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cm 물에 빠진 사연

얕은 물이라고 무시하지 마

by Who am I

그래도 명색이 성인인데

110cm 정도 되는 물이 위험할까 생각했다


오늘은 모처럼 아이들과 가까이 있는

수영장에 놀러 간 날


우리가 보통 아는 워터파크라기에는 작고

수영만 하는 수영장보다는 물놀이장에

가까운 이 수영장에 대한 긴장감은

별로 없었다

다만 다른 날보다 컨디션이 피곤한 정도였다


그래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남편과 애들 할머니에 추가해 나도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아이 둘 어른 세 명으로

티켓팅을 했다

작년에도 비슷한 풀에 갔다가 둘째가

빠질 뻔한 기억이 있어서 수영장은 보기보다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수영

3개 영법을 배운 사람이니까.. 이 정도

수영장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애들

뒤를 따라다니며 안전요원 역할을 했다

한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기 시작했고

약간 지루해졌다

주변에 자유롭게 수영하는 성인을 보니

그래 나도 예전에 배운 걸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튜브를 안은 채로 배영포즈로

물 위에 누워보았다 물 위에 눕자

천장유리에 내 얼굴이 비쳐 묘하게 평온한

느낌마저 들었다


잠시 후 기우뚱하다가 몸의 중심을 잡고

일어서려는데 물의 흐름에 휩쓸리면서

나도 모르게 물에 빠지고 말았다

수영장 바닥에 발을 디뎌야 하는데

놀랍게도 믿었던 아쿠아슈즈가 헐겁게 벗겨지면서

오히려 미끄러지고 말았다 튜브를 잡는다고

잡았는데 튜브는 조금도 도움이 안 되었다

물에서 허우적거리며 몇 번을 가라앉았었는지..

당해보니 눈앞이 아찔했다

물에 빠지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몇 초사이에 생사가 오가는 순간을 느낀 건

과장이 아니었다 자꾸 뭔가를 의지하고

잡으려 하는 게 본능이지만 그럴수록

더 위험하다는 건 물의 상식이다

불과 허리에서 좀 올라온

물에서 죽을뻔한 경험을 하고 나오자

진이 빠졌다


물 밖에 나오니 웬일 신발도 한쪽은 사라지고

수영모자는 사라지고

어리벙벙한데 옆에서 튜브 타던 꼬마가

아쿠아슈즈 한 짝을 건네준다

이 아줌마가 왜 그럴까 하는 눈빛

미안하다 애야


나는 애써 수습하는데 안전요원은

멀리서 바라보다가 수영모를 제대로

안 썼다며 뭐라 지적한다

뭐 지금 수영모가 문제야 물에 빠졌다가

겨우 나왔는데

나말고는 딱히 아무도 그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예전에 간혹 워터파크에서 사고당한

사람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어쨌든 웃지 못할 상황을 겪고 나니 갑자기

진이 빠지면서 물이 무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과거의 사건들이

다시 떠올랐다

맨 처음 수영을 배울 때 무서워서

레인에 있는 부표줄을 잡았다가 몇 번을

뒤집어져서 물을 먹었던 옛날

파도타기 하다가 튜브가 뒤집어지고

못 나왔던 기억

지나고 나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


그때도 어떻게든 안전한 걸 잡으려고

버둥거렸는데 물에서 그러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시간이 흐르고 수영을

배우게 되면서 공포증이 사라졌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예전 생각만 했지 얼마나 오랜 시간

수영을 쉬었는지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도.

20대에는 원피스 수영복에 물안경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몸은 가볍지가 않다는 거. 나보다 아이들이 더 우선이라는 거

그렇게 이것저것 짐을 담아도 나를 위해선

정작 제대로 된 수영용품도 못 챙겼다는 것

물놀이와 수영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


그래도 물 밖으로 살아 돌아오니

세상은 참 밝다

내 옆의 두 꼬맹이들은

수영장이 진짜 재밌다며 또 오자고

엄마가 물에 빠진 건 관심도 없네


그래 이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30년이라는 세대차이가 있는데

같은 곳에 있어도 우리는 다른 경험을 하는구나..

너희들은 너희만의 경험을 하겠지


그래도 타인의 입장과 고통을 무시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누가 어린이 풀장에 빠졌다 해도

웃지 않을 것 같다

헐렁하고 미끄러운 신발 때문에

물속에서도 미끄러질 수 있다는 것

안전을 위한

수영장비라고 해도 제대로 되지 않읃 건

장비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비딕의 스타벅은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자격이

없다했나보다 뭔가가 좋다면 무서움도

같이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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