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가정을 함께 지키는 라이프스타일
5년 전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창업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창업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스튜디오 컬처>라는 책을 접하고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몇 년 간 읽었다. 대부분 미국, 유럽 쪽 창업자들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소규모로 일을 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일과 가정을 유지해왔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부터 퇴근 시간도 가족과 저녁을 먹는 시간에 맞춘다는 것, 아이를 돌보기 위해 스튜디오 공간을 정리하고 집에서 일한다는 이야기 등 몇 년 전에 이 책을 접했을 때만 해도 "이게 가능한가?" 내가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중에 결혼을 하게 됐지만 워킹맘의 생활을 예상하며 준비하지는 못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익숙해진 출, 퇴근 문화를 스튜디오에도 고수했었다. 클라이언트의 출퇴근 시간에 맞추는 에이전시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습관과 성실한 근무 스타일 영향도 있었다. 불과 몇 년 전, 아니 불과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소규모로 일하는 스튜디오에서도 자유로운 운영 시간을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업무 시간 내에 공유해야 하는 스케줄의 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늘어난 사회적 변화의 영향도 있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바꿔놓은 삶의 변화는 나의 일 환경과 방식에 영향을 주게 됐다. 아이를 낳고 부부가 일을 하는 방식은 다양할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당분간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이라고 상상했다. 어떻게 해결해나갈지도 막연하고 막막했다. 그러다 남편의 퇴사 결정으로 육아와 일을 함께 하는 파트너가 됐고, 일이 들어오면서 집에서 남편이 아이를 보면 내가 일을 하고, 남편이 일을 하면 내가 아이를 돌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둘이 함께 미팅을 가야 하면 시어머니나 친정 엄마가 오셔서 아기를 봐주게 됐다. 아직은 아기가 어려서 되도록 빨리 귀가를 하면서.
결혼을 하기 전까지 하루에 자는 시간 빼고 일만 하던 성향 때문에 결혼을 하면 과연 일을 지금처럼 할 수 있을까 걱정할 때가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이 함께 있으니 안정된 마음으로 일도 하고 결혼 생활도 하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일을 했다. 육아를 하기 전에는 이렇게 일에 투입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역시 남편이 이제는 함께 일하니 육아를 하면서 일도 시작해보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효율성이 높아지고 적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내게 필요한 일들을 선별해내는 능력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임신했음에도, 내가 육아를 막 시작했음에도 응원해주고 함께 일하자고 선뜻 손을 내밀어주는 든든한 업무 파트너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새로운 출발인 것 같다. 누구나 경험하지 않은 일 앞에서 펼쳐질 상황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이 있다. 이제는 유럽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더 이상 동경만 할 대상이 아닌 것 같다. 동경한다는 것은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고, 그것에 동참할 수 있는 파트너가 가정과 일에 있다면,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시도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