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럽다. 기쁘다. 긴장되다. 억울하다. 야속하다.

감정일기 2일 차

by 가시나무둥지

1. 사랑스럽다.

네 살 때부터 글자에 관심을 보인 쿠니와 다르게 비니는 여섯 살인 요즘 들어 글자에 관심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뭐라고 썼는지 알 수 없는 난해한 문자를 써놓고 자꾸 뭐라고 써 있는지 읽어 달라고 한다. "비니야.. 네가 썼으니 뭐라고 써 있는지는 네가 알지 않니?"라고 물으면 "아 몰라요~ 엄마가 읽어 봐요~"이런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비슷한 글자를 떠올려서 대충 읽어주면 아이의 얼굴에 정말정말 기뻐하고 뿌듯한 미소가 확 번지는게 보인다. 내가 썼다! 그걸 엄마가 읽었다! 엄마가 읽을 수 있는 글자를 내가 쓸 수 있다! 아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런 느낌이 강하게 전해진다. 이런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2. 기쁘다.

최근 자신의 이름을 무척이나 써보고 싶었던지, 이름과 비슷한 문자를 자주 그려왔다.

그런데 오늘 유치원에서 가져온 활동 자료를 보니 거울 문자도 아닌, 상형 문자도 아닌! 비니의 이름이 제대로 써 있었다. 물론 '빈'의 'ㄴ'받침이 유독 크게 씌여 있었지만 이 글자는 누가 봐도 비니의 이름이다.

그렇게도 자기 이름을 쓰고 싶어하더니, 엄마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해냈구나! 너무 기뻐서 사진으로 남기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3. 긴장된다.

오늘은 절대로 쿠니에게 화내지 말아야지... 다짐 또 다짐해 본다. 넌 어른이야... 아이의 감정에 휘말리지 마...

쿠니의 감정에 공감만 해주자... 쿠니를 만나기 전에 살짝 긴장되었다.


4. 억울하다.

오늘부턴 공부할 때 옆에 앉아있어 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자신이 잘 모르더라도 화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그렇게 화를 냈었나 싶어 우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수학 단원평가의 틀린 문제들을 나에게 왜 틀렸는지, 어떻게 고쳐야 맞는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잘 모르겠는 부분이 나오자 갑자기 나한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엄마 때문에 화가 난다는 것이다. 난 당황스러워서 조용히, 빤히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자기를 약 올린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머리가 복잡했으나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가 성질 내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손을 잡고, '나는 널 화나게 하거나 약 올릴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너가 그렇게 느꼈다니 내가 미안하다, 난 너가 그걸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지 너를 화나게 하거나 놀리려고 물어본 게 절대 아니다.'라며 사과를 우선 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누그러졌다.


그러면서 지난 과거가 떠올랐는데, 난 아이가 모른다거나 이해를 못한다고 화를 낸 적이 없다. 늘 쿠니의 공부를 봐줄 땐 아이의 태도를 지적하긴 했어도 모른다고, 혹은 이해가 안된다고 혼낸 적은 절대로 없었다. 작은 태도 지적에도 아이가 나에게 버릇없는 말을 쏟아내며 화를 내거나 길길이 날뛰며 자기 자신을 때릴 때, 그때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아이에게 엄청난 화를 낸다. 그런데도 아이는 아까 "엄마 내가 모른다고 해도 화내지 마세요."했던 것이다. 아이는 내가 자신의 행동때문에 화를 내는게 아니라 자신이 모르거나 이해를 못해서 내가 화를 낸다고 늘 착각하는 것이다. 매번 혼낼 때마다 "이런 수학 문제쯤 몰라도 상관없어. 하지만 니가 지금 엄마에게 버릇없이 하는 행동이나 너 자신을 때리는 행동은 절대 안되는 행동이야."라고 말을 하면서 혼을 내지만, 언성이 높아지다보니 아이 입장에선 내가 화를 낸다고 느끼고 그 원인은 본인이 "몰라서"라고 오해를 하는 것이다.

하...난 매우 억울하다.


5. 야속하다.

아무튼 단원평가 공부는 나의 사과로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이번엔 영어 공부를 봐주는 시간이 되었다. (학원을 차라리 보내면 너무 편하겠는데 학원은 또 절대 싫다고 하니.... 집에서 모든 공부를 시키려니 내 시집살이도 보통은 아니다....흑흑)

단어를 듣고 따라하면서 시작하는데 단어를 들을 때 자꾸 단어를 안보고 다른데를 본다. 고개까지 움직여가며 눈동자가 매우 빠르게 책상 여기저기를 훑으며 입으로만 단어를 따라 읽는다.

손가락으로 단어를 짚으면서 들으라고 말했더니 순간적으로 단어의 위치를 못 찾는다.

단어 듣기를 일시정지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면서 의자를 앞뒤로 직직 끌면서 몸을 안절부절 못하는 모양새를 하면서 "왜 멈춰요! 잘 듣고 따라하고 있잖아요!"라고 소리를 지른다.

"단어를 보면서 읽어야지 자꾸 다른데를 보잖아."

"다른 데 안 봤어요! 책 잘 보고 있었다고요! 아이씨 엄마 때문에 짜증나 죽겠어요!"라고 소리지르며 또 자기 몸을 가해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급히 아이 손을 잡아서 아까 아이의 행동을 스스로 느끼고 돌아볼 수 있게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는 듣지 않고 끝까지 책만 잘 봤다고 우겨댔다. 또 오늘도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싶어 아이가 참 야속했다.


아까 생각해둔 말을 차분히 전달했다.

"지금 영어 공부 왜 하는거지?" "저 영어 잘하라고요?"

"그래. 영어 공부하면 누구한테 좋은거지?" "저요...."

"엄마는 그럼 너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거네? 내 시간과 노력 써가며?" "네...."

"난 너 영어 못해도 상관없는데, 이런 식으로 엄마에게 화내고 다 엄마 때문이라며 버릇없게 행동할거면 차라리 공부를 안하는게 나아. 공부보다 중요한건 인성이야. 놀기만 하면 화가 안날텐데 차라리 공부 다 하지 말까?네가 선택해. 네가 공부 싫다고 한다면 이 문제집들은 다 갖다 버릴게. 그리고 절대로 너 공부 안 시켜." "아뇨, 공부 해야돼요. 저 공부 할거예요."

"네가 그렇게 선택하겠다면 공부 하게 해줄게. 대신 다른 공부는 너 혼자 하는거니까 상관없지만, 내가 널 위해 시간을 쓰는 영어 시간에 지금처럼 한번만 더 엄마한테 이렇게 화내고 성질내면 그땐 이 문제집들 다 갖다 버릴거야."

아이는 그것만은 안된다고 사정했지만, 또 나에게 멋대로 성질내는 여지를 남겨두면 정말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내 핸드폰에도 적어두고 아이 책상 앞에도 똑같이 적어두게 시켰다.

"엄마랑 공부하다가 엄마가 영어 시간에 태도를 지적했을때 짜증내거나 화내면 모든 책 갖다 버린다. 이 후로 문제집 안 사준다."

그러고나서는 아이에게 그동안 아이에게 공부시간에 엄마가 혼내거나 화낸게 네가 모르거나 이해 안될때 혼낸 적 있는지 떠올려보라고 했다. 또 네가 이렇게 엄마한테 엄마 탓하며 성질내고 니 몸을 스스로 때리거나 아프게 할때 화내고 혼냈던거 같은지 떠올려보라고 했다.

아이는 후자였다고, 모른다고 혼낸거 같지는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알면서 평소에 내가 마치 공부시간에 자기를 쥐잡듯 화내는 것처럼 말하는게 야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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