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 여름방학 동안 저녁시간에 호프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은 고되었지만 자정 무렵 영업을 마치고 시원한 메밀소바 한 그릇을 비우는 호사에 그저 그 순간이 더없이 감사했다.
낮에는 영어학원에 다니고 밤엔 호프집에서 맥주잔을 나르는 단순한 삶 중에 어느 날 내가 시작하는 대부분의 대화의 주제가 그날그날 만났던 다양한 손님들이란 걸 발견했다.
초저녁에 혼자 불쑥 찾아와 안주도 없이 맥주 2000CC만 비우고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나던 어느 젊은 여자 손님과 술이 취해 옆 좌석 손님들과 싸움을 벌여 강제로 쫓겨났던 어느 회사원 따위들 말이다.
그다음 대학 2학년 여름방학은 그해 막 시작한 대전과 옥천 사이의 국도 4차선 확장공사에 측량 보조 자리를 소개받아 일을 시작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5시 퇴근할 때까지 측량기사들을 따라다니며 눈금이 새겨진 측량 폴을 들고 지시하는 곳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길을 따라 표시목을 박는 일이었다.
이때도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그날 현장에서 있었던 잡다한 일들을 어머니에게 재잘거리느라 바빴다. 콘크리트를 쏟아부으며 그 위에 굳기 전 줄을 긋고 바로 이어 하얀 포말의 약품을 뿌려 양생을 돕는 기계들에 대한 얘기였다.
모자를 쓰고 수건을 둘렀음에도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까맣게 타들어 가다 보니 바라보는 어머니는 늘 안타까워했다.
그때 점심시간을 빌어 현장 감독관실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글타자기를 발견하곤 혼자서 타자 연습을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검게 그을려 가던 갓 스무 살을 넘긴 어린 대학생이 국토부 건설 감독관 사무실에서 점심때마다 혼자 타자 연습을 하고 있었으니 그분 보시기에 기특해 보였었나 보다.
나중에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주셨지만 대학을 졸업한 내가 향한 곳은 건설현장이 아니라 공군 조종사 훈련이었다.
그 덕에 난 지금도 맥주 500CC 잔을 양손에 다섯 개씩 한 번에 열개를 드는 법을 기억하고 막일을 하는 인부들은 오전과 오후 2번의 새참을 먹고 여름엔 콜라보다는 맥주가 갈증에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