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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Feb 13. 2022

뒷걸음질치기

그림에세이 (1)

속상한 일이 생겼다. 어떤 일로 속을 끓이는 것과는 별개로, 그때부터 내 마음 한구석은 또 다른 갈등으로 전쟁터가 된다. 평소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에게 내가 겪은 황당한 일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과 그걸 말리려는 마음의 다툼이 시작된다.

왜 사람은 불쾌한 일을 겪으면 그걸 다른 이에게 토로하고 싶어 할까? 다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 내 말과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서?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상대를 험담하고 싶은 충동이 일렁대서일 테다.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순간, 어쨌든 친구는 내 감정적 쓰레기를 받게 될 테고, 결국 험담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건 미안한 일이다. 그동안 나도 누군가의 속상한 사정을 들어주다 그저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아직 판단 밖의 누군가에 관해 단정하고 비난하는 일에 동조했는데, 사실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괜한 소리를 했구나, 넘치는 말을 했구나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내가 힘들고 어려웠다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일테다.


심각한 문제에 빠져있다면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위로와 응원을 받는 게 좋겠지만, 이렇게 사소한 일로 속이 끓는다고 친구를 찾는 것도 이제는 그만해야지 싶다. 혼자서 흘려버릴 일이라면 얼마든지 그래야지, 아니 며칠 끙끙 앓더라도 노력해서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야지 싶다. 얼마 전에도 속상한 문제를 겪었는데, 누군가에게 말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겠나 해서 혼자 속으로 삭혔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어버린 일이 있었다. 내가 속상하다고 누군가를 판단하는 언어를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것만으로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라는 사람의 말과 행동 패턴과 상대의 사정에 대해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하다 결국 나도, 그 사람도 그럴 수 있겠다는 느슨한 이해의 지대로 발을 딛게 됐다. 그건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또 이런 문제가 생기면 다음에도 이렇게 혼자서 잘 흘려보내야지 다짐이 들었다.

하지만, 친구에게 토로하고 싶은 마음은 이런 경험을 두고도 좀처럼 설득되지 않는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다.


그렇게 두 조각의 마음이 상대를 설득하려고 애쓰며 곳곳에서 다툼을 벌이다 어느 한갓진 지점에 도달한다. 그곳에는 어딘가로 통하는 낡은 문이 하나 있다. 잊고 지냈는데, 여기는 내가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쌓인 곳. 대단할 건 없지만 내가 감당하기도, 다른 이에게 털어놓기 힘들어서 속내를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도망친 곳. 어쩌다 보니까 열어보고 싶지 않은 곳의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얼른 달아날 채비를 한다. 그곳에서 바삐 멀어지는 동안, 친구에게 하려던 말을 잊는다. 오늘 내가 겪은 황당한 일은 진짜 너무나 별것도 아닌, 무슨 일도 아닌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다음 날 아침이 온다. 속상한 일도, 친구에게 토로하고 싶은 마음도 어느새 반은 줄어든 상태다. 아마도 내일이면, 모레면, 일주일 후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 까맣게 잊을 것이다. 물론 이 전략이 언제까지나 먹힐 일은 아니지만, 때론 시간에 기대어 문제로부터, 분투하는 마음으로부터 멀찌감치 뒷걸음칠 필요는 있다. 그렇게 멀리서 떨어져 보면 작게 보일 테니까.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 중에서 오늘 속상한 일의 크기가 얼마만 한 건지 절로 비교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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