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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Jul 12. 2022

촉각적 우정

그림에세이(14)

비가 시시때때로 내리는 장마철의 중학교 운동장. 


아마도 점심시간 끝 무렵일 듯한데, 조금 전까지 앞이 새하얗게 보일 정도 폭우로 쏟아지던 빗줄기가 약해지자마자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모여든다. 5교시 수업 종이 곧 울릴 텐데,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이 초록빛 운동장을 밟으러 나온다. 여전히 빗줄기가 거쎈데도 우산을 쓰고 나온 이는 서너 명에 불과하다. 맨몸으로 비를 맞으며 운동장을 빙글빙글 도는 아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친구와 밀고 당기고 몸싸움을 벌이는 아이, 유명 아이돌 그룹의 댄스를 마주 보며 연습하는 아이, 그리고 교실이 답답해서 그냥 나온 아이도 있을 것 같다. 


10분도 채 남지 않은 점심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여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건너편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중년 나는 문득 서글픈 기분이 된다. 오래 놀지 않아도 좋으니까, 부디 하루에 딱 10분 동안이라도 온몸으로 최선을 다하여 운동장에서 뛰어놀 동네친구가 있으면 싶은데,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놀이라고는 스마트폰 속의 SNS 지인들에게 이런 유쾌한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올려서 좋아요와 댓글을 받는, 단지 눈과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정도의 놀이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자각하게 돼서다. 


나이듦의 우정은, 서로 마음은 깊더라도 촉각적 우정은 갈수록 흐릿해지고 모호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내게도 친구가 분명 있는데, 친구의 실체가 딱히 없는 것 같아서 우정을 생각하면 빈 깡통에 손을 넣다 빼는 듯 공허하고 허무한 마음이 되고 만다. 


<비 오는 날의 학교 운동장>, 펜과 수채, 16절,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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