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랑지안
우주 만물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근본적인 수식이 있다면, 그것은 “δS=0”일 듯싶다.
입자물리학에서 다루는 이 공식은, 입자는 작용이 최소인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표시한다. 통상 “최소작용의 원리”라고 부른다. 입자의 최소작용 조건을 찾아내는 방정식이 라그랑지안이다.
고전역학에서 다루는 정역학, 동역학, 고체역학, 진동학, 유체역학 등 입자 운동과 관련된 모든 해석역학은 “δS=0” 하나의 공식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다. 뉴턴역학이나 상대성이론도 마찬가지다.
입자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 최소 작용(에너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최소비용 최대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며 호화스럽게 여행하는 오렌지족 입자는 없다는 뜻이다.
가령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면, 그 경로는 수없이 많다.
서울에서 평양, 강원도, 목포를 거쳐 부산에 가는 경로도 있을 수 있다. 서울서 모스크바, 베이징, 런던, 알래스카, 뉴욕을 거쳐 부산에 도착하는 경로도 있을 수 있다. 서울에서 화성, 금성, 목성, 명왕성, 태양계 밖을 나갔다가 부산에 도착하는 경로도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입자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는 경로의 수는 무한대다. 그중에서 입자가 선택하는 길은 “최소의 에너지”가 드는 경로다. 즉 직선에 가까운 거리다. 빛이 최단 거리로 움직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빛이 구불구불 갈 수도 있지만 경비(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그렇게 가지 않는다. 비용이 가장 저렴한 경로가 직선이기 때문에 빛은 직선으로만 간다.
그러나 빛이 항상 직진만 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물체나 중력을 만나면 굴절되거나 휘어지기도 한다. 장애물 때문에 직진하기에는 비용(에너지)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도로에 장애물이 있는데도 직진한다면 자동차 수리비나 보험료가 비싸게 나온다. 거리가 조금 멀어도 돌아가는 편이 비용이 적게 든다. 빛이 휘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유낙하하는 물체가 직선으로 떨어지는 이유도 같다. 입자들이 “최소작용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에 입자 덩어리인 물체도 그것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돌고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것도 “최소작용의 원리”에 따른 운동이다. 여러 변수들이 맞물린 상태에서 공전하는 궤도가 최소에너지를 만족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체의 운동을 뉴턴역학과 라그랑지안으로 풀면 결과값은 똑같다.
결과는 같지만 해석에는 차이가 있다. 뉴턴역학은 원인에 따른 결과만을 보여주는 반면, 라그랑지안은 결과값이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준다. 입자가 “최소비용 최대효과”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함수 해석에 필요한 자원에도 차이가 있다. 뉴턴역학이 두 개 물리량 정보가 필요하다면, 라그랑지안은 하나에 대한 정보만 알면 된다. 이것은 범죄를 수사하는데 뉴턴역학은 두 개 이상의 단서가 필요한 반면, 라그랑지안은 하나의 단서만 있어도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것과도 같다. 최소 자원(정보)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라그랑지안 자체가 “최소작용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양자역학은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 정확하게 들어맞는 이론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라그랑지안이 없었다면 양자역학 탄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고전역학으로는 원자의 운동상태를 기술할 방법이 없다.
라그랑지안에 의한 입자의 운동이 정확하다면, 이것은 곧 “최소작용의 원리”가 세상 만물의 근본 원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만물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최소작용의 원리”는 자연의 원리이기도 하지만, 국가, 사회, 경제, 모든 집단체계에 적용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한때 문재인 정부는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위원회가 부처 숫자보다 10배나 많았다. 절반 이상이 활동이 전혀 없는 식물위원회라는 조사도 있었다. 지금도 정부. 지방 전체적으로 위원회 숫자가 2만 개 이상 된다고 한다. 공무원보다 위원의 숫자가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물리법칙과 달리 정치권에는 “최대작용의 원리”가 통용되고 있다. “최대비용 최소효과” 시스템이 잘 굴러갈 리가 없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부터 라그랑지안 역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수학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연 생태계를 살펴보면 라그랑지안 “최소작용의 원리”가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동물들의 의식주를 살펴보면, “의(衣)”는 태어날부터 생성되는 가죽이나 깃털 외에 자기가 추가로 만들어 입는 경우는 없다. “식(食)”은 그날그날 필요한 것만 조달한다. 부를 축적하거나 필요 이상의 먹이 활동은 하지 않는다. “주(住)”의 경우, 새 둥지를 보면 딱 새끼들이 거주할 정도의 크기다. 마치 “최소작용의 원리”가 하나의 法인 것처럼 생태계 전체가 그것을 따르고 있다.
나는 라그랑지안이 보여주는 수식보다는 함수의 의미에 주목한다.
“최소작용의 원리”는 한 때 법정스님 “무소유” 책으로 유행했던 미니멀 라이프를 떠 올리게 한다. 무소유는 “불필요한 것은 소유하지 않는다”는 철학적 방향을 제시한다. 이것은 라그랑지안 개념과 일치되는 삶의 지혜다.
삶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평수가 큰 아파트보다는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면 되고, 비싼 외제차가 아니더라도 잘 굴러가는 정도면 족할 것이다. 불필요한 영양섭취는 비만을 불러온다. 삶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짐은 여유에 앞서 삶을 무겁게 만든다. 뚱뚱한 거위보다는 가벼운 새가 멀리 난다.
나는 10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산다. 별거 없는 살림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최소작용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 없는지 유심히 살펴보기도 한다.
살림뿐 아니라 소비도 마찬가지다. 간혹 충동 구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라그랑지안 함수에 맞지 않는 소비나 행동은 무의식으로 피하게 된다.
여행이건 삶이건 무거운 짐이 없을 때 좀 더 자유로워진다. 행복은 다름 아닌 최소의 조건으로 만족하는 정도가 높을 때이다. 이것이 라그랑지안이 우리에게 귀띔해 주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
<라그랑지안 표준모델 방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