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이다 Mar 31. 2022

마스크 뒤에서 우리는...

그림에세이(7)

언제가 홍대 근처 어느 건물 앞을 지날 때였다. 그였다. 내가 사는 동안 길에서건, 지하철에서건, 꿈에서건 결코 어디에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간이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라는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숨이 턱 막혀오고 머리는 멍해지고 온몸이 바짝 얼어붙었다.


순간, 내 머릿속엔 ‘아참, 나 지금 마스크를 쓰고 있지?’라는 생각이 스치며 문득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당시 나는 마스크를, 그것도 시커먼 마스크를 평소와 달리 눈 바로 아래까지 쑥 올려쓰고 있던 터였고, 그는 손짓 몸짓하면서 자기 일행과 신나게 떠드느라 마스크가 턱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중인지 모르거나, 혹은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기 말에 지나치게 도취해서 떠들어대는, 참 자기중심적인 인간이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알아보고 그는 나를 알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코로나19가 3년째 여전히 물러나지 않아서 이대로 영영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나 두렵기도 하지만, 당시만큼 마스크가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워주던 때가 없었다. 그때 내가 쓴 마스크는 얇은 천 조각이 아니라 무쇠 방패막 같아서 든든한 울타리 뒤에서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를 스쳐 지나가며 나는 눈에 힘껏 줘서 그 인간을 노려봤다. 인간아, 네 세 치 혀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을 후벼 파놓은 줄 알아? 라고 마스크 뒤에서 중얼댔다.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지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는, 소심하지만 나름의 속풀이를 실행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나를 지나쳐가고 한참 후에, 주변에 다른 행인이 없는 걸 확인했다. 바짝 긴장했던 마음에다 시원한 공기를 쐬어줘야 할 것 같아서 마스크를 코 아래로 살짝 내렸다. 그때까지 마스크에 가려서 몰랐던 거리의 냄새가 훅 코끝을 스쳤다. 


그건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 봄 냄새, 그러니까 활짝 꽃망울 터뜨리기 시작한 벚꽃 향기였다. 마스크를 쓰는 일상 때문에, 아니 덕분에 냄새가 우리와 숨바꼭질하듯이 보였다 숨었다 하는구나 싶어지며, 괜스레 싱긋 웃음이 났다. 

                                           


이전 06화 가로등, 보름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