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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Jul 08. 2022

고인돌의 시간

걷고 쓰고 그리는, 산책 드로잉 에세이(19)

만약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다면 다음 생엔 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돌이 된다면 아무런 욕망도, 고통도, 슬픔도 느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물론 이건 이치에 맞는 소리가 아니다. 환생은 다시 태어나 생을 얻는 것인데 생명이 없는 게 되겠다는 건, 구르는 돌을 보고 달리는 돌이라고 여기는 것만큼이나 엉뚱한 생각이다. 그런데 누군가 그런 소망을 가졌다는 건, 사는 게 너무나 고되고 팍팍하여 낮에 멀쩡하게 눈 뜨고 백일몽을 꾸는 상황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누군가 비웃지 않으면 그건 꿈도 아니라고 했던가. 


고척동으로 이사를 오고 한 달 지났을 무렵, 동네인근에 구로 올레길이 조성되어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어느 날 목동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계남공원 입구에 서있는 푯말을 보고서  알았다. 그 다음 토요일, 인근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동네구경도 할 겸 이 골목 저 골목 거닐다 근처에 올레길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계남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원 입구에 도착하자 지난 번 버스에서 보았던 구로 올레길 산림형 1코스 안내판이 서있었다. 계남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오류중학교에서 끝나는 1.8km의 가벼운 산책코스다. 코스 시작과 끝은 학교에서 시작해 학교로 끝나지만, 코스 중간은 나무와 들꽃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야산에 조성된 계남공원의 능선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계남공원 초입의 공터에는 게이트볼과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이 싱싱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 마련된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레길 초입엔 통나무 계단이 백여 개 정도 가파르게 이어져 있었다. 구로 올레길이라는 이름을 처음에 접했을 땐 제주 올레길의 이름만 따라한 여느 동네 산책로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통나무 계단을 보곤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색과 결이 예쁜 동글동글한 통나무 계단과 계단 옆에 밧줄과 통나무로 이어만든 디딤 손잡이들이 배치된 걸 보아하니, 하나도 허투루 만든 모양새가 아니었다. 길을 조성한 사람들의 정성과 애정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여느 동네의 평범한 산책로가 아니라 도보여행의 즐거움을 한 조각 맛보게하는 올레길을 걷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오르막 통나무 계단이 끝나자 동서 양 갈래 길로 나눠졌다. 올레길을 계속 이어가려면 왼편 길을 걸어가야 했다. 오랜만에 흙을 토닥토닥 밟는 덕분인지, 걸을수록 점점 숨도 가벼워지고 발걸음도 경쾌해졌다. 걷는 동안 올레길 진행방향 표시를 한 파란색 화살표도 여러번 만나고, 나무벤치로 객석을 만든 야외공연장도 만나고, 올레길 정상에선 가을바람도 쉬어갈 것 같은 고즈넉한 전통정자에서 발갛게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서울 도심에 마련된 올레길이기에 능선길 너머엔 간혹 아파트 단지가 풍광을 가로막고 있기는 했지만, 굽이굽이 이어지는 흙길과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꽃나무와 들풀들 사이로 걷는 동안, 어느 소박한 시골길이 한없이 이어지던 평화의 제주 올레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발갛게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선 회색빛 콘크리트의 아파트 건물도 하나의 운치있는 자연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왜 자연이 아니랴.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만든 것은 왜 자연이 아니랴 싶었다.




올레길 정상, 전통정자에서 내려가는 길목에서 어떤 푯말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바로 ‘선사유적지(고인돌) 가는 길 80m’이라고 적힌 안내판. 고인돌 유적이라니, 너무 오랜만에 느닷없이 만난 단어여서 순간 이상야릇한 느낌까지 들었다. 낡은 기억의 곳간문이 바람결에 저 혼자 비끄덕 열리며, 곳간 한 구석의 거미줄에서 느닷없이 툭 떨어진 어떤 물체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랄까. 머나먼 옛날옛적의 선사유적이 어떻게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주택가 인근에 있다는 건지 너무나 이상하고 신기했다. 



얼른 눈으로 고인돌을 확인하고 싶어 고인돌이 있는 곳까지 한 달음에 내려갔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도로로 향해 뻗어간 계단을 내려가자 풀밭공터 중간 즈음에 하얀 철책이 보였다. 그 안에 커다랗고 편편한 검은 빛의 바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역사책에서 봤던, 편편하고 커다란 암석이 네 개의 굄돌로 괴어져 있는 위용당당한 장관은 아니었다. 언뜻 보면 어디서나 봤을 법한 평범한 바위 하나를 철책으로 촘촘히 둘러싸놓은 것 같아서, 마치 부실한 선물에 비해 포장이 더 화려해 보이는 모양새였다. 철책 앞으로 다가서자 보통의 바위가 다른 점이 눈에 들어왔다. 바위구멍이라고 불리는 성혈들이 뚫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철책 앞에는 고인돌 발굴 내력과 고인돌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담은 안내판이 각각 하나씩 붙어 있었다. 가로 190cm, 세로 105cm, 두께 29cm의 크기에 재질은 화강편마암질. 2003년에 발굴된 고인돌이었는데, 부근에서 덮개돌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원래 위치에서 벗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 처음에 봤던 느낌과는 다른 아우라가 풍겨져 나왔다. 어떻게 보면 그 바윗돌은 땅에다 얼굴을 쳐박고 잠들어 있거나 울고 있는 어느 사람의 검은 머리를 연상시키는 형상이랄까. 고인돌이라면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고, 연대를 추정하면 한반도 청동기 문화가 본격화된 게 적어도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사이니까, 이 고인돌은 대략 4000년전부터 여기에 있어왔던 것이다. 물론 다른 바윗돌들도 이곳에 그만큼 이곳에 있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인돌은 4000여 년 전 선사시대 누군가의 무덤에 사용됐던 돌이고, 지난 4000년 동안 그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왔고 애도해왔던 돌이다. 그 누군가의 육체가 이미 오래전에 바스라져 흙먼지가 되고 그 영혼이 다른 생으로 윤회를 거듭해오는 동안, 돌은 여전히 이곳에 놓여있다. 다른 곳으로 가보지도, 다른 무엇도 되지 못한 채 여전히 누군가의 무덤돌로 이곳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에겐 사람의 시간이 있고, 돌에겐 돌의 시간이 있겠지만 어쩌다 우주의 시간이 마법을 부려 어느 사람이 시공간의 터널을 잘못 건너가 돌이 되어 환생한다면 무수한 생명과 사물들의 생주이멸을 목도하며 지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동네 청동기 유적지인 <고척동 고인돌>은 아무리 봐도 땅에다 머리를 처박고서 잠들어 있거나 울고 있는 검은 머리의 형상처럼 보인다. 그런 일은 돌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일일 것 같다. 사실 돌이 아무런 욕망도, 고통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 또한 사람의 시간 속에 갇혀 있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의 일. 사람으로 백여 년을 견디는 게 나을지, 돌이 되어 수천수만 년을 견디는 게 나을지, 그 또한 사람의 시간 속에 갇혀 있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의 일이다. 


<고척동 고인돌>, 펜과 수채, 16절,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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