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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디 Aug 19. 2024

당근마켓 퇴사하고 창업한 이유

든든한 울타리를 떠나 야생으로

2024년 8월 12일, 1년 10개월간 다녔던 당근마켓을 퇴사했다.


돌이켜보면 2년도 안 된 시간에 정말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내가 속했던 동네생활팀은 동네 이웃들 간의 이야기와 정보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미션을 가졌다. 지역별로 바운더리가 쪼개진 독특한 구조에서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많은 시도들을 했다. 커뮤니티라는 도메인은 정말... 어려운 프로덕트다. 그럼에도 어디서도 해보지 못할 재밌는 실험들을 해볼 수 있는 환경에 감사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PM, 그로스 운영 등 많은 역할을 해본 게 앞으로 하려는 일에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 실력 있는 동료들, 건강한 사내 문화를 뒤로한 채 창업을 위해 야생으로 나왔다. 이직이 아닌 이유로 퇴사를 하는 건 처음이라 정말 고민도 많고 두려움도 컸다.

퇴사하면서 동료들과 티타임을 가졌는데, 창업한다는 소식에 다들 응원도 많이 해주시고 궁금해하는 것도 많았다. 그중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질문들을 모아봤다.  



창업 아이템이 뭔가요?

짐워크는 MAU 1.6만명이 사용하는 피트니스 운동 기록 앱이다.
헬스를 어느 정도하다 보면 유튜브에서 나에게 맞는 운동 루틴을 찾아서 따라 하게 되는데, 짐워크는 피트니스 인플루언서의 운동 루틴을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만약 아직도 운동 루틴을 엑셀로 다운받아 기록하거나 메모장에 직접 입력하고 있다면 짐워크를 써보시길! 루틴으로 운동하지 않더라도 개인 기록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 밖에 앱에 대한 자세한 기능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gymwork.pro/



현재 팀원들과 어디서, 어떻게 만났나요?

짐워크 팀은 현재 3명으로 다음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프로틴: CEO&프론트 개발

에그: 백엔드 개발

빈디(나): 프로덕트 디자인

대표인 프로틴과는 전 직장에서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게 됐다. 회사에 운동기구가 있었는데 아침마다 풀업하는걸 보면서 그냥 운동에 미친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자기가 사이드프로젝트로 만든 운동 앱이 있는데 디자이너로 함께 하지 않겠냐고 제안받았다.

에그는 백엔드 개발자로 프로틴의 고등학교 친구다. 처음에는 프로틴이 풀스택으로 개발하다가 서버 맡아줄 사람을 찾았는데 마침 에그도 운동을 좋아하고 재미있어 보여서 참여하게 됐다.

그러다 내가 당근마켓으로 이직하면서 각자 다른 회사에서 2년간 사이드프로젝트로 하게됐다.

대충 이런 느낌


사이드프로젝트 제안받았을 때 수락했던 이유? 원래 운동을 좋아했는지?


당시 나는 헬스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PT 한두 번 받았던 게 전부였고 운동 기록을 앱으로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하지만 프로틴이 짐워크로 피봇하기 전에 만들었던 ‘고독한리프터’라는 앱을 자연 바이럴로 누적 2만 명이 사용한 걸 보면서 충분한 니즈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인플루언서의 팬층을 활용한 BM을 들었을 때 이전에 다녔던 회사의 성장 방식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어서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쟁사를 찾아봤을 때 기존 운동 앱보다 더 좋은 UX를 설계할 자신이 있었다.

열심히 하면 최소 아웃풋으로 포트폴리오, 최대 창업까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사이드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몇 달 후, 당근마켓으로 이직할 때 첫 번째 포트폴리오로 짐워크 앱 개편을 넣었고 최종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2년전 포트폴리오. 아련... 이제 포트폴리오 안 만들어도 되고 럭키비키잖아?



각자 회사도 바빴을 텐데 언제 작업했어요?

회사 다닐 땐 평일에는 퇴근 후 밤부터, 주말은 약속 없는 날에 몰아서 작업했다. 다행히(?) 인싸가 아닌 덕분에 작업시간을 꽤 확보할 수 있었다.


밤이 되면 슬랙에 슬금슬금 나타나 이모지를 찍어서 생존신고를 한다.

매주 목요일 밤 10시에 온라인으로 주간 미팅을 진행했다. 방향성에 대한 의사결정, 디자인 리뷰, 공유할 사항을 논의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고정지출을 늘리지 않기 위해 구글밋을 무료로 사용해서 1시간 이내에 회의를 마쳐야 했다. 돌이켜보면 이 방법이 회의 시간을 불필요하게 늘리지 않아서 좋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회의 시간이 길어진다고 질이 높아지지 않고 무슨 의견이든 한 줄 요약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4년도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으로 만나 하루 종일 함께 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스페이스 클라우드로 작업실을 빌려서 하루 종일 해커톤처럼 일해보고 같이 운동하면서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었다.

사실 혼자 일했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었을까 싶은데, 쉬고 싶은 날에도 다른 팀원들이 나를 멘션 하면 꾸역꾸역 컴퓨터를 켜게 되더라. 서로의 머리채를 잡아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퇴사하고 창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


이 추운 시기에 퇴사하겠다고 하니까 걱정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퇴사 원인이 회사 밖에 있는 게 처음이기도 해서 정말 이게 맞을까? 라는 두려움도 컸다. 그만큼 안정적이고 좋은 문화를 가진 회사였다. 처음부터 창업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아니던 내가 확신이 섰던 이유를 정리해 봤다.


1. 성장에 대한 확신

처음 구독 기능을 출시했을 때 슬랙에 빠르게 찍히던 구매 알림을 잊을 수가 없다. 초반부터 BM이 먹힐지 테스트를 해본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압도적으로 좋은 리텐션을 보고 더 큰 성장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었다. 좁은 매니아층을 타겟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건드리지 않은 여성 타겟, 글로벌 시장을 고려하면 잠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각자 사이드잡으로도 여기까지 성장했는데 100% 몰입했을 때 얼마나 속도감 있게 키울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2. 팀워크

어떤 VC가 말하길 초기 창업팀은 '결정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만 모이면 된다고 했다. 짐워크팀은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2년간 같이 합을 맞춰본 바, 단순히 좋은 회사 경력직인걸 떠나서 정말 실력이 좋고 일머리가 있는 팀원들이다. 문제정의와 해결방법에 대한 싱크만 맞추면 그 뒤로는 각자 알아서 할일을 정하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실 초기 창업자라면 위에서 말한 역할은 본인이 제일 잘하는 분야일 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한다.

현실판은 이렇다.

프로틴: CEO&프론트 개발 + 코치 섭외, 온갖 서류작업, CS...

에그: 백엔드 개발 + 데이터 분석, CS...

빈디: 프로덕트 디자인 + 기획, 마케팅, CS...


또 결정적으로 팀원들에게 만족하는 부분은 프로덕트 센스가 좋다는 점이다. 프로덕트 센스는 유저들에게 임팩트 있을 만한 게 뭔지 아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타율이 좋다.

제품에 대한 애정이 높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좋은데 프로덕트 센스가 없으면 제품이 산으로 가기 쉽다. 하지만 프로덕트 센스가 있어서 제법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잘 내면, 서로 설득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피로도를 최소화할 수 있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좋아하고 자신 있는 도메인이 운동일 뿐 이 팀원들이라면 다른 아이템에 도전해도 잘 만들 거란 기대가 있다.



3. 재미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만들어본 프로덕트 중 가장 재밌는 걸 만났다.

짐워크는 운동을 기록할 때 편리하게 해주는 유틸리티 기능과 피트니스 인플루언서들의 운동 프로그램을 매력적인 상품으로 보여줘야 하는 커머스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대문자 T 성향이라 그런지 삶의 질을 올려주는 유틸리티 기능을 고민할 때 재미를 느낀다. 유형의 상품이 아닌, 무형의 가치를 유저들이 구매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제품을 직접 써보니 왜 사람들이 운동 기록을 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러닝 할 때 애플워치 안 차면 뛴 게 아닌 것처럼, 이제는 내가 든 무게를 하나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굉장히 공허해진다.



광기의 유저들과 탄탄한 팬층

프로덕트를 만들어본 메이커라면 제품마다 유저 성향이 크게 다르다는 걸 알텐데, 짐워크로 운동한 걸 인스타에 공유해 주는 유저들을 보면 광기 가득한 헬스 매니아들만 모인 곳 같아서 흥미롭다.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는 분들을 도와주는 기분이 들어서 뿌듯하기도 하다.

빨리 버그 고쳐줘요


그리고 초반의 타겟이 어느 정도 운동 경력이 있으신 분들로 시작하다 보니 서비스에 대한 애정이 높고 코어 팬층이 굉장히 탄탄한 게 느껴진다. 별다른 리워드 없이 유저 리서치를 진행해도 몇백 명씩 참여하고 다들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주시는 걸 보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주변에서 유저를 발견할 때 짜릿함

당근마켓 팀원들 중에서도 꾸준히 쓰시는 분들이 있는걸 보고 정말 뿌듯했고 유저 인터뷰도 여러 명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팀 채널에서 짐워크가 레퍼런스로 공유됐을 때 디자이너로서 정말 짜릿했다.

너무 기분 좋아서 헐레벌떡 캡쳐 뜨고 허락 맡았다. 힘들 때마다 두고두고 곱씹어야지...



결론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을 봤을 때 가고 싶은 회사를 찾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취업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창업은 이 시점, 이 팀원, 짐워크가 아니면 다신 못할 것 같았다.

어떤 걸 하지 않았을 때 나중에 더 후회할까? 결론은 창업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창업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미친 듯이 하고 있는데도 내걸 한다는 생각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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