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명절이 싫었다.
큰집에서 엄마가 일하는 모습만 봤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나와 동생이 딸이라고 엄마에게 늘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말은 기분이 나빴다.
결혼 후에는 대가족의 장남인 아버님의 며느리가 되었다.
여자들만 일을 하고 남자들은 다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광경. 속이 답답해져 왔다.
엄청난 양의 튀김을 하다가 속이 울렁거려 힘들었던 첫 제사의 기억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밥은 남자들이 먼저 먹고, 여자들은 그 상에서 남은 반찬을 조금 보충하여 먹었다.
삶은 문어를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작은 아버님은 말도 없이 내 앞의 문어를 가져가셨다.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차례나 제사를 지내고 나오는 설거지는 흡사 줄서서 먹는 맛집의 설거지 양과 맞먹었다.
해도해도 자꾸 그릇이 들어오고 또 들어왔다.
그래도 어머님, 아버님이 좋으신 분들이라 꾸역꾸역 어떻게 보내왔다. 그 분들은 죄가 없다. 단지 잘못된 전통, 아니 악습이 문제이다. 물론 우리 아버지도 아들이 있었다면 그리 다른 모습은 아니였을거다.
첫째딸이 태어나고는 그런 문화가 몇배로 더 싫어졌다. 아이가 그런걸 안보고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의 유산, 두번의 출산을 하며 못가게 된 적도 있었고, 2년여 전부터 명절 차례는 없어졌다. 차례가 없으니 명절의 엄청난 복작거림도 없어졌다.
하지만 밤늦게 지내는 제사는 여전하다. 남편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번도 뵌 적이 없는 어르신들이다. 아이를 낳고 둘째가 아프면서 제사에는 점점 남편만 가게 되었다. 그럴때마다 아버님은 다음번 제사에는 와야한다고 전화를 하신다. 마음에 가시 돋힌 상태로 이 말을 들으면, 조상님께 그렇게 잘 하는데, 우리 노이는 왜 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왜 학대같은 일을 당하게 된건가를 생각하며 제사에 반발심이 든다. 그래도 남편의 입장을 생각하며 적당히 넘겨왔다.
그럴때마다 나는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가 너무나 보고싶어 진다. 세상에서 내가 본 가장 따뜻한 분이셨고, 성별 차이 없이 손주들을 대하신 분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학교를 마치고 동생과 늘 외할머니 댁에서 티비를 보며 숙제를 하고, 정성 가득한 밥을 먹고 잠이 들었다. 그러면 부모님이 우리를 업고 5분 거리인 집으로 가셨다. 뭐든 잘한다, 예쁘다고 해주셨고, 늘 밥 많이 먹으라며 밥을 한가득 퍼주셨다. 우린 그 따뜻했던 외할머니 제사도 마음으로 지내는데, 남편 조상님들의 제사라니...
예전에는 여자들이 집안일을 도맡아 해왔지만, 지금은 여자들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자녀를 키우고 '적당히' 사는 게 어려워졌다. (물론 나같은 평범한 가정의 경우이다.)
시대가 바뀌어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이전에 자신들이 해왔던 걸 바꾸려 하지 않으신다.
나는 내 딸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우리 나이대가 며느리나 사위를 보게 되면 많이 나아져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아예 없어지지 않는 이상 어딘가에선 그대로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튀김, 나물, 탕국, 명절의 각종 음식들은 이제 먹고싶으면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는 시대이다.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하고, 바리바리 싸주는 게 정이고 명절의 미덕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먹을 만큼의 음식을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게 이상적인 것 같다. 가정을 이루면 자신의 원가족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 생기는 갈등들은, 명절이면 각종 SNS나 카페들에 하소연하는 며느리들의 글이 수두룩한 것만 봐도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친척들마다 둘째 노이의 나이를 물으셨다. 나는 말 못하는 노이를 최대한 어리게 말하고 싶어서 네 돌이 다되어 간다고 말한다. 그럼 꼭 상대방은 '그럼 다섯살이네~'라며 아이를 한 번 더 본다. 그런 순간 순간들을 의연하게 넘기는 것이 아직 잘 안된다. 이건 평생 힘들지도 모르겠다. 남편한테 얘기하면 대수롭지 않게 전형적인 T스타일로 말해 더 상처받을 것이 분명하여 나는 말을 줄인다.
아이가 늦되고, 학대 사건으로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도 명절의 도리는 해야 하는 것이 나의 삶이다. 사람 만나는 게 힘들어 직장에 휴직을 했음에도 낯선 남편의 친척들을 만나고 오니 현타가 왔다.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면, 그냥 최소한만 하고 살아도 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아닌척, 괜찮은척 하며 해야할 것들을 해야만 하는 하루를 보내고 오니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