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by 보라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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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서모임의 어떤 분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알게 된 책, <유랑의 달>. 스포를 조심하며 추천해 주셨기에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하고 읽게 되었다. 다만 충격적인 책이라고만 들어서 내용이 더 궁금했다. 추천 코멘트는 정확했다. 정말 충격적인 내용이었는데 사건의 발생 자체가 충격적인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지레 짐작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조금씩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이야기를 이끌어 간 것이 가장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덕분에 책장을 넘기며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기까지만 쓰고 보통의 서평처럼 글을 이어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내가 겪은 끔찍한 일 때문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이종사촌에게 반복적인 성추행을 당한다. 9살의 나이에 부모를 잃고 이모 집에 맡겨진 주인공은 끔찍한 일을 겪는 게 너무 싫어서 소아성애자의 손을 잡고 이모 집을 떠나는 길을 선택한다. 결론적으로는 그 선택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해석이 다를 것이다.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내달리면서 나는 고통을 잊기 위해 몸부림치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친족에 의한 성적인 학대라는 것이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는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이종사촌에게 당한 학대와 친형제에게 당한 학대가 어떤 차이가 있을지도. 나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일이 소환되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애써 누르며 버텼다. 미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의 초반부에 이미 주인공이 당하는 그 끔찍한 사건이 최대한 간접적으로 묘사되는 그 부분에서 책을 덮어버리지 못했다. 왜였을까.


이제는 다 괜찮다. 언제까지 거기에 갇혀서 고통받을 것이며, 비슷한 것만 봐도 놀라서 피하며 살 것인 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글쎄, 괜찮지 않았던 것 같다. 우연이었는지 하필 그다음 날 내가 서평 마감 때문에 읽어야 했던 책마저 <진실과 회복: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의>였다. 내게 있어 그 정의가 구현된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유랑의 달>에 나왔던 친족에 의한 성적 학대에 대해서만큼은 그럴지도 모른다. 악마로 계속 괴롭히기만 하면 덜 고통스러웠을까, 이따금 천사처럼 자신을 희생하기도 했던 나의 유일한 친형제는 스스로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래다. 그게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의라면 정의이리라.


그 사건 이외에 또 나를 무너뜨렸던 사건들이 있었고, 그 사건의 범인은 낯선 타인들이었으나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공소시효도 이미 다 지나버렸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따금 견딜 수 없을 만큼 치솟는 분노와 살의를 그들에게 뿜어내기도 한다. 상상 속에서라도 고통스럽고 잔인한 방식으로 그들을 짓이기고 목숨을 끊어놓고 싶어 진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불쾌하고 끈적거리는 감정의 찌꺼기들이 몸에 들러붙어버리는 것 같아 그마저도 진저리 쳐지는 것 외에는.


시간이 지나가면 잊혀진다. 시간이 약이다. 이런 말들은 모두 허공에 흩날리는 먼지보다 더 가볍게 느껴진다. 수십 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치욕스러움과 분노에 잡아먹힐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린다. 생각보다 너무 큰 반향이 내 안에 일어나서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어떤 식으로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게 분노의 감정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만 명확히 알겠다. 이런 고통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데 힘을 보태는 것으로 내 공포와 아픔에서 벗어나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시간이 아닌, 내 선택과 노력으로 이제는 그만 벗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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