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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잡담 Apr 18. 2023

시간에 대하여

시간에 대하여

         

물리현상 중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것이 시간이다.

시간만큼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은 없을 듯싶다. 시간이 흐른다는 말은 “의식이 흐른다. 감정이 흐른다”처럼 매우 추상적이다. 그것은 실체가 있는 대상의 움직임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24시간은 지구가 그냥 한 바퀴 돈 것뿐이다. 자전 속도가 1초도 안 되는 중성자별에서는 하루가 1초일까? 자전주기가 2억 년인 우리 은하는 하루가 2억 년일까? 만일 지구가 자전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없는 것일까?

“흐른다”는 성질을 가지기 위해서는 질량과 속도를 가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시간의 질량은? 시간의 속도는? 하루에 하루씩?


물리학에서 시간은 하나의 좌표축으로 취급된다.

공간에 시간 축이 더해져 시공간이라는 개념으로 그것을 다룬다. 그러나 이것은 현상을 설명하는 방편일 뿐 “시간”의 본질, 그 속성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입자인지 파동인지 에테르인지 그도 아니면 어떤 다른 것인지 방정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제로 시간의 실체가 무엇인지 물리학자들도 모른다. 중력장 왜곡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추측만 있다. 해석만 있을 뿐, 실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없다.

이것은 마치 사랑의 실체를 말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우리는 그것을 해석할 수는 있지만 그 실체를 보거나 만져 볼 수는 없다. 추상적 개념이기에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리적인 느낌일 뿐이다.

     

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은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공간과 시간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이 없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없는 곳에 공간은 존재할 수 없다. 즉 시간과 공간을 같은 개념으로 해석한다.

이 개념으로 시간과 물질과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물질은 공간을 점유할 때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물질이 공간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시간”도 함께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100년 전에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공간을 점유하지도 않았다. 태어나기 전에는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당연히 기억이 있을 수가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 “공간”을 점유한 시점부터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우주에서 “모든 사물”이 사라져도 시간과 공간은 남으리라는 것이 예전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그럴 경우 사물과 함께 시간과 공간도 사라진다. 여기서 “모든 사물” 대신에 나 를 대입하면 내가 태어나기 전과 죽은 다음의 상태를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인간만 예외가 되는 물리법칙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이 없는 곳에 전생, 천국, 지옥 같은 실체는 당연히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벼락이 뭔지 몰랐던 시대나 가능한 이야기다.


양자중력, 초끈이론, 루프이론 등 비주류 물리학에서는 우주론의 구성 요소를 4차원 이상으로 놓고 연구한다. 가령 초끈이론에서 다루는 공간은 11차원이다. 11차원이면 많이 점잖아진 편이다. 처음 연구할 당시에는 26차원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다. 상대론과 양자역학으로 반분되어 있는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 소위 대통일장 이론이다. 하나의 공식으로 만물을 설명하는 것. 이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해 보이지만 학자들이 매달리는 이유가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4가지 힘 중에 전자기력과 약력은 통합되었고, 강력은 이론적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중력, 즉 4개 중에 하나만 남은 것이다. 다른 건 다 되는 데 하나만 안될 리가 없다.  

그러나 만물의 법칙 그 뒤에 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50년을 물리학만 연구해 온 노학자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고 실토한 것을 보면, 대통합이론이 완성되었을 때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는 건 아닐까?

양자역학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오늘날 원자를 현미경으로 보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는 있지만, 왜 그런 것인지, 방정식이 왜 그래야만 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만물의 법칙, 대통일장이 완성된다면 시간의 메커니즘도 정확하게 밝혀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과 공간의 성질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상대성 이론을 통해 이해하고 있다.

시간은 우주공간에 사막의 모래처럼 그냥 펼쳐져 있다. 그것은 강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다.

작은 모래알 몇 개가 똘똘 뭉쳐 별을 이루고, 그중 하나가 지구다. 생명은 그 위에 살다가 다시 모래 속으로 사라진다. 인간은 한 알 혹은 두 알 만큼의 모래를 끌어안고 사는 것이다.

엔트로피에 따르면 시간은 사물의 변화가 우리에게 인식되는 방식이다. 중력장이라는 바람이 모래알을 날릴 때 우리는 그것을 "시간이 흐른다"고 말한다. 즉 "변화=시간"이다.

“육체가 늙었어도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진실인 이유도 엔트로피가 설명해 준다. 육체가 감정보다 변화가 더 빠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시간 차이가 느껴진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육체는 100살이 넘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30대 같다”고 말한 것도 빈말은 아닌 셈이다.     


특별한 병이 없었던 마릴린 먼로는 30대 중반에 죽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팬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젊은 나이에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낭설도 있다.

그러나 가끔은 나도 그런 낭설에 공감을 느낄 때가 있다. 나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때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김형석 교수 말 따라 육체가 맛이 갔다고 마음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말은 죽기 전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라는 인생의 지침으로 여겨진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감정, 저녁에 죽어도 좋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 그것은 여행을 위한 준비처럼 느껴진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의 사막, 몇백억 년 몇천억 년 될지도 모를 영원의 길에서 가장 소중한 것의 목록을 만드는 것! 마치 여행길에 배낭을 챙기는 일처럼 여겨진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것이다. 죽어서도 고독하지 않을 감정을 만들어 가는 것! 오늘도 나는 배낭에 넣을 목록 만들기에 골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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