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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Apr 29. 2021

기억에 남지 않는 비행


나는 나의 모든 비행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누군가의 기억에 남지 않기를? 소망한다. 


불편했던 기억이라면 더더욱 남겨두고 싶지 않다. 


매번 비행을 안전하게 마친 것으로 만족한다.  


악기상을 뚫고 힘들게 착륙한 일을 자랑하고 싶지도 않고,  누구누구와의 갈등을  잘 풀어서 해결했다는 CRM사례도 남기고 싶지 않다. 


그저 매 비행이 아무런 기억을 남기지 않고 간이 안된 '청포묵'처럼 맹숭하고 평온하게 지나갔으면 한다. 


부기장들에게도


 '이것은 어떻고 저것은 어떻고'  라며 조언이랍시고 먼저 들떠서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정말 심각한 실수가 아닌 한,  직접 손을 내 밀어 조용히 실수를 고쳐주고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 


자신이 1만 피트를 통과하며 깜빡 잊고 켜지 않은 랜딩 라이트가 들어와 있는 것은 어차피 조금 지나면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되어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내가 그에게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나는 부기장들에게 사실 아주 관심이 많다.  


그저 그가 먼저  


"기장님, 혹시 제가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겸손하게 먼저 물어봐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가 나를 신뢰하는 그 순간이 와 주길 기다릴 뿐이다. 


아무 상처를 남기지 않은 채로 그의 성장을 돕고 싶을 뿐이다. 


대부분 부기장들의 수준이 이미 높지만 


그럼에도 비행을 하다 보면 말해주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참아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때 난 다시 생각한다. 


'오늘 이 비행은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아야 한다. '


아무리 선한 의도였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더라도, 내 입 밖으로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 아름다운 비행이 고통스럽게 느껴져서는 안 된다. 


아직 더 성장할 준비가 안되었을 뿐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배울 기회는 또 있기 마련이다. 


나의 비행은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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