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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Sep 25. 2024

6. 도사는 어디에 있는가? (1)

한 사내가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두둥실 여행클럽을 찾아왔다. 낙심과 좌절에 절은 모습이었다. 수염은 삐죽삐죽 자라 있었고, 셔츠의 단추는 제대로 채우지도 않은 채였다. 오래 닦지 않은 안경은 간유리처럼 탁했다.

  구아정이 갓 구워낸 빵을 권하자. 남자는 시큰둥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 손을 대지도 않았다. 그 달콤하고 고소한 빵 냄새를 맡은 사람치고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남자는 자기를 ‘조 씨’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굳이 자기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조 씨는 한참이나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자신의 불행에 대해 한탄하더니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네요. 그렇다고 죽어지지도 않고....... 여행이 뭐, 깨달음 같은 것도 줍니까?”           

  회원가입을 마친 조 씨가 돌아간 뒤 회의가 열리고 여행 매니저들 사이에 많은 말이 오갔다.

  “대체 보증을 왜 서 주는 건데? 그거 누구 탓할 거 없어. 다 자기 잘못이야. 연애도 그래. 재수 없는 놈은 만나봐야 꽃뱀 아니면 불치병이지! 빌어먹을 친구란 놈들은 원래 배신하려고 있는 거고! 그런 사람은 여행이 소용없어. 땡볕에 벽돌 지고 생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이렇게 못돼먹은 말을 내뱉은 뒤 나창수는 코를 풀었다. 연민의 마음을 나창수는 늘 이런 식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럼 그냥, 저기 빌딩 짓는 데 있잖아요. 거기 소개시켜 주면 되잖아요.”

  아직 일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진태우의 발언에 구아정이 일침을 가했다.

  “태우! 이건 돈을 받고 하는 사업이야. 여긴 무료 상담소가 아니라고!”

  잠시 후 한시욱이 묵직한 입을 열었다.

  “중중 도사님한테 데려가면 될 텐데 연락이 될지.......”

  모든 멤버가 한시욱을 쳐다봤다. 답을 찾았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한시욱은 전보를 보내겠다며 우체국으로 갔다. 그러나 우체국 직원은 ‘전보’라는 통신수단을 처음 들어 보는 모양으로 무척 당황해서 쩔쩔매다가 결국 윗사람까지 불러온 다음에야 우체국의 전보 서비스라는 것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시욱은 '할 수 없지.' 한 마디를 내뱉은 뒤 그제야 전화기에 메시지를 입력했다.

  “저녁 바람이 절벽 아래 윙윙거립니다.”

  그러고 나서 한시욱은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 도사님의 행방을 수소문했고, 보람이 있어 그날 밤 늦게 도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물 위에 보름달이 보랏빛으로 물들었구나.......”

  “구름은 구름이 아니니 두려움이 사라지지요.”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를 말을 한참이나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아마 그것도 언어의 한 종류여서 나름대로 대화가 통했던 모양이다. 한시욱은 그 즉시 여행계획서를 만들기 시작해서 아침이 되자 또다시 소파에서 곯아떨어졌다.     


  며칠 뒤, 조씨와 한시욱 매니저는 중중도사를 찾아 떠났다. 둘 다 빈손이었다.

  “거, 뭐 하는 사람입니까? 중중도사.......”

  의뢰했던 여행을 떠나는 사람치고 조 씨처럼 믿음이나 기대를 내비치지 않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믿음을 가지세요. 아주 정결하고 기운이 강한 분이십니다.”

  “도사면, 구름도 타고 다닙니까?”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한시욱의 무뚝뚝한 대답을 들은 조씨는 비로소 힐끗, 자기 여행 매니저의 얼굴을 쳐다봤다. 비록 사소한 것이었지만 그가 최초로 보인 관심의 표시였다.

  시외버스를 타고 서너 시간을 달렸다. 조 씨와 한시욱은 서로 말이 없이 자다 깨기만을 반복했다. 잠시 휴게실에 들렀을 때 화장실에서 마주친 조 씨에게 한시욱이 말없이 껌을 권했을 뿐이다.

  시외버스는 휴게소를 나와 또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한시욱은 또다시 잠을 잤다. 잠을 자다가 깨 보니 웬일로 조 씨가 깨어 있었는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울고 있었다.

  시외버스가 종점에 이르렀다. 내려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산봉우리가 버티고 있었다. 철 지나 내린 봄눈이 채 녹지 않은, 높디 높은 병풍산이었다. 조 씨가 오랜만에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산에는 어떻게 갑니까? 난 등산을 안 해 봤는데.”

  “저 산에 안 가는데요?”

  조 씨는 잠시 미간을 찌뿌렸을 뿐, 또 다시 입을 굳게 닫고 자기의 여행 매니저를 따랐다.  

 

  두 사람은 버스터미널 부근, ㄷ자 모양의 여관에 묵었다. 그리고 또 말없이 각자 소주 두 병씩을 마신 후 잠이 들었다. 조 씨는 뭐든지 매니저가 하자는 대로 따르기만 했다. 의견도 없었고, 반대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믿음을 내비치는 적도 없었다.


  새벽녘, 갈증이 난 조 씨가 눈을 떠 보니 옆 이불 위에 한시욱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뭔지 모를 불안함이 스쳤다. 지금껏 여행 동반자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본인도 그제야 깨달았다. 후다닥 문을 열어보니 건너편 툇마루에 그가 걸터앉아 있었다. 안도감이 스쳐갔다. ‘날 버리고 간 건 아니었구나.’ 하다가 조 씨 스스로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뭘 기대하는 것인가?’

  그때 여관 주인 여자의 목소리가 부엌에서부터 들려왔다.

  “그 여행사 사장, 잘 생긴 양반은 돌아왔지?”

  얼룩진 엽서로 나타난 B.J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었다.

  “아직 안 왔는데요.”

  아마도 한시욱과 주인 여자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인 듯했다.

  여자가 작은 상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또다시 물었다.

  “엥?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그 왜 빵 잘 만드는 아가씨랑 약혼한 사이라면서? 약혼자도 소식을 모르나?”

  “예.”

  한시욱은 짧게 대답한 뒤 그릇 속의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바람이 없어 냄새가 풍겨오지 않는다 해도 조 씨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라면이었다! 냄새는 곧 미세한 공기 입자에 실려 좁은 마당을 가득 채웠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후루룩 소리를 실어 날랐다. 그렇다! 그것은 라면이었다. 조 씨는 머리와 위장을 동시에 비트는 듯한 분노와 허기를 느끼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

  잠시 후, 조 씨는 한시욱의 라면 그릇을 넘겨받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핵 불 매운맛 라면이었던지, 라면을 먹는 조씨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한시욱은 그런 조 씨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관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달린 끝에 두 사람은 간판도 없는 정류장에 내렸다. 버스는 흙먼지를 날리며 멀어졌는데, 흙먼지가 사라진 뒤에도 산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바다 냄새가 나는 듯했다. 목적지도 모르는 채 터덜터덜 얼마를 걷고 나니 정말로 작은 항구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곳은 구름을 타는 도사가 있을 만한 곳이 분명 아니었다.


  “도사님은 대체 언제 만납니까?”조 씨가 성마른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바람이 아닙니다.”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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