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도시라고 해도 한국 서울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 보면 고층 빌딩이 빽빽한 도시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백 년 이상된 건물과 도로가 있고, 고개를 돌리면 강, 호수, 공원, 자전거 도로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도시와 시골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다. 도시에서 차 타고 10-30분 정도만 벗어나도 정겨운 시골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독일의 소도시는 대도시만큼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할 뿐이지 아이가 있는 가족이 살기에 기본적으로 갖춰질 시설이 골고루 균형 있게 잘 발달되어 있는 편이다. 근처에 산이나 공원, 강, 호수 등의 자연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마트, 병원, 대형병원, 야외 수영장, 체육관, 유치원-초-중-고등학교, 각종 스포츠 동호회 (승마, 수영, 테니스, 축구, 스케이트, 체조, 태권도, 배드민턴, 탁구, 농구 등), 체스 동호회, 자전거 동호회 등등 깡시골만 아니라면 이 정도의 편의시설 등은 갖춰져 있으니 도시, 시골의 경계가 그리 크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파트보다는 각기 개성에 맞는 전원주택을 선호하는 독일에서 살다 보니 어느덧 단독주택, 전원주택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가만히 주택들을 관찰하다 보면 집 구매 전에 주의하면 좋을 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을 고려해서 집을 살펴보면 좋을까.
1. 전원주택 바로 옆에 논밭, 농장, 과수원 등이 있는 경우
전원주택 창문에서 탁 트인 논밭을 바라보면 힐링도 되고, 철철이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에 마치 자연 병풍을 깔아놓은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우리는 농사철 경운기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질 수 있다. 흙먼지뿐만 아니라 농약을 쓰기 때문에 농약 물질이 바람을 타고 집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가축을 기를 경우에는 분변 냄새도 더운 여름에는 무시할 수가 없다. 특히 과수원이 옆에 있는 경우에는 과수원이 생각보다 농약을 많이 치기 때문에 건강에 오히려 좋지 않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좋다.
2. 큰 호숫가에 집이 있는 경우
독일은 곳곳에 인공 호수, 자연 호수가 많고, 여름철이면 사람들이 호수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호수에서 유유하게 헤엄 지는 오리 떼와 백조를 보면 힐링도 되고 좋다. 그러나 호수나 강이 있으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낀다. 특히 약간 분지지형의 경우에는 하루 종일 가습기 안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다. 이런 물안개의 경우에는 오랜 시간 그 지역을 지켜보지 않은 경우는 잘 모를 수 있다. 나도 특정 지역을 운전하다 보면 그 지역만 물안개가 자욱이 껴서 잘 빠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챘다. 안 그래도 겨울에는 일조량도 적고, 흐릿한 독일 날씨에 물안개까지 자욱하면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3. 큰 숲이나 산 바로 옆
개인적으로 호수가 강보다는 큰 산이나 숲이 옆에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바짝 붙어있는 경우 숲이 품고 있는 많은 습기가 집 주변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숲 속 모기와 온갖 벌레들의 습격도 피하기 어렵고, 독일의 산들에는 야생동물들도 꽤 많이 때문에 주의해야 하기도 한다. 나도 산책하다가 멧돼지, 사슴을 마주친 적이 있고, 종종 여우 등이 닭을 잡아먹는 등의 경고문이 마을에 올라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고급 주택은 절경을 볼 수 있는 산속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집 안의 조경수가 휘거나 굽어져 있는 것도 풍수나 미관상 좋지가 않다. 휘어진 소나무 군은 풍수적으로는 강한 음기를 발산시키므로 묘지에나 어울리지 주택 조경수로는 부적합하다. 집 전체를 덮을 만큼 너무 키가 큰 나무도 주객이 전도되는 기운이다. 뿌리가 깊거나 오래된 나무 또한 음기가 강하고 잘못 베면 가세가 기운다고 한다.
정원수로 적합한 나무 :
키가 작고 낙엽이 무성하지 않으며 사시사철 푸른 나무. ( 오죽, 감나무, 소나무, 사철나무, 석류, 살구, 대추나무 등)
4. 놀이터나 학교 바로 옆
놀이터를 사용하는 시간대가 명시되어 있는 푯말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그런 소음은 놀이터 옆이라면 각오해야만 한다. 또한 학교 바로 옆의 경우에는 학교 종소리, 학생들 소리, 등하교 시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부모들이 차를 가지고 앞에 잠시 주차도 하기 때문에 사람과 자동차로 소란스러울 수 있다.
5. 너무 큰 전원주택과 잔디마당
청소하고 관리하다가 골병들기 실으면 혼자서도 관리 가능한 집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특히 잔디가 많을 경우, 잔디 관리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고 하니... 온갖 벌레와 민달팽이도 많고, 민들레도 올라오고, 조금만 물 주기를 소홀히 하면 잔디가 다 갈색으로 죽어버리고, 갈아엎고 다시 씨 뿌려도 듬성듬성 나기도 쉽고, 날씨 좋으면 무럭무럭 나무처럼 자라는 잡초와 잔디... 로봇 잔디 깎는 기계를 사용해도 이상적으로 관리가 잘 안 되고, 전기세에 관리비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름에 체케 (진드기)도 내 집 마당에서 물리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잔디는 조금만 남기도 돌바닥으로 다 깔아버리는 경우도 많다. 정원 관리사를 고용하여 관리하는 경우라면 괜찮겠지만 주부 혼자 관리해야 한다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6. 단열이 잘 되어있지 않은 집
허허벌판에 떡 하니 홀로 놓여있는 단독주택은 주변에 바람을 막아줄 다른 집이나 건물 등이 없기 때문에 단열이 잘 안 되어 있다면 요즘 같은 에너지 비용이 증가한 시기에 돈이 줄줄 세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비주얼이나 크기, 풍경 등만 보며 로망만으로 단열이 잘 안 되는 집을 구매하면, 독일 법에 따라서 탄소배출 감소를 위해 리노베이션을 해야만 하고, 추가적으로 수리비, 유지비가 더 들어간다는 점.
에너지 효율이 낮은 집의 경우 독일 정부에서 리노베이션 의무 법이 생겨서 추가 비용과 시간이 들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왕이면 에너지 효율이 좋고, 태양광 패널 등이 설치 완료된 집을 구하면 좋을 것이다.
7. 혐오시설, 전신주가 가까이 있는 집
기차역, 전신주 등이 많이 설치되어 주변 경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전자파 등의 건강상의 문제도 노출될 수 있는 집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8. 계단이 많은 집
한창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층이 많이 나눠져 있는 땅콩 주택도 나쁘지는 않다. 생활권이 분리(?)가 되어서 아이들 노는 방이랑 거실 등이 떨어져 있으니 아이들 방은 좀 지저분해도 거실까지 장난감 등이 나오지 않아 어른들 공간은 깔끔하게 유지가 잘 되는 편이고, 소음도 잘 안 들려서 좋다. 그러나 청소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면 다락방 등의 로망도 적어지고, 나이 들수록 무릎이 아파서 계단 오르내리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만약 젊을 때 잠깐 살 집이라면 복층도 괜찮은데, 나이 들어서까지 쭉 살 계획이 있다면 3층집 이상은 피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9. 지붕 처마는 좀 길게 되어 있는 것이 좋다
외장벽에 금이 가거나 이끼, 먼지 등을 미리 방지할 수 있고, 비나 햇빛도 막아주는 역할도 해주고 일석 이조 효과가 있다.
10. 이웃도 중요
시골마을 집성촌일수록 그들끼리의 네트워크와 유대감이 강하다. 마을 공동 행사를 같이 하기도 하고, 주변인들끼리 끼리끼리 매우 친한 경우가 많이 있다. 마을이 작다면 그 유대감은 더 강하다고 보면 된다. 자신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것을 추구한다면 작은 마을에서도 적극성을 발휘해서 그들과 동화되려고 노력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 주제나 생활 방식이 자신과 잘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동화되기 어려운 경우, 작은 마을은 오히려 괴로움이 될 수 있다. 독일은 생각보다 겉으로만 독립적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모 자식이 가까운 거리에 거주하며 사는 경우도 많고, 젊을 때는 독립해서 살다가 부모 근처로 이사를 오거나 (고향으로 돌아오거나) 또는 부모가 자녀 근처에 거주하는 경우도 많고, 크리스마스 등 때마다 가족이 모여서 한국의 명절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자연스럽다.
같은 전원주택이라도 약간 규모가 있는 소도시에 자리 잡고 있으면, 마치 도시에 사는 것처럼 생각보다 서로 관심이 없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소음, 너무 잦은 파티 등) 경우만 아니라면 독립적인 라이프를 즐기는데 무리가 없다.
어느 정도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는 주거 구역에 자리를 잡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학교 친구, 이웃들의 친절도와 관심도, 주위 환경 등) 좋다. 살고 있는 집만 덩그러니 신축에 좋고, 주위 환경은 고층 아파트에 저렴한 주택들의 집합, 모스크 등이 있는 경우라면 나중에 집을 되팔기도 어렵고, 이웃 간 분쟁도 많이 생기고, 주위 환경이 안정되어 있지가 않아서 정신건강에도 좋을 리가 없다.
독일 전원주택 고를 때 생각해 볼 것들에 대해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사실 아이 유무, 집에 대한 가치관, 생활습관, 인생관 등에 따라서 집을 고르는 기준과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몇 가지 조건들이 맞지 않아도 “이건 내 집이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집이라면 그 또한 나만의 개성이 담긴 삶의 터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