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은 싫은데 루틴이 필요해

못지켜도 자기탓은 금지

by 보라구름

반복되는 것, 이때는 어쩔 도리 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 그런 의미로서의 반복을 견디는 걸 힘들어했다. 하지만 힘든 건 힘든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은 많았다. 회사를 다닐 경우는 기본값이 루틴이다. 폭우나 폭설이 쏟아지거나 태풍이 불고, 폭염경보나 한파경보에도 출근은 해야만 했으니까.


폭설로 대중교통수단도 끊겨서 1시간 반이면 갈 곳을 3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하고, 다들 그렇게 엇비슷하게 고생하며 출근해서는 늦은 점심을 먹고 한두 시간 일을 하다가 집에 가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 그렇게 또 퇴근을 했던 적이 있다. 다들 이럴 거면 왜 출근하라고 한 건가 하는 표정이었는데 묘하게도 대표만 표정이 좋았다. 이런 난관을 뚫고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어이 출근해 사무실에 얼굴을 비춘 직원들이 월급값을 하는군 하는 표정이었달까.


아무튼 출근, 직장인은 아무튼 출근은 하고 봐야 한다. 이전에 오랜 기간 잡지 에디터 생활을 할 때는 취재, 촬영 때문에 외근이 잦았다.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도 있어서 미팅도 정기, 부정기적으로 많아서 사무실에 있는 시간 자체는 많지 않았다. 외근이 끝나고 이어지는 업무는 추가 업무였지만 저녁 이후의 야근이거나 혹은 주말 근무, 가끔은 집에서 주말과 밤늦게 기획안과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사무실에 있어야만 하는 대부분의 내근직과는 업무 패턴이 달랐기에 루틴에 대한 괴로움을 견디는 게 그나마 덜했던 것 같다.


한 몇 년 전에 잠시 프리랜서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가장 막막했던 건 시간관리였다. 일단 들어온 일을 쳐내고 나니 시간적 여유가 생겼는데 그 여유를 제대로 누리는 방법을 몰랐다. 그저 불안했고 다른 일을 무리하게 받으려고 스케줄링하거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시간을 보내느라 하루를 날리는 일이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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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줄 관리도 처음 하다 보니 비효율적으로 하게 되어 일은 들쭉날쭉했고, 내 상황이 아닌 상대방 상황에서 일이 틀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라 그런 경우에 어떻게 시간 관리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 몇 달 지나서는 시간관리가 거의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감을 어기는 법이 없었던 편인데 업무 마감도 슬슬 밀리기 시작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잠들기 전까지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 나 자신이 남았다.


자책과 힐난을 퍼부었다.


멍청하고 한심하고 무능력하고 게으르다. 고작 이럴 거였으면서 회사 다니기 싫다고 했던 거냐,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힘들어하냐. 이제 어쩔 거냐.



내 안의 목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그냥 그 목소리를 눌러버렸다. 일어나기도 싫었고, 씻기도 싫었고, 더 이상의 일을 받거나 이어서 하기도 싫어졌다. 자신감이 사라져 갔다. 난 프리랜서를 할 수 없는 인간인가 보다, 그냥 닥치고 계속 회사를 다녀야만 하나보다.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겠다는 건 그냥 내가 나를 몰라서 헛된 꿈을 꾼 것뿐인가 보다 그런 생각뿐이었다.


이후에도 이직을 하면서 약간의 여유 시간이 있었던 적도 있고, 분주히 여행을 다녔던 적도 있지만 이렇게 휴직을 하게 되어 한동안의 시간적 여유 앞에 마주한 경험은 없다.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는 두려움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휴직한다고 해서 뭐 얼마나 다르겠어. 시간관리 잘 못하면서 앞으로 어쩔 건데?



어쩔 건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몇 가지 노력을 하려고 한다. 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름의 일상 루틴이다.


잠은 7시간 이상 자기

먹고 있는 약은 잊지 말고 꼭 먹기(현재는 병원 5군데 약인데 앞으로는 좀 줄어들듯)

글 한편 씩 쓰기(도저히 못 올릴 글이 되더라도 일단은 쓰고 저장만이라도)

언제든 외출 가능하도록 씻어두기(우울증과 무력감에 빠지면 씻는 일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됨)

하루의 감정 일기 작성하기(하루콩이라는 어플 사용 중, 단순하게 몇 문장이라도 적고 감정 체크)

루틴 못 지켰다고 해서 비난하고 짜증 내지 말고, 왜 못 지켰나 생각하고 더 잘할 수 있게 스스로 응원하기


사실 마지막 문장이 가장 핵심이다.

자기 탓을 멈추는 게 우울증 치료의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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