많았던 그때 마침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고, 회사를 나와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6개월 만에 창업을 했다. 남편도 이 생각을 깨달은 건 몇 년 전이었을 텐데, 나와 결혼한 시점인 4년 전부터는 퇴사를 결심하기 더 어려워졌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 묶인 대출이 한 가지 이유였을 거고, 또 다른 하나는 사업을 하던 나의 상황을 고려해서였을 것이다. 사업을 하면 돈을 잘 버는 시기도 있지만, 아예 수입이 없는 달도 있을 수 있어서 부부 중 한 명이 사업을 하면 다른 한 명은 안정적인 수입이 나오는 직장인인 점이 좋다, 고 내가 은연중에 강요한 것은 아닌가 싶다.


사업을 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여럿 있었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후 약속된 잔금을 받지 못했을 때와 동업자가 회사를 나갔을 때. 그래서 남편이 받는 직장 스트레스를 나의 사업 스트레스보다 낮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다 작년 12월에 임신을 하면서 업무 시간과 환경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야 남편이 현재 겪고 있는 감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3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뒀기에 사실 이후의 연령대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을 상황들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사업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를 배려해서 그동안 본인의 감정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남편의 마음을 알아챈 시기부터는 적극적으로 남편의 생각을 들어주기 시작했고, 어떤 점 때문에 힘들어했을지 헤아리게 되면서 회사에 있는 것보다 나와서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내가 일을 줄였기 때문에 남편도 퇴사를 실행으로 바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가 발발하면서 마케팅 회사인 남편의 회사도 일거리가 많이 줄고, 그중에서도 오프라인 마케팅이 메인이던 남편 부서에 타격이 왔다. 부서의 나아갈 길을 고민하던 남편은 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질 앞으로의 세상에 대해 유튜브나 책, 사람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올해 상반기 내내 고민해오면서, 인사이트를 얻는 그때그때 나에게 공유해줬다. 본인이 본 글이나 영상을 공유해주거나, 퇴근하고 오면 앞으로 바뀔 세상에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했다. 나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달라지는 계기를 갖게 됐다.


남편은 더 이상 에이전시에서 본인이 할 일, 하고 싶은 일은 없다는 결론을 신중하게 내렸고, 나도 남편이 회사를 나와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을 지지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이 편하게 시간을 쓸 수 있는 컨디션이 되는 것이 육아 환경에도 더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임신 기간 중에 걱정을 많이 한 부분이 일을 오래 쉬게 될까 하는 점과 혼자 육아를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기 때문에.


사실 아기가 태어나고 육아휴직을 쓰면서 한 번 더 고민해볼지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고민은 많이 했고, 하고 싶은 일이 정해졌다면 육아휴직이 주는 유예기간이 필요하지 않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남편은 7월 말에 퇴사를 했고, 예정일을 10여 일 앞두고 (당분간 없을 수 있는)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이때만 해도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8월 12일에 아기가 태어났다. (8월 15일 이후로 코로나 2차 대유행 시기가 왔다.)

남편은 스스로를 극한의 코로나 시대에, 아내의 출산 직전에 회사를 그만둔 용감한(?) 아빠라고 칭한다. 출산 이후 두 달이 흐른 지금, 독박 육아를 했다면 너무나 힘들어했을 나와 함께 육아도 하고, 함께 일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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