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러스는 인간의 적인가? -
바이러스 이력서
바이러스는 생물의 일상사를 통제한다.
세포가 있는 생물은 어느 것이나 모두 바이러스 숙주를 면할 수 없다. 바이러스가 선호하는 숙주는 동물이나 식물보다는 주로 세균(박테리아)이다.
동물이나 식물이 직접적으로 바이러스 숙주가 되는 경우는 우연이거나 재수 없는 경우다. 왜냐하면 바이러스 대부분은 세균을 숙주로 삼는 박테리오파지이기 때문이다.
모든 바이러스는 숙주 역(域)이 있다. 감염하는 대상이 정해져 있다. 가령 코로나는 소나 돼지에게는 감염되지 않는다. 숙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바이러스는 특정 세균에게만 감염된다. 수많은 종류의 세균이 존재하기 때문에 바이러스 역시 그 수만큼 존재한다.
세균이 바이러스 숙주가 되면 세균의 돌연변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된다. 바이러스 증식은 정교하지 않다. 숙주의 유전자를 헤집어서 자신이 필요한 부품만 대충 가져오기 때문에 숙주의 유전자 살림은 엉망이 되기 십상이다. 대부분은 원래대로 살림이 정리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돌연변이가 생기는 이유다.
한 바이러스가 한 종류의 세균만을 수십억 년의 시간 동안 숙주로 상대해 왔다면 그 세균의 기능이나 역할은 거기에 대응하는 바이러스가 설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나긴 시간 동안 돌연변이를 통해 세균의 체질을 개선시키고 특성을 변화시켜 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균들은 모두 바이러스가 만들어 놓은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그 세균들은 다시 하위 생명체(동물이나 식물)를 대상으로 바이러스가 했던 방식 그대로 행동한다.
세균의 기능이나 형태는 바이러스가 설계했기에, 세균의 숙주가 되는 모든 동식물에는 바이러스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결국 바이러스가 모든 생물의 生死에 관여하는 셈이다.
그 이유는 그가 지구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주인이긴 하지만 하는 일은 어수룩하다. 돌연변이 대부분은 바이러스가 어수룩하게 일한 탓이다.
유전자 프로그램에 오류가 일어나 숙주가 죽기도 하고 족보에 없는 이상한 종이 태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시틴 단백질이라는 것이 있다. 레트로바이러스에서 유래한 이 단백질은 태반 형성에 관여되는 유전자 스위치를 켜고 끄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레트로바이러스는 일종의 변종 바이러스다. 원래는 알주머니이었던 것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장기가 변형되고 그것이 태반으로 진행되는 진화의 과정이 있었다.
이런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도 조류나 파충류처럼 알을 낳는 생식이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기들은 산부인과가 아니라 산란병원에서 태어나게 된다. 바이러스가 어수룩하게 일한 탓이다.
세균이 없으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세균의 세례를 받지 않으면 탄생한 순간부터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출산 과정에서 아기는 산도인 질을 통과하는데 분만 시기에 이곳은 젖산균이 우글거리는 지역이다. 젖산균은 소독약과 같은 과산화수소를 발생시키면서 질 밖으로 나오는 아기를 머리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목욕시킨다.
이러한 노력으로 아기가 다른 종류의 치명적인 균에 감염되는 것을 막아준다. 태어나면서 먹게 되는 모유도 수백 종의 미생물이 섞여 있는 세균 주스나 다름없다.
그중에는 아기가 전혀 소화시키지 못하는 올리고당도 들어있다. 이 당분은 아기를 위한 영양분이 아니다. 아기 몸에 있는 세균을 먹이기 위한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세균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지 않으면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의 몸이 단백질 덩어리로 되어있는 이유가 세균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고 이를 위해 일생동안 단백질을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세균의 기능은 바이러스에 의해 유전자가 편집되면서 역할이 정해지게 되었다.
“개미는 풀잎 꼭대기로 올라간다. 풀잎 꼭대기에 이르면 갑자기 땅으로 낙하한다. 그리고는 다시 풀잎 꼭대기로 올라간다. 아무 이유없이 개미는 이 행동을 반복한다.” 왜일까?
이 개미는 란셋흡충에 감염된 것이다. 란셋흡충의 유충은 개미 내장에서 자라지만, 성충은 양이나 소의 위장에서 기생한다. 때문에 양이나 소가 풀을 뜯을 때 개미까지 쉽게 먹을 수 있게 하려고 란셋흡충이 개미의 신경을 조작하는 것이다.
구두충이라는 기생생물도 비슷하다. 유충일 때는 샌드크랩이라는 갑각류에 살지만, 성충 시기에는 새의 내장 속에서 기생한다. 샌드크랩은 벼룩만큼이나 재빠른 동물이지만, 구두충에 감염된 크랩은 굼벵이처럼 느려진다. 즉, 새에게 잡아먹히기 좋은 상태가 된다. 구두충이 새의 내장으로 들어가려고 샌드크랩을 좀비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숙주의 신경계 조종은 유전자 조작은 아니지만 수법은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강자는 물리적으로 약자를 사냥하고, 약자는 신경조절물질로 강자를 사냥한다. 생물계에 절대적인 강자도 약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약자가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바이러스에 의해 유전자가 특별나게 편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바이러스가 약자에게 부여한 특별한 선물이다. 애당초 바이러스 관여가 없었다면, 란셋흡충의 초능력이나 구두충의 가스라이팅 기술도 없었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바이러스가 간섭하고 있다면 죽을 때까지 바이러스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소화 작용에서 근육을 움직이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간섭을 피할 수 없다. 일상을 바이러스가 통제하고 있다면 인간의 의식이나 생각도 그들이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유전자 대부분은 바이러스를 통해서 몸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오랜 세월 진화를 통해서 다양한 유전자들이 마구 뒤섞여 돌연변이된 세트가 우리 몸이다.
인류가 아무리 백신을 개발하고 생산한다 해도 바이러스를 막을 수는 없다. 그 백신을 먹이로 하는 바이러스가 또다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바이러스를 못마땅해하지만, 오히려 바이러스 세계에 침입한 당사자는 인류다. 바이러스는 수십억 년 전부터 있었다. 그들에게 인류는 낯선 손님들이다.
수십억 년의 역사를 가진 바이러스에게 인류의 몇백만 년은 역사랄 것도 없는 시간이다. 인류는 기차가 정차한 역에서 국수 한 그릇 비우고 떠날 뜨내기들이다.
지구는 10억 년 동안 무생물의 세계였다. 바다에는 암흑만 있고 대지에는 침묵만 있었다.
그곳에서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시공간을 지각했다. 관찰자로서 지구가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다. 그 덕분에 그들은 나오자마자 임자 없는 지구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도 소유권이 달라진 것은 없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토에 사는 정착민의 수가 좀 더 많아진 것뿐이다. 바이러스가 주인이기 때문에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은 바이러스 법에 따라야만 한다. 생태교란자는 바이러스에 의해 적정한 간섭을 받는다. 바이러스 세계에 들어온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다. 바이러스 간섭을 원치 않으면 지구를 떠나면 그만이다. 그것만큼은 바이러스도 간섭하지 않는다.
바이러스 기원은 밝혀진 것이 없다. 여러 가설들만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생명의 시초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에 나는 한 표를 주고 싶다. 무생물이 생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그 중간의 단계가 필요한데, 바이러스가 바로 그 중간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생명에는 진화 사슬이 있다. 바이러스는 세균에 돌변변이를 공급하여 많은 다양성을 만든다. 세균은 동식물에 돌연변이를 공급하여 다양한 종의 생태계를 만든다. 생태계는 먹이사슬로 생명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간다.
그러나 이러한 사슬 관계가 점점 약해져 가고 있다. 자연파괴로 그동안 인간과 접촉하지 않았던 바이러스들이 인간과 밀착되고, 기후 온난화로 빙하나 영구 동토층에 갇혀있던 고대 바이러스들이 깨어나고 있다.
이것은 바이러스에게 초대장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잠자는 사자가 아니라 잠자는 바이러스를 깨우고 있다. 바이러스들을 초대해 놓고 인류는 지금 방역한다고 우왕좌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