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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Jul 24. 2022

가로등, 보름달

걷고 쓰고 그리는, 산책 드로잉 에세이(22)

스마트폰 속 SNS 지인의 새 글을 놓칠세라 새로고침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까 어느새 바깥에 어스름이 내렸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 맞춰 산책을 나선다. 여름은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어서 한여름 땐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땅거미가 내린다. 해가 저물고 노을도 끝나가고 하늘이 까맣게 되기 전인 잠깐의 시간, 그즈음 하늘이 하루 중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워서다. 멋들어진 하늘빛을 고스란히 머금은 아래 세상은, 낮 동안의 소란과 활기가 가라앉으며 어두운 고요 속으로 침잠한다.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경계에서 사물들이 까맣게 실루엣 속으로 제 안의 것을 감추는, 알 듯 말 듯 한 신비의 시간이 시작된다. 사진가들이 말하는 마법의 시간, 블루 아워(blue hour)의 시간인 것이다. 


마법의 영향 때문일까? 저녁 산책 때 유난히 어떤 착각에, 아니 착시에 빠지는 일이 잦다. 오늘이 벌써 보름인가? 유난히 달이 참 밝구나. 괜한 감상에 젖어들다 뭔가 이상해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건 달이 아니라 가로등인 경우가 있곤 했다. 환한 달빛에 스르르 감성으로 젖어들다 그야말로 시쳇말로 ‘확 깬다’ 싶은 것이다. 그때부터 환함이 쨍함으로 보이고, 감성적인 것이 얄팍한 감상적인 것이 된다, 아니 그렇게 느낀다. 


나는 왜 인간이 만든 환한 빛, 가로등에는 왜 오묘한 신비나 감성 같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개와 늑대의 시간이 지나가면 이내 세상엔 짙은 어둠이 깔리는데,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밤 산책은 불안과 공포로 불가능할 수도 있는데, 나는 너무 높이 뜬 달빛, 별빛만 올려다보고 지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건 마치 지금 내 곁에서 빛을 비춰주는 사람을 뻔하게 여기며 호기심과 시선을 거둔 채, 스마트폰 속에서 반짝이는 머나먼 SNS 친구 소식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서 보는 둔한 마음과 닮았다. 눈을 감으면 제대로 이목구비가 떠오르는 이가 내 안에는 하나도 없으면서.


<가로등, 보름달> 펜과 수채, 16절,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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