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육아를 시작하고서야
30대 중반이 넘어가도록 결혼을 하지 않던 나를 보면서, 친구들은 내가 어쩌면 결혼을 안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친구들은 다들 일찍 결혼을 해서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반에는 가정을 이뤘다. 30대부터는 그 친구들과 길게 나눌 얘기가 없었다. 그 시절 나는 한참 일만 하면서 살았다. 친구들을 만나면 상사 험담, 이직 걱정, 연애 얘기를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내 얘기를 잘 들어줬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나와 유사한 그들의 경험이 섞이면서 이야기가 타고 타는 즐거움은 다소 부족했다. 그렇다고 내 앞에서 결혼 생활이나 육아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지도 않았고, 나 역시 경험해보지 않은 영역이어서 어떤 점들을 질문해야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가 어떤 때는 겉도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예전만큼 자주 연락하며 지내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30대 초반에는 유독 외로웠다. 그럴수록 더 일에 집중했고, 워커홀릭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들과 친구처럼 지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함이 있었는데,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어떤 심정일지,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아는 친구들과의 대화나 애정어린 시선이 그리웠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38세에 결혼을 하고, 41세에 아이를 낳고 나니, 나의 사랑하는 옛 친구들이 다시 내 곁에 돌아온 느낌이 든다. 먼저 육아를 하며 지내온 친구들은 나의 임신 소식에 누구보다 축하해주고 내가 알 수 없는 임신생활에 대한 정보를 주고 마음을 챙겨주었다. 친구들이 임신했을 때는 축하 인사 외에 건낼 말이 없었던 내 과거에 비해, 내가 임신한 기간 동안 받은 것이 많았다. 임신 전에는 몇 개월에 한 번씩 안부 인사를 나눌 정도로 거리가 생겼던 친구도 임신 기간에는 나눌 얘기가 많아서인지 예전처럼 자주 연락하게 됐다. 출산 이후에도 본인들의 경험에 미루어 내가 혹여라도 신생아 육아로 마음 힘들어할까 걱정해줬다. 육아 선배이자 나의 진짜 모습을 아는 친구들이 40대에 다시 돌아왔다.
나는 이제야 친구들이 1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어떤 경험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왔을지, 언제 즐겁고 언제 힘든 일상이었을지 헤아려보게 된다. 일이 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을 거고,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거다. 그런 마음들 뒤편에 사랑하는 아이, 그 존재의 힘이 있었을 거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