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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Jun 03. 2022

회식의 겹

그림에세이(12)

얼마 전에 만난 사람들은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더니 곧장 삼겹살 식당으로 들어갔다. 사전에 누군가 식당을 예약했던 건 아니었다. 참가자들끼리 식사메뉴를 조율한 일도 없었다. 세미나와 삼겹살 식사가 애초부터 하나로 묶여있던 일정처럼, 모두들 자연스럽게 근처의 삼겹살 식당으로 몰려갔다. 그동안의 축척된 사회생활 경험이 사람들의 발길을 자연스레 고기집으로 향하게 했으리라.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고도의 집중력이 소모됐던 세미나가 끝났으니 소모됐던 에너지 만큼의 보상이 필요했을 것이고, 너도나도 그에 부합하는 보상으로 허기진 속을 채워줄 기름진 삼겹살과 달아오른 머릿속을 달래줄 산뜻한 소주의 조합을 떠올렸으리라. 


평소 고기를 먹지 않는 나로선 삼겹살 식당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건, 세미나 끝에 마련된 보상의 자리라기 보다는 지루하고 불편한 세미나가 연장전에 이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내 가득 노린내 배어있는 기름진 공기, 붉은 핏물 흥건히 배어나오는 생고기 접시, 속옷까지 배어드는 고기 냄새. 육식을 거부하는 사람이 이런 환경을 견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론 자리배석을 잘못해 어르신들과 같은 상에 앉은 경우엔, 고기를 접시에서 덜어내 불판에 굽고 뒤집고 자르는 일들 모두가 내 몫이 되기도 한다. 내 비위가 약해서겠지만 붉은 핏물 흥건한 고기를 집게로 집을 땐 목구멍으로 쏴한 액체가 꿀렁꿀렁 넘어올 것 같다. 살점을 가위로 잘라야할 땐 코 끝으로 훅 끼쳐오는 비린내에 소름이 돋고, 이미 죽은 몸이지만 다른 이의 살점을 자르는 죄스럽고 잔인한 느낌에 가위 쥔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거기다 왜 굽기만 하고 먹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상대가 의아스럽지 않게 눈치껏 잘 받아넘겨야 하는 재치와 예의까지 신경써야 한다. 고기 굽는 일은 내게 여간 불편하고 성가시고 당황스런 노동이 아니다. 


그날은 다행히도, 십여 명의 단체석 맨끝 바깥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일부러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부터 다녀오면서 맨끝 바깥자리를 앉을 시간을 벌었다. 바깥자리는 대개 통로와 맞닿은 자리여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수건이나 컵 등을 가져다주는 심부름이 잦을 수밖에 없는 곳이지만, 그래도 고기 연기와 고기를 구워야 하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위치여서 난 대체로 바깥자리를 선호한다. 


 한동안 높은 음으로 지글지글, 스팀다리미가 뿜는 증기처럼 맹렬하게 구워지던 삼겹살 소리가 창밖의 보슬비 소리처럼 자작하게 잦아들 즈음, 서빙하는 분께 따로 부탁해 놓았던 된장찌개가 내 앞에 놓였다. 다른 사람들 음식주문할 때 나도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된장찌개를 주문할 수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숱한 단체회식 경험에 따르면 그러지 않는 편이 나았다. 사람들의 식사 중간 무렵 즈음에 내가 원하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된장찌개를 주문하는 편이 나았다. 처음부터 나는 고기 먹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해버리면, 사람들에게 괜히 입 짧고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반에 된장찌개를 먹기 시작하는 내 모습을 보고 맞은 편에 앉아있던 한 여자가 말간 눈으로 내게 물었다.


 “채식하나봐요. 언제부터 채식하셨나요?”


처음 만난 사람들이 어색한 상태로 한 공간에 모여 있어서인지 서로 공유할 화제거리를 찾느라 사람들의 감각이 보통 때보다 예민해져 있나보다. 그녀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서 사람들 시선이 내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갑작스레 받는 건 어쨌든 어색하고 긴장되는 일. 이런 경우 채식에 대한 사람들의 괜한 호기심이 화제의 중심에서 얼른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채식주의라고 딱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고기를 먹지 않게 된 건 초등학교 입학 전 어렸을 때부터예요.”


내 대답을 듣고는 꽤 호탕해 보이는 한 중년남자가 농담을 걸어왔다. 


 “어렸을 때 많이 가난했나봐요. 고기를 못 먹어서 그런 거죠?”


 그 말에 사람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고, 누군가 재빨리 그의 농담을 반박했다. 


 “어머, 채소값이 얼마나 비싼데요. 괜찮은 유기농 채소는 웬만한 고기보다 더 비싸요.”


그 말에 동의하는 냥 사람들은 다시 큰 웃음을 터뜨렸고 채소값이 정말 비싸졌다고 여기저기 맞아, 맞아 맞장구쳤다.


채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고만고만해서인지, 어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채식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과 농담은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간다. 내가 고기를 빼고 식사를 하면 누군가 언제부터 채식주의 했냐고 묻고, 내가 어릴 적부터라고 대답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어릴 때 많이 가난해서 고기를 못 먹어봐서 채식주의자가 된 게 아니냐고 농담을 하고, 그럼 누군가 요즘 채소값이 더 비싸다고 반박하고 그러면 몇몇은 맞아, 맞아 동의하면서 물가걱정을 하는 것을 끝으로 사람들의 채식주의에 대한 호기심은 일단락된다. 


세상은 복잡한 것 같지만 때론 참으로 단순한 듯하다. 채식에 대한 뻔한 질문과 뻔한 대답이 오고 가는 사이, 그날 무리없이 낯선 사람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내가 채식을 한다는 알리는 통과의례가 끝났다. 이제 다음 번에 그들을 만나면 한결 더 편해진 마음으로 내 식성대로 식사를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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