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2. 센트럴 파크
센트럴 파크
기욤 뮈소/밝은세상
p336
책의 뒤표지를 보면 2014년 프랑스 베스트셀러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2019년에야 알게 되었고 4월쯤에야 읽게 되었다 (서평을 쓰는 건 훨씬 뒤인 9월이지만). 기욤 뮈소(Guillaume Musso)라는 작가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를 통해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그나마도 한국에서 김윤석/변요한 주연으로 2016. 12에 개봉한 영화의 트레일러를 보고 알게 된 게 전부다. 그러니까, 영화를 본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같은 연구실 옆자리에 있는 언니가 이야기를 꺼내 서다. 정확히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나 책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기욤 뮈소의 센트럴 파크 이야기가 나왔으며, 빌려준다기에, 한 번 읽어 볼까 싶어, 빌려 읽게 되었다. 책은 굉장히 쉽게 읽혔고 그 배경을 상상하도록 잘 쓰여있었으며 오랜만에 책을 읽었던 것 치고는 빠른 속도로 읽었다.
내게 로맨스/멜로 장르는 그렇게 기꺼운 장르는 아니다. 감정 소모가 많이 되는 장르이고, 그래서 피곤하다. 기본적으로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이 없다. 가십에도 관심이 없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면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며, 대체 왜 그런 걸 생각하고 대답을 해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굳이' 찾아보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도 아예 본 작품이 없냐고 하면, 손에 꼽을 정도 이상은 본 것 같다. [노트북], [시간 여행자의 아내], [어바웃 타임] 등등. 그렇기 때문에 굳이 말하자면 이 장르는 내게 '애매한' 장르이다. 책 한 권 서평 쓰는 건데 이렇게 장르에 대해 내 생각을 늘어 쓰는 이유는 1) 아직 짧게 핵심만을 전달하는 글쓰기가 안 돼서이고, 2) 말 그대로 정말 '애매한 장르'이기 때문에 이 책도 그 애매함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것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책의 뒤표지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숨 막히는 서스펜스의 결합이라는 문구가 있다. 중간중간 긴장 포인트는 있지만 숨 막히는 이라는 표현까지는 과한 듯하고, 마지막 결말이 내겐 '............ 아.... 하..?' 정도,였다 (지극히 나의 관점에서). 많은 소설이 그렇듯 전개를 위한 드라마틱한 설정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의 과할 수 있음을 차치하면 짜임새가 좋았고 결국 뿌려놓은 인과관계가 모두 정리되며, 마지막에는 꽤 오래가는 여운을 주었다.
소설의 내용은 간단하다. 파리 경찰청 강력계 팀장인 알리스가 뉴욕에서 낯선 남자를 만나 동행하며 과거의 기억과 사건을 쫓아 결국 본인의 상태(Alzheimer's disease)를 알게 되고, 그 남자 가브리엘과 다시 미래를 그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간단한 라인에, 작가는 등장인물들에 숨을 불어넣고 촘촘한 플롯을 짜고 반전도 넣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에 파문을 던지는 장면도 넣었다. 그러한 점이 존경스럽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빌린 책이라 표시는 못 했지만, 눈길 잡아두는 말들은 거의 마지막에 있었다. 가브리엘리 알리스를 보며 고백했던 말들. 미래를 그렸던 말들.
➖아래는 내게 의미를 가지는 장면들이다. (▷나의 생각)
p328
"나는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내가 자란 동네도 구경시켜주고 싶고, 송로버섯을 넣은 맥치즈도 만들어주고 싶고, 재즈도 듣고 싶고,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눈을 반짝이고 볼을 생기 있게 물들이고 입가에 한 껏 웃음을 머금고 당신을 바라볼게요.
그리고 가브리엘이 그리는 아마도⋯⋯.
p329-332
아마도⋯⋯.
아마도 맑은 아침도 있을 테고, 구름이 잔뜩 낀 아침을 맞는 날도 있겠지요.
아마도 의혹에 사로잡힌 날, 두려움에 갇힌 날, 소독약 냄새나는 병원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하루를 맞이하는 날도 있겠지요.
아마도 화사한 봄날, 몸이 깃털처럼 가벼운 날, 병의 고통을 잊게 되는 날도 있겠지요.
*
아마도 바닷가 산책을 하며 갓 돋아난 풀냄새,
하늘에 길게 꼬리를 남기며 떠가는 새털구름을 감상하는 날도 있겠지요.
아마도 바닷가에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낚시를 하는 날도 있겠지요.
⋯ ⋯ 손가락으로 레몬 카놀리를 집어먹으며 환하게 웃는 날도 있겠지요.
⋯ ⋯ 아마도 내가 너무 늦게 일어나 지각 출근하는 겨울날의 아침도 있겠지요.
⋯ 당신에게 급하게 키스하고, 열쇠고리를 손에 쥐고 ⋯
*
⋯ 당신 마음에서 빛나는 아침 해를 보는 날도 있겠지요. ⋯
*
그리고 시간이 흐르겠지요.
⋯ 하루 온종일 힘겨운 치료를 견뎌야 하는 날도 있겠지요.
⋯ ⋯
▷아마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는 날도 있겠죠. 아마도 서로에게 감정이 상할 거예요. 그래도 서로의 입장이 되어 다시 시간 들여 생각해 보고, 인정하고, 다정하게 웃어주기로 해요. 작은 것부터 큰 것 까지, 우리 함께 하는 날이 행복한 삶을 만들어 줄 거라 생각해요.
지금에 와서 생각한다.
내가 로맨스/멜로 장르에 대해 동하지 않았던 것은, 연애를 해 보지 못해서가 아니었을까. 연애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눈길을 잡는 문구들이 서정적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이런 연애를 해야겠다, 이런 감정을 받고 싶다, 이런 느낌이 들도록 해 주어야겠다.. 는 감정의 끝에 위와 같은 장면들이 새겨진다.
학교를 다니며 언어영역 공부를 할 때, 나는 '작가의 의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에서는 더욱 작가의 의도에 따라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의 말을 읽고, 작가는 이런 생각으로 책을 썼구나 또는 독자들이 이런 생각을 해 줬으면 했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게 끝이고 책 속 내용들을 내 생각/상황에 맞게 해석하는 것을 선호한다. 내가 책을 읽고 받아들인 것과 꼽은 것이 작가의 의도와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흥미로울 뿐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매혹적인 스릴러; 숨 막히는 서스펜스라 홍보하는 책에서 내가 주목한 건 그저 가브리엘의 알리스에 대한 '곧은 감정' 하나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그 촉촉함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잘 읽었다고 생각한다.
p.s.I.
맥이 풀리고 안타까운 반전의 상황과는 달리, 알리스의 Alzheimer's disease가 반가웠다. 아니, 네가 거기에?라는 느낌이랄까. 책을 읽을 때쯤 한창 AD에 대해 스터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D는 아직 완전한 marker도 없는 상황인데, 잘 알려진 Aβ와 tau protein도 확실한 marker라고는 단정 할 수 없다. 다른 정복되지 않은 모든 질병이 그렇지만, AD는 매우 슬픈 병이라 생각한다. Memory에 영향을 미치니까. 기초/응용과학에 눈부신 발전을 바란다.
p.s.II.
내가 많이 사랑하는 MS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