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과부하 혹은 약 부작용

by 코스모스

지난 금요일은 아이의 수업이 있는 병원이 진료를 하지 않는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돌봄 선생님도 휴가를 쓰신다고 했다.

남편이랑 공유하는 캘린더에 아이 수업 일정을 지우고, 돌봄 선생님 휴가라고 입력해 놓았다.


며칠 뒤, 남편이

"오늘 돌봄선생님 휴가이신거야? 그럼 내가 노이(둘째) 하원시켜서 데리고 수업 가야겠네?"

"응 맞아."

"근데 캘린더에 아이 수업 일정은 왜 삭제했어?"

"응? 내가? 왜그랬지? 암튼 여보가 하원시켜서 수업가면 돼."

"그래 알겠어."


그날 아침에 이 대화를 나누었고, 그날 오후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병원 쉬는 날이라는데?"

"잉? 뭐지?"

그제서야 얼핏 기억이 났다.

"미안미안~ 그래서 내가 일정을 지웠었나보다. 근데 기억이 안났어."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먼 병원까지 갔다가 차를 돌려 돌아왔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최근 기억력이 심각할 정도로 감퇴했다는 걸 자주 마주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바로바로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날도 그래서 기록에 남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록을 했던 기억이 안났었다. 아직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믿으며, 기록을 신뢰하지 못했다. 이럴거면 기록을 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기억력이 안좋아졌다고 처음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는 우울증 약 부작용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둘을 낳았을 때도, 워킹맘으로 일 할 때에도 이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 감퇴에 대한 이야기를 상담사님께 하니, 뇌에 과부하가 온 게 아닐까 걱정해 주셨다. 내가 지금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특히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며 여유를 좀 찾을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요즘 이사 준비로 하루가 정말 바람처럼 휙휙 지나가고 있다.

챙길 것도, 신경써야 할 것도 많아졌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계약을 세번이나 해야한다. 세명의 법무사를 만나야 하는데 그들과 통화를 하고 난 후에도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되었다. 동사무소에 서류를 발급하러 가서도 이것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뒤늦게 다시 전화를 해보고 나서야 연락처에 법무사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집에 두었던 등기 관련 서류를 어디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남편과 한참을 찾았다.

사야할 것들도 있고, 정리해야 할 물건들도 많다. 해도해도 버릴 물건들이 자꾸 나온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방학이 시작된다. 첫째의 하루 시간표는 완전히 바뀐다. 그만 두는 방과후 수업, 새로 시작하는 방과후 수업 선생님들께도 연락을 한다. 방학특강으로 어떤 운동을 시켜볼까, 집공부는 어떻게 시작해 볼까도 고민한다.

이사를 가며 첫째가 다니던 학원들을 옮겨야 한다. 둘째 병원의 수업료가 너무 비싸 다른 곳들을 알아보고 아이 스케쥴에 맞게 시간 조정을 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어떤 선택을 할 때 남편은 그냥 '이거, 저거, 됐어!'라고 하는 반면, 나는 몇날 며칠이 걸려 데드라인이 임박해서야 겨우 결정을 내린다. 어쨌든 구멍은 생기지 않게 한다.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며칠 뒤는, 여러번 가도 긴장되는 둘째의 대학병원 진료일이다.

아이의 재판을 기다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도 해야 한다. 구의 교육상임위를 맡은 국회의원 보좌관의 연락처를 알게 되어 사정을 말하고 장문의 문자를 보내 국회의원을 만나고 싶은데 가능한지 물었다. 새로 선임한 변호사님을 찾아가 어떤 서류가 더 필요한지, 재판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쓸 때마다 공황이 오는 탄원서는 몇 번 정도 더 쓰는게 좋을

지도 물어보았다.


순간순간,

'내가 뭐 찾으려고 핸드폰을 들었지?'

'내가 뭐하려고 안방에 왔지?'

'세랑이 받아쓰기 연습해야 하는데, 노이 배변훈련도 해야하는데, 또 깜박했네.'

이런 일은 부지기수라 놀라지도 않는다.

노이 콧물 감기로 하루 세번 약을 먹이는 일도 빠뜨리면 안 된다.


적고 보니 뇌에게 미안할 정도로 많은 걸 챙기고, 기억하라고 하고 있었다. 과부하가 올만도 하다.


일주일 정도 남은 이사가 끝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때는 여유 있게 커피를 한잔 마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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