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난다. 혼란스럽다. 미안하다. 밉다.
감정일기 1일차
나는 내 감정을 디테일하게 알지 못한다. 아마도 어릴때부터 감정 표현하는 것을 가족으로부터 자주 억압되어왔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그러다보니 내 아이들에게도 감정 읽기를 잘 못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잖아도 예민한 기질로 태어난 쿠니는 그래서인지, 자신의 복잡하고 예민함으로 발생되는 여러 상황들에 대한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짜증과 화로만 표현하기 일쑤였다. 나는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려 애썼지만 아이는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내가 나 자신에 대한 감정 표현력이 미숙하다는 것을 깨닫고 감정카드를 사서 아이와 어떤 일이 있을때 감정카드를 이용해 대화를 해봄으로써 조금 나아졌다.
그렇지만 매일 매 순간 감정카드를 이용할 수 없다보니 나의 감정 인지력은 여전히 낮고,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나도 모르게 불같이 화내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정말 그 정도로 잘못했나?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어제, 아이 표현에 의하면 숨이 갑자기 쉬어지지 않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세게 아이를 때렸다.
아이의 행동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나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가급적 매일 나의 감정을 담은 일기를 작성해 보려고 한다.
1. 화가 났다.
쿠니는 책을 훑어 읽기 일쑤다. 그마저도 과학 관련 도서나 만화책이 전부다. 그래서 가급적 밤에 자기 전에 아이가 읽었으면 하는 사회성을 위한 이야기나 재미있는 내용의 짧은 문고판을 빌려와 내가 읽어준다. 그런데 처음 5~10분 정도 듣고는 옆에 앉아 다른 책을 가져와 또 훑어읽기 시작한다.
아이에게 이 책은 재미가 없던 것일까 싶어 "이 책 재미없니?"라고 물으니 "아뇨, 재밌으니까 계속 읽으세요. 듣고 있어요."라면서 눈은 가져온 만화책에 고정되어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나는 의미없이 켜있는 라디오가 된 기분이다. 화가 났다. "니 머리가 두 개라도 되니? 다른 책을 보면서 또 다른 책을 듣는게 말이 돼?" 라며 화를 냈다.
2. 혼란스럽다.
우선 버럭 화를 낸 다음에 잠시 화장실로 갔다. 아이 입장에선 내가 읽어준 책을 본인이 읽고 싶다며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니고, 아이가 읽어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내 욕심에 내가 읽어줬던 것일 뿐인데 아이에게 들으라고 강요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아이는 졸라맨 만화책이 훨씬 재밌을 것이다. 시각적 자극에 강한 아이에게 가만히 앉아서 상상하며 이야기 책을 들으라니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아이에게 벌컥 화를 낸 것이 잘못된 것이었나....하는 생각에 미치자 다소 혼란스러웠다. 아이를 혼내는게 맞았을까 "이 책이 재미없구나.."하고 조용히 덮는게 맞았을까....
그러나 결론은 아무리 그렇다 한들, 엄마가 엄마 책을 읽는게 아니라 본인 책을 읽어주고 있다면 옆에서 다른 책을 볼게 아니라 "엄마 그만 읽어주세요. 다른 책 볼래요."라고 말한다던가 "엄마 다른 책 읽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글자를 아직 몰라 책 읽기를 전적으로 나에게 의지해야 하는 둘째 비니는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첫째 쿠니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젯밤은 비니와 비교해 쿠니의 행동이 무례하다 생각했었는데, 지금 글을 적다보니 쿠니는 글을 읽을 줄 알고 비니는 글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비니가 나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기 보다 책 읽기에 대해선 나에게 의존도가 높기에 그랬겠다는 생각도 든다..)
3. 미안하다. 밉다.
아이에게 차분하게 이야기하리라 다짐하고 화장실에서 나오니 쿠니 눈에 졸음기가 끼기 시작한다. 오늘 밤 지나고 내일 얘기하면 늦을거란 생각에 아이를 붙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데 너가 다른 책을 보면 엄마는 기분이 나빠. 내가 고장난 라디오가 된 기분이거든. 너가 다른 책을 읽고 싶거나 듣기 싫었으면 비니처럼 다른 책으로 읽어주세요 라고 했어야지.(여기까지 나의 감정 표현한 뒤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가 니 수준에 맞는 책을 읽고 싶다며. 그래서 내가 이런 책 도서관에서 빌려온거잖아. 근데 넌 이런 책 스스로 읽기나 해? 읽을 수 있어? 못 읽잖아. 그래서 내가 읽어주잖아. 스스로 읽기 힘들면 듣기라도 해야할거 아냐!" 말을 하다보니 점점 표현이 과격해지고 비난으로 점철된 말을 듣다보니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았나보다. 졸음으로 눈이 점점 더 풀려가더니 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 헛트름을 시작했다. 아이는 일부러 그런거 아니었다고 뒤늦게 항변했지만, 내가 보기엔 일부러 공기를 삼켜서 내뱉는 영락없는 헛트름이었다. 평소에도 내가 말을 할 때 자주 딴짓을 해왔던 터라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배와 가슴 부분을 세게 내리쳤다. 아이는 컥! 하고 놀라더니 순간적으로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이라며 너무 아프다고 자기를 왜 때리느냐며 눈물을 조르륵 흘렸다. 때리고 나서 아이가 많이 아파하니 미안하면서도 순간적으로 미운 마음이 차올랐다. 아마 '내가 네게 나쁜 짓을 한 이유는 너의 미운 행동 때문'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면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 너'가 미웠던 것 같다.
아이는 눈이 풀린 상태에서, "엄마가 나 때문에 많이 화났군요... 차라리 내가 죽는게 낫겠어요.."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모습에 당황스러우면서도 화가 났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
"죽으면 어떻게 할건데?" 물어보니 "지옥에 가서 예쁜 아이가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할 거예요."란다....하.....
"지옥에 가서 노력하지 말고 지금 노력하면 되잖아!죽는게 얼마나 슬프고 무서운 일인지 알아?"어쩌고 저쩌고.....
결국 나는 사과를 안했다. 그 순간은 "모든게 너 때문"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했던거 같다.
우선 아이를 재우고 나서 잠든 아이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미안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싶었다. 동시에 자꾸만 미운 말과 미운 행동으로 미운 마음이 들게하는 이 아이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답답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한단 말인가.... 정말 잘 키우고 싶었는데... 절대 안 때리고 키우고 싶었는데 자꾸 자꾸 손이 나간다. 후회스럽고 속상하다. 자꾸만 이런 상황이 생기는게 짜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