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흐르는 각자의 계절
누군가는 여름의 생기로 살아가는 반면, 나는 여름이 짙어 갈수록 에너지를 소진해버린다. 여름이 지니고 있는 에너제틱함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태양의 열기를 잔뜩 머금은 신록을 보면 애써 씁쓸한 마음을 감추곤 한다. 길가의 활력을 띄고 있는 초록 식물들에 괜시리 힘이 빠진다.
대개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들을 마주할 때 에너지가 소요되듯이, 그런 사물들에게서 오히려 힘을 내기보다는 내뿜고 있는 열기로부터 잠시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해가 지고난 여름 저녁을 하루의 일과 중에 제일 기다려진다. 혹은, 비가 내리 내리는 장마철이나 흐린 날을.
마음에 흐르고 있는 정서와 바깥의 계절이 다르듯이, 정서와 부합하는 계절은 언제나 가을이거나 겨울이었다. 바깥은 이리 생동하는데 내면은 정체되어 있거나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여름의 열기를 떨구지 못한 초가을 말고, 손바닥만 한 낙엽이 거리를 휑하니 뒹구는 중반기의 가을 말이다. 적당히 무게감 있는 니트나 가디건이 잘 어울리는 그런 계절.
자꾸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게 만드는 겨울로의 순행도, 찬 공기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일종의 쾌적한 기분도 가을과 초겨울 사이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현재 겪고 있는 계절과 정반대의 배경인 드라마를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현관문에 들어오자마자 입김을 부는 것부터 하며, 손을 모으는 동작 하며 까마득한 옛날을 보는 것 같다. 고작 몇 개월 전의 일이고 어차피 또 그 계절은 반복될 텐데.
더위가 주는 행동 지침이라도 되는 것처럼 더위에 익숙해져 버렸다. 눈을 찡그리고 연신 “덥다”를 연발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언뜻 나 자신을 토닥거리는 팔짱을 낀 겨울의 행동 양식이 그리워진다. 쌀쌀한 날들에는 조그만 추위에도 몸서리쳐지게 되고 마음 한 구석을 뜨끈하게 대피거나 위로받고 싶은 나날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 계절을 그리워한다는 건 그 계절이 주는 정서와 행동 지침을 반복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계절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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