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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Jul 29. 2022

누군가의 집

그림에세이(16)

그저께 폭우가 쏟아지기 전에는 보지 못했다. 아파트 1층 복도 난간 사이에 어떤 이는 줄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집이라고 부르는 누군가의 거처가 새로 지어져 있었다. 


큰비가 지나가고 세상 만물이 말끔하게 씻긴 후에 구한 재료들로 집을 지어서 그런지, 줄마다 늦은 오후의 온화한 햇빛을 고스란히 튕겨내며 무지갯빛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수백 갈래의 줄을 얽기설기 엮어놓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고, 그의 집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이삼아 하던 실뜨기가 생각도 나고 해서 괜스레 집주인의 모습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하필 그때 출타 중인지 그를 만날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다행히 내일은 토요일이라 복도 청결관리를 도맡아 하는 청소부 아주머니가 오지 않는 날이라 그의 집 안위는 당분간 주말 동안은 괜찮을 법한데, 그래도 앞일은 모르는 법. 이곳을 지나가는 이들 중 누구든 재미삼아, 놀이삼아 혹은 지저분해 보인다고 손가락을 한두 번 휘저으면 고난이도의 실뜨기로 엮어놓은 듯한, 혹은 우주의 내밀한 비밀 패턴을 품은 듯한 그의 거처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의 집은 보기에 따라 어떤 이에게 단지 하찮은 줄 뭉치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은지 수십 년이 지난 여기 아파트 건물도 누군가에겐 허접한 시멘트 뭉치로 보일 수도 있는 건 이제 시간 문제일 것이다. 여전히 멀쩡한 데도 몽땅 허물고 재건축이든 재개발이든 해야 한다고, 그러면 너도나도 한몫 챙길 수 있다고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인다. 


하찮은 줄이든, 허접한 시멘트 뭉치든 누군가가 먹고 자고 쉬는, 다시 없을 귀하디 귀한 삶의 터전인데, 어떤 이는 돈 모으는 재미삼아, 혹은 지저분해 보인다고 줄 뭉치 하나 걷어내는 간단한 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내뱉는다. 


<누군가의 집>, 펜과 수채, 16절,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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