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ternsprechtag
오늘은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독일 김나지움(Gymnasium)에서 학부모 상담이 있는 날이다. 입독 후 처음에 우리는 3년간 독일 국제학교에 다녔는데, 국제학교에서는 Back to the school night라고 하는 학부모 총회회와 담임교사 및 학교 상담교사와 상담할 수 있는 날이 있었다. 독일 공립학교에도 국제학교와 비슷하게 1년에 한 번 학년 초에 Eltern Abend라고 불리는 학부모 총회가 있고, Elternsprechtag으로 불리는 학기별로 두 번의 담임 및 과목 교사와의 상담일이 있다. 학부모 상담이나 학부모 총회는 부모들의 퇴근 시간 이후에 열리기 때문에 주로 오후 5시부터 저녁시간에 이루어진다. 독일 초등학교인 그룬트슐레(Grundschule)에서는 담임교사와만 상담을 하기 때문에 편지 (Eltern Brief)로 약속 시간을 정했는데, 상급학교인 독일 김나지움에 들어오니 담임교사뿐만 아니라 과목별로 모든 교사와 각기 개별 면담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학부모 포탈 (Eltern Potal)에서 온라인상에서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독일로 건너온 후 수많은 학부모 상담을 했지만, 가장 떨리고, 긴장했던 상담을 꼽으라면 단연 '국제학교에서 독일 공립학교로의 전학'에 관련된 학교 교장 및 담당 교사 면담이다. 이에 대한 포스팅은 예전에 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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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교에서는 영어로, 독일 학교에서는 독일어로 상담을 해야 하는 나 같은 외국인 부모에게 선생님과의 만남은 더욱더 떨리고, 긴장된다. 원어민도 아니고, 심지어 외국어를 잘하지도 못하는 외국인부모가 가지는 말 못 할 스트레스에 긴장감이 배가 된다. 성향이라도 적극적이고, 외향적이었다면 눈치 보지 않고 떠들고 올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외살이 하면서 참 많이 했더랬다. 솔직히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강하다'라고 다 못 알아듣더라도 되도록이면 부모 모두 함께 학부모 총회도 꼭 참여하고, 열심히 부족한 독일어로 상담을 해왔다. 상담날뿐만 아니라 국제학교에 다닐 때는 아이 소풍 도우미, 책 읽어주는 도우미, 수영장 도우미, 학교 크리스마스 장식 꾸미기 등등에도 자원봉사자로 열심히 참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어도 잘 못하는데, 무슨 용기로 그렇게 했지 싶다. 부모가 아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양육하고 있다는 것을 비언어적 메시지로 교사에게 긍정적 인상을 남기고, 또 집에서는 모르는 학교에서의 아이에 대한 정보도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이것은 독일 김나지움 입학 후에도 같은 마음이었다. 초등학교에서 김나지움으로 입학하는 것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큰 도전이고,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그런 일이었다. 그렇게 한 두 해가 지나고 나니 이제는 어느 정도 학교 시스템이 익숙해졌고, 마음이 좀 느슨해진 탓인지, 게을러진 탓인지 이번 상담부터는 상담 건수를 확 줄여서 담임교사와 주요 과목 한 개 정도만 상담 약속을 잡았다. 김나지움에서는 입학 초반과는 달리 성적이 잘 안 나오는 과목 (3점 이하) 교사와만 상담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입학 초반에는 학교 적응 및 독일어 이슈가 있어서 적극적으로 선생님들에게 우리의 상황을 알리고, 정보를 드리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제는 결국 아이의 몫이라는 생각이 강해졌기도 했다.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이런 학부모 상담날 외에도 개인적으로 편지나 면담 시간을 잡을 수도 있고, 학교 교사들도 부모들에게 경고 편지를 주거나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등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소통 루트는 언제나 존재한다. 다행히 아이들이 숙제를 안 해가는 경우는 없고, 학교 수업 시간에도 경고를 받는 일이 없기에, 성적이 잘 나올 경우에는 선생님들도 상담을 가도 별 말이 없다. 그럼에도 얼굴도장 찍고 오는 것이 맞는지는 아직까지는 나도 확신할 수가 없지만, 오늘은 담임 선생님들과만 간단히 상담하고 오려고 한다. 학년이 더 올라가고 입시 정보가 필요해지면 그때는 또 열심히 다니게 되겠지만 지금은 긴장을 좀 풀고, 힘 좀 빼고 싶다. 내 성격에 한국이었으면 그렇게 못했을 텐데 눈 감고, 귀 막고, 닥치고 당장 내 앞날만 바라보고 무소의 뿔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독일 생활이라 가능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